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선자의 누림
2023년 3월 24일 금요일
에스겔 33:10-16
(겔 33:10)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가운데에서 쇠퇴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겔 33:12)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공의가 구원하지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지 못하리라 겔3:20, 겔18:24
(겔 33:13)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공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곧 그 안에서 죽으리라
(겔 33:14)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정의와 공의로 행하여
(겔 33:15) 저당물을 도로 주며 강탈한 물건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지켜 행하여 죄악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가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지라
(겔 33:16)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요절
그가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반드시 살리라 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음이라 하라 (겔 33:16)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의 탄식에는 상반된 감정이 담겨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거역하며 저지른 자신의 죄에 깔려 죽게 되었는데 어떻게 산단 말이냐?' (33:10 공동번역)라고 말합니다.
이 탄식에는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인정하는 의미도 있지만, 그 때문에 주어진 하나님의 징벌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변명이 함께 있습니다.
죄에 대한 탄식보다는 저들 스스로 내린 결론으로 포기와 절망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속마음을 더 들추면 결국은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거지요.
어찌 그들만이겠습니까?
우리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허물은 더 나아가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하나님을 미루어 짐작하는 죄를 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결론에 사로잡혀 절망하는 백성을 일깨우고자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웁니다.
에스겔의 입술에 담아주신 말씀은 백성의 결론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라고 해도 그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가 죄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는 분입니다.
필요한 것은 악을 떠나서 돌이켜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알았다면 이젠 죽게 되었다며 포기하고 주저앉을 일이 아니지요.
하나님은 죄의 자리를 떠나길 결심하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길 원합니다.
죄를 깨닫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구원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 죄로 쇠퇴했다는 탄식에는 죄로 자신들이 녹아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다 끝났다는 포기선언과 같습니다.
하나 님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돌이키면 살릴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나 님은 결론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도 새롭게 시작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살리는 것을 기뻐하는 분이며 살리고 싶어 하십니다.
비정해 보이는 말씀도 있습니다.
'내가 죄 없는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어도, 그가 자기의 무죄함을 믿고 그릇된 일을 한다면 전에 올바로 산 일은 생각도 해주지 않으리라.
돌아선다면 죄를 기억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하나님은 의로운 행위도 기억하지 않겠다고 선 언합니다.
이것이 비정한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과거를 기억지 않고 지금 여기서 새롭게 우리를 만나길 원한 다는 희망의 말씀입니다.
과연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만한 의가 있 기나 할까요?
돌이킨다는 것은 악을 떠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삶의 방식, 이전과는 다른 삶을 창조해냅니다.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는 하나님으로부터 삶을 바로잡는 힘을 얻습니다.
본문에서 '저당 잡힌 것을 돌려주고, 빼앗은 것이 있다면 돌려보내는 것'처럼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일으키고 살아있는 생명을 돌보며 지켜주려 힘씁니다.
죄인이라도 돌이키면 기뻐하고 생명을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뜻에 물드는 거지요.
그렇게 생명을 얻은 이가 어떻게 다른 이의 생명에 해를 가하려 하겠습니까?
기도
주님,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을 제 맘대로 내리는 결론의 핑계로 삼지 않게 하십시오.
혹여 눈곱만큼이라도 제 의에 취하지 않게 하시고 저 자신을 돌이켜 주님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제 삶이 주님의 용납하심으로 가능하듯 저도 다른 이의 허물을 용납하여
생명을 북돋는 주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출처 : 동행하는 길(송대선, 지강유철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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