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2019. 1. 31. 목요일 : 주님의 눈은 우리의 눈과 다릅니다

w.j.lee 2019. 1. 30. 22:20
2019. 1. 31. 목요일

주님의 눈은 우리의 눈과 다릅니다


찬  송: 366장 - 어두운 내 눈 밝히사





성  경: 예레미야 24:1~7
(렘 24: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렘 24: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렘 24: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
(렘 24:4)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렘 24: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렘 24: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렘 24: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요  절 :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어느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두 개의 광주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광주리들이 성전 앞에 놓여 있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무화과처럼 아주 좋은 무화과가 담겨져 있었고, 다른 광주리에는 상태가 너무 나빠 먹을 수 조차 없는 무화과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두 개의 광주리에 담긴 서로 다른 무화과에는 무슨 뜻이 있을까요?

좋은 무화과를 두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5)

그리고 나쁜 무화과에 대해서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자들과 이집트 땅에 사는 자들은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겠다고 하십니다.(8)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간 일은 괴롭고도 슬픈 형벌이었습니다.

그런 아픔과 혼란 중에서도 용케 예루살렘에 남거나 이집트로 도망친 이들은 천만다행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을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붙잡혀 간 이들을 죄인이라고 비난했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들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하며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7)

사람의 기준으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들이 당연히 나쁜 무화과요, 예루살렘에 남거나 이집트로 피한 이들이 좋은 무화과로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엔 오히려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교회요 믿음의 자리라고 해서 우리를 돌아보는 대신 밖에 있는 이들을 정죄한다면, 그러느라 정작 회개할 줄 모르는 안일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락없는 나쁜 무화과입니다.

반면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아프게 깨달으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마음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좋은 무화과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주님의 눈은 겉모습만 보는 우리의 눈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합니까?



주님,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보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주님의 눈이 우리의 눈과 다르다는 것을
겸손함과 두려움으로 인정하게 하옵소서.
중심을 보시는 주님의 눈을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희철 목사 ㅣ 정릉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