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4. 월요일
내 곁에 오신 예수님
찬 송:
32장 - 만유의 주재
성 경:
요한복음 1:1~5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절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 절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예전에 젊은 교사가 어린아이 키에 맞추어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는 학습지 광고가 있었습니다.
교사라하여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위치에서 같은 입장이 되어 가르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미 예수님은 그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나라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천박한 이 땅에 오시어 우리 곁에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1~3)
그런데 오히려 자기를 비워 인간의 자리로 내려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피곤함, 고통과 아픔을 품으신 채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 이처럼 극진히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려면 그와 똑 같은 상황과 처지에 놓여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친구가 되려면 그 수준으로 내려가 단순하고 재미없는 행동도 수십 번씩 하면서 때로는 몸에 흙탕물을 묻히기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 아이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아이라면 그러한 행동을 시간 낭비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는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셨지만 그 일을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죽음뿐인 어두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로 나아갈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4!5). 예수님이 보여 주신 본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들을 탓하기 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설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힘과 재물과 권력과 지식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조롱해서도 안됩니다. 적어도 말씀이신 주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곁에 오셨음을 안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과 여건, 그리고 그 안에서 그가 겪는 고통과 아픔, 외로움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와 남겨 주신 것들을 깨닫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기 위하여
내가 가진 것들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그 사랑을 베풀어 주셨으니
우리도 그 일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선행 목사 - 금오교회
교사라하여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위치에서 같은 입장이 되어 가르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미 예수님은 그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나라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천박한 이 땅에 오시어 우리 곁에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1~3)
그런데 오히려 자기를 비워 인간의 자리로 내려 오셔서 우리와 똑같이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피곤함, 고통과 아픔을 품으신 채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채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 이처럼 극진히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군가의 친구가 되어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려면 그와 똑 같은 상황과 처지에 놓여보면 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친구가 되려면 그 수준으로 내려가 단순하고 재미없는 행동도 수십 번씩 하면서 때로는 몸에 흙탕물을 묻히기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 아이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아이라면 그러한 행동을 시간 낭비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는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셨지만 그 일을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죽음뿐인 어두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로 나아갈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4!5). 예수님이 보여 주신 본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들을 탓하기 보다 상대방의 입장에 설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힘과 재물과 권력과 지식으로 남을 무시하거나 조롱해서도 안됩니다. 적어도 말씀이신 주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곁에 오셨음을 안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과 여건, 그리고 그 안에서 그가 겪는 고통과 아픔, 외로움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
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와 남겨 주신 것들을 깨닫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기 위하여
내가 가진 것들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그 사랑을 베풀어 주셨으니
우리도 그 일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허선행 목사 - 금오교회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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