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 제35일 : 사랑의 흔적

w.j.lee 2023. 4. 3. 00:00

 
사랑의 흔적

2023년 4월 3일 월요일

요한복음 12:1-11

(요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요 12: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요 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 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요 12: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요 12: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요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2:3)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 유대 지도자들은 위기를 절감하고 어떻게 할지 의논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 전체가 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말로 결론짓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공리(公利)로 몰아 모두가 안녕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신앙과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려 하고 있습니다.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 또한 어떻게 할지 고심했던 것 같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인으로서 감사와 사랑에 응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성에게 제약이 많은 사회에서 예의와 격식에 따르는 것만으로 마리아는 만족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마리아의 행위는 그녀만이 찾아낸 감사와 사랑의 응답입니다. 

나드향을 그분 발에 붓고, 엎드려 자신의 머리칼로 닦아드리는 것!

나드 향유는 히말라야에서 나는 식물에서 뽑아내는 기름이라 구하기도 어렵고 향이 워낙 강해 밀봉해야만 합니다.

향을 열면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 멈추고 향의 근원을 찾을 겁니다.

 

마리아의 행동은 과감할 뿐만 아니라 논란의 여지도 넘쳐납니다. 

유대에서 손님의 발을 닦는 것은 종이 할 일입니다. 

귀한 손님이 오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이 극진한 환대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그녀의 머리칼로 닦습니다.

환대를 넘어서는 파격이며 학자들의 표현처럼 마리아가 일으키는 혁명입니다.

유대인의 관습에 여인이 사용하는 향유는 결혼할 때 남편의 머리에 바르고, 후에는 장례에 씁니다.

사람들이 수군댈 일이지만 마리아에겐 가장 귀한 것으로 가장 소중한 분에게

사랑과 감사를 표하는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여인은 격식, 관습, 사람들의 시선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베푸신 사랑에 이끌렸고 그 사랑에 감사를 드린 것뿐입니다.

주님도 기꺼이 그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행위가 옳은가 혹은 그른가 하는 것도 수용의 중요한 기준이 지만 

사랑으로 가득한 응답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믿는 이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소중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전적으로 자신을 내어드리는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영원한 흔적으로 받으십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 그와 같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윤리의 길이 아니라 사랑의 길입니다.

마리아도 당대의 도덕의 길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을 길을 택했습니다.

믿음에 사랑의 응답이 없으면 신앙은 메마르고 옳네 그르네 하는 다툼만 남습니다.

사랑에는 다툼이 없고 주님과 그를 사랑하는 영혼에게서 일어난 영원의 흔적이 남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사랑의 응답을 당신 장례의 일부로 받아들이 십니다. 

나드향으로 만든 사랑의 흔적은 십자가의 길의 소중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장례의 일부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일부가 된 거지요.

거기에 비하면 가롯 유다의 말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길 잃은 이의 안타까운 판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도
주님께서 걸으신 길이 사랑의 길이며

마리아는 그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여 십자가의 길의 일부가 되었음을 기억합니다.

이 믿음의 길에서 저희도 그럴 수 있도록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세상의 기준과 평가를 의식하기보다

주님 마음에 합하여 영원한 사랑의 흔적을 새기는 믿음에 이르게 해주십시오.

아멘


출처 : 동행하는 길(송대선, 지강유철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