신앙의 길/가정예배서

남은 자

w.j.lee 2018. 6. 27. 20:08
2018. 6. 28 목요일
남은 자


찬  송: 430장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성  경: 로마서 9:24~29
(롬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 9: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롬 9: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롬 9: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롬 9: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요  절 :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 만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몰라도 여전히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핵심입니다.

오늘 말씀에 이르기를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이방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렸다고 했습니다(24~25).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우리는 '이사야 시절에 구원 받았던 '남은 자'처럼 되는 것이 마딸하다고 하셨습니다(27~28).

'남은 자'는 이스라엘이 처했던 전쟁과 멸망, 곧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남은 자의 정신'을 우리는 야곱과 요셉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던 요셉의 심정을 생각해 보시시오. 정말 끔찍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의 믿음을 변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도, 심지어 억울한 옥에 갇혔어도 요셉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요셉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그의 아버지였던 야곱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의 복을 얼마나 간구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역시 믿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 엄청난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입니다. 찬양 가운데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희의 어떠함 때문이아니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로 인함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 잘 아는 성도는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남은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난감한 현실, 이해되지 않는 삶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끝까지 믿을 수 있습니다.

믿었는데, 기대했는데 결과가 전혀 다른 길로 가더라도 분명한 것을 꽉 잡으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오래지 않아 "주님! 그 약속을 지키셨네요."라고 외칠 날이 올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으로 그 사랑을 증명하겠습니까?



하나님,
예수님을 보내 주실 만큼 사랑해 주시는 것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 의지하면서 환경에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 붙잡고 더욱 주님을 랑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민 목사 ㅣ 한사랑교회



출처 : 2018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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