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아론의 송아지

1-1. 아메리카와 캐나다, 그리고 파자놀이

w.j.lee 2024. 4. 18. 13:29

 

1. 아메리카와 캐나다, 그리고 파자놀이

 

아메리카와 캐나다라는 국명을 지으신 분이 우리 민족사에서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지만,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이다.

 

영국으로부터 신대륙의 독립을 이끌어낸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벤자민 프랭클린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은 머나먼 극동의 조선이라는 나라에 세종대왕 이라는 성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 건국한 나라의 이름을 작명해달 라는 청을 하기 위해서 사절단을 보낸다.

 

하지만 그 당시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로 한창 골머리를 앓던 때였다. 

그는 훈민정음 창제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아서 머리가 아프던 터에 생면 부지의 양인들로부터 나라 이름을 지어달라는 청을 받게 된 것이다. 

성군 으로 이름을 날리던 세종대왕이지만 한글 창제로 골치 아프던 터라서, 그냥 "아무렇게나 해라”는 퉁명스러운 답과 함께 빈손으로 사절단을 돌려보 냈다.

 

이 "아무렇게나 해라"라는 말이 미국 사절단 귀에는 "아메리카로 해라"로 들렸으며 이 이름을 전달받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참으로 미래의 초강대국을 이룰 수 있는 훌륭한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감탄하면서 국호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신대륙의 북부 지방도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해 하나의 연방 국가를 이룩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과 남쪽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이 아메리카라는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이름을 짓게 된 경위를 전해 듣고 역시 조선으로 사절단을 보냈다.

 

그 당시는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시고 상당히 기분이 좋은 때였다. 

공교롭게 그러한 때에 다른 양인 무리가 알현을 청하고 나라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니,

세종대왕께서 얼마나 기특하게 생각하셨겠는가!

그렇기에 세종대왕께서는 친히 "가나다"라는 글을 따다가 그들에게 국호를 하사하신다.

사절단은 이 휘호를 소중히 간직한 채 긴 항해를 거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국명으로 삼는다.

하지만 악센트가 없는 한국어와는 달리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이 "가나다"를 발음하려면 첫음절인 "가"에 악센트를 집어넣어야 하고,

또 한국말의 "ᄀ"은 무성음이 지만 영어의 "g"는 유성음이므로 무성음인 "C"를 사용해서 "ᄀ"을 표기했기 때문에,

우리말의 아름다운 "가나다"를 "캐나다"라고 억세게 발음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행여 윗글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까? 

역사적으로 한글 창제는 1443년의 일이며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것은 1776년 7월 4일이라는 것, 

그리고 캐나다의 독립은 1867년 7월 1일이라 는 사실은 누구나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윗글이 300년에서 400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소설과 같은 

허구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윗글을 판타지 소설이라고 즉각 알아차릴 수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왜 윗글보다 더욱 판타지 소설과 같은 창조과학의 한자 해석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지 참으로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이러한 그릇된 한자 해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船(배선)자다.

창조과 학회에 의하면 船(배선)자는 舟(배 주)자에다가 (여덟 팔자와 囗(입구)자가 합해서 이루어진 글자다.

따라서 창조과학회에서는 이 船(배선)자의 구조가 바로 노아의 방주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여덟 개의 입"은 바로 방주에 승선한 노아의 여덟 식구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창조과학회는 한자를 만든 중국 사람들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대홍수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현재 사용되는 船(배선)자에 담겨 있다고 주장 한다.

 

한자의 형성과 어원에 대한 연구는 갑골문이나 금문, 그리고 후한(後 漢)시대에 편찬된 세계 최초의 어원사전인 설문해자)같은 고문헌을

고고학, 판본학, 문자학 등등의 엄밀한 인문학적 해석 방법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서 해석해야만 엄밀한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기독교 서점에 가보면 창조과학회의 한자 해석에 관한 서적들이 여럿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창조과학식 한자 해석에 관한 서적들이 비록 설문해자 같은 고문헌을 참고 문헌으로 언급한다고 하더라도

학계에서 통용되는 엄밀한 인문학적 해석 방법을 무시한 채 

한자의 구조를 제멋대로 분해해서 아전 인수격으로 짜깁기하는 식의 한자 어원 해석 방법은, 

마치 한글의 "가나다"와 국가 이름인 "캐나다"가 발음이 유사하므로

국명인 캐나다는 한글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는 모습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船(배선)자를 비롯해 창조과학회의 아전인수식 한자 해석을 마주할 때, 

나는 조선 중기에 개혁 정치를 주도했던 조광조를 숙청시켰던 주초위왕(走肖爲王) "파자놀이"가 떠오른다.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의 글씨를 써서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

조광조의 역심을 하늘이 알려주셨다고 모함해서 조광조를 제거했던 일화가 있다. 

주초위왕 즉 주(走)와 초()를 합하면 趙(조)라는 글자가 되며 그럴 경우 趙爲王(조위왕), 즉 "조씨가 왕이 된다"라고 해석된다.

趙(조)라는 글자 를 쪼개서(파자, 주초라는 두 글자를 만들어 마치 역성혁명으로 부터 왕권을 지키기 위해 하늘이 내려주신 신령한 계시처럼 간주되게 만든 것이었다.

 

이렇듯 창조과학회의 파자놀이 식의 한자 쪼개기 해석 방법은 세종대왕이 아메리카와 캐나다의 이름을 지으셨다는 것만큼이나 황당무계한 결론을 도출해낸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한번은 나와 같은 회사에 근무 하는 중국계 직원 몇 명에게 船(배선)자를 써주면서 이 글자가 노아의 방주와 여덟 식구를 의미하는가를 물어본 적이 있다.

모두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핀잔을 늘어놓았다.

중국계 동료들이 창조과학식 한자 풀이를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지적했던 것은 船(배선)자를 형성하는 자는 八(여덟 팔)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은 바로 "몇 기" 자라는 것이다(안석 이라는 의미를 가질 때는 궤라고 발음된다).

그들은 几와 八은 분명히 다른 글자인데 어떻게 저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면서 황당해했다. 

 

베이징, 하 얼빈, 대만, 홍콩등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중국계 동료들이 모두 어이 없게 생각하는 잘못된 정보들이 지금도 창조과학을 증거하는 인기 자료로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창조과학회의 주장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주초위왕의 파자놀이는 대쪽같은 기개를 지녔던 조광조와 유교적 이상 정치를 구현하려던 젊은 선비들을 몰살시켰다. 오늘날의 창조과학회가 범하는 배선(船)자 같은 파자놀이가 또 다른 안타까운 일을 만들지는 않을지 하는 염려가 나만의 기우는 아닌 듯 싶다.


출처 : 아론의 송아지(저자 임택규, 출판 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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