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30. 금요일
일어나 걸어가라
찬 송:
471장 -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성 경:
요한복음 5:1~9
(요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요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요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요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요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 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요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요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요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요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요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요 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베데스다'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어려운 중증의 환자들은 베데스다의 은혜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앓아온 본문의 병자는 자신을 앞질러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간 사람들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치유되는 이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적잖이 아팠을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상황을 단번에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십니다. "낫고 싶으냐?" 이것은 새삼 물어볼 필요가 없는 질문입니다. 오랫동안 병치레 한 사람에게 낫고 싶은지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내면을 보기 위해, 감춰진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물으셨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물음을 들었기 때문일까요? 병자는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주님,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그의 대답에 오래된 슬픔이 있습니다. 절망과 좌절이 묻어납니다. 긴 투병 세월은 그를 혼자가 되게 하였고, 외;로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눈 앞의 베데스다는 더 이상 그에게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질투와 원망, 피해의식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헛된 희망에 얽매여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는 진정으로 바라는 꿈, 간절한 소망이 명확하지 않은 특성이 있습니다.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환경)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차원을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에 넣지 않으시고 새로운 말씀을 주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권위 있는 이 말씀에 그는 나음을 입었고,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얻을 수 없는 것으로 괴로워하며 꿈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방법으로 고치시며 다시 일어나 걷게 하십니다.
예수님께 고하면 뒤틀어지고 망가진 우리의 내면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진정한 꿈을 향해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네게 오셔서 "일어나라" 하시는 그분의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주 예수님,
오셔서 고쳐 주옵소서.
괴로움의 기억에 얽매인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진정한 소망을 아뢰게 하옵소서.
사람과 환경을 보며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음성을 듣고 일어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연수 목사 ㅣ 효성중엉교회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앓아온 본문의 병자는 자신을 앞질러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간 사람들을 수도 없이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눈앞에서 치유되는 이들을 보면서 그의 마음은 적잖이 아팠을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이 모든 상황을 단번에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십니다. "낫고 싶으냐?" 이것은 새삼 물어볼 필요가 없는 질문입니다. 오랫동안 병치레 한 사람에게 낫고 싶은지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내면을 보기 위해, 감춰진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물으셨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물음을 들었기 때문일까요? 병자는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냅니다. "주님,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그의 대답에 오래된 슬픔이 있습니다. 절망과 좌절이 묻어납니다. 긴 투병 세월은 그를 혼자가 되게 하였고, 외;로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눈 앞의 베데스다는 더 이상 그에게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질투와 원망, 피해의식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헛된 희망에 얽매여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는 진정으로 바라는 꿈, 간절한 소망이 명확하지 않은 특성이 있습니다.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도와주는 사람(환경)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차원을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에 넣지 않으시고 새로운 말씀을 주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권위 있는 이 말씀에 그는 나음을 입었고,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우리는 얻을 수 없는 것으로 괴로워하며 꿈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방법으로 고치시며 다시 일어나 걷게 하십니다.
예수님께 고하면 뒤틀어지고 망가진 우리의 내면을 고쳐 주실 것입니다. 다시 일어나 진정한 꿈을 향해 걸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네게 오셔서 "일어나라" 하시는 그분의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주 예수님,
오셔서 고쳐 주옵소서.
괴로움의 기억에 얽매인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 진정한 소망을 아뢰게 하옵소서.
사람과 환경을 보며 원망하지 않게 하시고,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음성을 듣고 일어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정연수 목사 ㅣ 효성중엉교회
출처 : 2018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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