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대화

우주의 다섯가지 특성

w.j.lee 2024. 4. 24. 13:49

 

우주의 다섯가지 특성

 

그럼 구체적으로 과학자들이 경험하는 우주에 관해서 얘기해 볼까요? 
과학자들이 만나는 물리적인 우주는 과연 어떤 특성들 을 갖고 있을까요? 
지난 100여 년 동안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는 극적으로 변해 왔습니다.
천상의 신들이 해와 달과 별들을 마차에 싣고 운행한다거나 용왕이 파도와 폭풍을 일으킨다거나 산신령이 나무와 숲을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굳이 신적 존재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우주를 파악하려고 했던 고대 중세 사람들도 지구가 편평하거나 지구는 움직이지 않으며 우주에 중심에 있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던 지식과는 매우 다른 우주의 모습과 특성들을 현대 과학이 밝혀 주었습니다.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류가 발견한 우주의 특성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중에 저는 다섯 가지의 특성이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특성들을 하나하나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이 특성들이 어 떤 원인이나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겨났느냐는 질문과 더불어, 왜 우주는 이런 특성들을 가져야만 하는지, 그리고 그 특성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을 함께 던져보려고 합니다.
만일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다면 우주의 기원과 우주를 통해 탄생한 인류의 의미에 관해서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진리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1. 시공간의 광대함과 경이로움

우주의 특성 중에 첫째로 꼽아 볼 수 있는 것은 시공간의 광대 함과 경이로움입니다. 

거대한 우주 공간에는 대략 1,000억 개 단위의 별들이 중력으로 서로 묶여있는 은하들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물론 은하들은 10만 개가량의 별로 구성된 왜소은하에서 수십 조개 이상의 별로 구성된 거대타원은하 등 다양한 크기와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은하를 꼽자면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와 가을철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가 있습 니다.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는 각각 수천억 개가량의 별 들을 거느리고 있지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수많은 별과 그 별들이 거느리고 있을 목성이나 지구와 같은 수많은 행성, 

수 많은 블랙홀, 별들을 다 합쳐 놓은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암흑물질,

그리고 엄청난 양의 가스가 중력으로 한데 묶여서 하나의 거대한 소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은하입니다. 

 

우주에는 우리 은하나 안드로메다 은하와 같은 은하가 최소한 1,000억 개 이상 존재합니다. 

우리 은하보다 덩치가 작고 더 적은 별들로 구성된 왜소은하들까지 포함하면 수조 개 이상의 은하가 우주 공간을 메우고 있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 피 부로 느끼게 해주는 사실 중 하나가 바로 빛의 속도가 유한해서 과거를 볼 수 있다는 사실입 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메우고 있는 수많은 은하를 하나하나 관측하고 연구합니다.

그런데 은하들까지의 거리가 지구 표면 대륙 간의 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멀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은하의 과거 모습을 직접 관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 250만 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곳의 빛이 우리에게 오는 데 250만 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보는 안드로메다 은하의 모습은 250만 년 전 과거의 모습입니다.

빛이 우리에게 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보는 빛은 그만큼 오래전에 안드로메다 은하를 떠난 빛이고,

그래서 우리가 보는 안드로메다 은하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모습입니다.

 

지구를 넘어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으로 나가면 멀리 볼수록 과거를 보게 되는 타임머신 효과를 경험하게 됩니다.

멀리 볼수록 빛이 우리에게 오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만큼 더 과거를 볼 수 있습니다.

거리에 따라서 은하들을 하나하나 관측하면 시간에 따라 점점 더 과거를 관측할 수 있습니다. 

가령, 1,000만 년 전, 1억 년 전, 10억 년 전 과거를 거리에 따라 차례로 볼 수 있는 셈입니다. 

20세기에 천문학 관측시설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우리는 우주의 초기까지 직접 볼 수 있 게 되었습니다.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100억 년 이상의 과거에 해당하는 우주 초기 모습을 직접 관측합니다.

 

그 끝에서 우리는 아직 별과 은하가 탄생하기도 전의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볼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의 우주, 즉 가장 먼 과거의 시점 에서 우리는 우주 공간을 처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된 태초의 빛 first light 이라 불리는 우주배경복사를 만납니다.

광속의 유한성 때문에 생기는 타임머신 효과에 따라 우리는 우주의 모습을 시간의 파노라마로 현재 모습에서 138억 년 전 과거 모습까지 생생하게 관측할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이 측정한 우주의 크기는 빛의 속도로 100억 년 이상을 달려야 하는 광대한 크기입니다. 

1,000억 개가 넘는 수많은 은하가 메우고 있는 거대한 우주 공간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광대함을 드러냅니다. 

100억 년이 넘는 우주의 역사와 광활한 우주의 크기 앞에서 우리는 모종의 경외감을 경험합니다.

아마도 무한에 가까운 시공간 앞에서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가 대비되며 우리 마음에 경이로움이 찾아오는지도 모릅니다. 

우주 시공간의 경이로움은 질문을 낳습니다. 

고요한 한밤 중에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을 지긋이 쳐다본 적이 있는 사람 이라면 누구라도 던졌을 바로 그 질문입니다. 

우주는 왜, 그리 고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일까? 

이 거대한 시공간의 우주와 나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현대의 표준우주론은 빅뱅이라는 말로 우주의 시작을 기술합니다.

현대우주론은 20세기 초에 허블과 르메트르라는 천문학자가 각각 우주의 팽창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약 100년 전인 1920년대에 과학자들은 우주는 변하지 않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점점 더 커지는 동적인 우주임을 발견했습니 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주가 더 커진다는 우주 팽창의 발견은 우주가 어느 한 시점에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암시를 줍니다. 왜 냐하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우주가 한 점만큼 매우 작은 시작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작점을 흔히 대폭발, 영어로 는 빅뱅 big bang 이라고 부릅니다.

현대우주론과 천문학은 빅뱅 이후에 우주가 어떻게 팽창하고 거시구조와 은하들이 어떻게 형 성되는지를 다양한 관측시설을 통해 얻은 방대한 양의 경험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잘 설명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표준우주론은 빅뱅 그 자체에 관해서는 엄밀한 과학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우주의 시작에 관해서는 아직 엄밀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현대 우주론을 가르치다 보면 빅뱅 이전에 관해서 질문을 받을 때가 많 습니다.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빅뱅 자체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묻는 질문이지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약 138억 년 전인 빅뱅의 시점에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최소 1,000억 개 이상의 은하들이 갖는 질량과 에 너지가 한꺼번에 만들어져야 합니다.

 

빅뱅의 시점이 우주의 시작점이라면 시간도 시작되고 공간도 시작되어야 합니다.

마치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듯 모든 것이 빅뱅의 시점에 탄생해야 합니다.

질량-에너지 보존 법칙이 지켜지는 우주에서 빅뱅이라는 시점은 모든 물질이 만들어지는 첫 출발점에 해당하는 것이 지요.

물론 빅뱅 이후에는 에너지가 물질이 되거나 물질이 에너지가 되는 방식으로 유에서 유로의 변화가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빅뱅 이후 138억 년 동안 우주는 질량-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따르는 평범한 우주가 되는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빅뱅의 시점은 시공간과 물질과 에너지의 탄생 시점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물리학자 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처럼 빅뱅 이전에 어떤 다른 우주가 있었던 것일까요?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우주는 그 많은 우주 중의 하나인 걸까요?

빅뱅은 단지 우리가 사는 우주의 시작을 말하는 것일 뿐일까요?

빅뱅은 무에서 유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주 중에서 단지 하나의 우주가 시작되는 것뿐 이므로 별로 특별하지 않은 사건일까요?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많다는 이론을 다중우주multi-verse론 이라고 부릅니다. 

다중우주론은 빅뱅의 기원에 관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효과적으로 피해갑니다. 

왜냐하면 빅뱅은 단지 수많은 우주 중에 우리 우주의 시작점일 뿐이라고 설명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질문은 남습니다. 

만일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면, 그 수많은 우주는 또 어떻게 기원했을까요? 

그 수많은 우주를 만들어 낸 물질과 에너지는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그 많은 우주는 어떤 시점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아니면 다중우주는 원래 그냥 존재하는 것일까요?

 

우주의 기원에 관한 설명으로는 초끈이론을 비롯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으며 여러 이론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답하기에는 아직 요원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다중 우주에 대한 경험적 증거가 없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론적 연구의 결과들도 아직 엄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38억년 전 빅뱅의 시점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우주의 크기는 매우 작아져서 양자역학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플랑크 시간보다 작은 시간을 다룰 수가 없습니다.

1043분의 1초가 플랑크 시간입니다.

1의 뒤에다가 0을 43개 붙인 만큼의 큰 숫자로 1초를 나눈, 곧 아주아주 작은 찰나의 시간입니다.

현대우주론은 138억 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주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나름대로 잘 알려주지만

138억년전 시점으로 가까이 가면 심각한 한계를 드러냅니다.

 

특히, 빅뱅의 시점은 플랑크 시간보다 작으므로 현대물리학으로는 다룰 수 없는 영역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다룰 수 없는 영역은 흔히 특이점이라는 말로 대체합니다.

미래에 양자역학과 중력이론이 통합되어 새로운 물리학이 나온다면 빅뱅의 시점을 다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다중우주론에 대한 면밀한 이론이 완성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다중우주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중우주론은 백지수표에 가까운 하나의 가설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우주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첫 번째 질문을 넘어,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을 던져 볼까요? 

이 질문에 과학은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이 거대한 시공간의 우주는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혹은 우주라는 존재는 우주보다 더 위대한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함의를 품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 우주는 우리 인류 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광대한 시공간의 우주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행성인 지구에 사는 인류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주라는 존재는 인류의 탄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까요?

이 우주는 그저 우리 인류가 탐험하고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광활한 사막 같은 곳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인류는 우주와 어떤 유기적이고 협력적인 관계에 있을까요?

 

밤하늘과 우주를 보면서 우리는 모종의 경외감을 느낍니다. 그 경외감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 경외감은 숭고한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을 살린 위대한 인물이나 탁월하고 훌륭한 스승을 만날 때,

혹은 감동적이고 뛰어난 예술작품을 만날 때 경험 하는 감탄이나 들뜸 같은 특별한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우주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감은 신학자 루돌프 오토가 표현한 '누미노제'와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오토는 거룩한 존재앞에서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직면하면서 느끼는,

한편으로는 매혹적이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신비한 체험을 누미 노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물론 누미노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이고 초이성적입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숨어 있던 정체성,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정체성을 자극해서 언제부턴가상실한 그 정체성은 물론이고,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의 무한성에 대비 되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직관이며 자신이 창조된 피조물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을 누미노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광대한 우주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경외감도 바로 이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외감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고 신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억압적인 방식은 아닙니다.

두려움보다는  매혹적이고 신비스러운 감정이 더 원천적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직면하면서 자신보다 더 큰 세계를 갈망하고 무한과 신에 귀의하고자 하는 이끌림이 바로 이런 경외감으로, 실존적 체험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습니다.

 

창조주와 창조된 인간과 피조물들이 하나로 연결되었던, 지금은 잃어 버리고 깨어져서 두려움이 동시에 작용하기도 하지만,

창조를 통해 원래 부여되었던 그 본원적인 관계에 대한 소망과 바람이 매혹적인 이끌림으로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를 만나는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경외감의 실체일 것입니다.

 

2. 우주의 수학적 특성

과학자들이 경험하는 우주의 두 번째 특성은 우주가 수학으로 매우 잘 기술된다는 점입니다. 

18세기 초에 아이작 뉴턴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현상이나 달과 행성들이 하늘에서 움직이는 현상이

모두 만유인력 법칙이라는 같은 원리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근대과학의 출발점으로 종종 여겨지는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현상이나

별과 행성들의 운동이 모두 자연계 밖의 천사와 같은 어떤 에이전트에 의한 작용이 아니라

자연계 내의 어떤 원인을 통해 작동한다는 인과관계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우주의 작동 원리 중 하나인 만유인력 법칙이 너무나 간단한 수학적 표현으로 깔끔하게 기술된다는 점입니다.

매우 간단 한식으로 표현되는 중력 법칙은 놀랍게도 100억 년 이상의 긴 기간에 수많은 은하가 형성된 과정과 현재 우주가 운행되는 모습을 훌륭하게 기술해 줍니다.

중력 법칙뿐만이 아닙니다.

자연 법칙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법칙이 모두 간단한 수학적 표현으로 자연현상을 깔끔하게 기술합니다.

맥스웰 방정식이라고 불리는 전기와 자기 현상을 다루는 전자기학 법칙도 그렇습니다.

 

간단한 네 개의 방정식은 전기와 자기 현상을 놀라울 정도로 잘 기술해 줍니다. 

물리학자들에게 이 네 개의 방정식은 너무나 명료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전자기 현상이 이렇게 간단하고 깔끔하게 기술될 수 있다는 건 한편으로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 입니다.

 

경험적인 데이터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실험이 이루어졌고 방대한 관측이 수행되었습 니다.

그 과정에서 쌓여 온 데이터를 통해서 과학자들은 우주가 수학을 통해 훌륭하게 잘 기술된다는 우주의 특성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수학은 과학자들의 언어라고 불립니다.

길게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한 줄의 식으로 명료하게 표현되는 수학 언어로 우주가 갖는 다양한 작동 원리들과 인과관계들을 군더더기 없이 기술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주가 수학적으로 잘 기술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도 가능해졌습니다. 

과학이 놀랍게 발전한 이유는 경험적 데이터를 모순 없이 잘 설명하는 설명체계,

즉 과학 이론을 잘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그 이론을 통해서 다른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혹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 입니다.

 

다른 학문과 달리 과학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며 발전한 이유는 바로 이 예측 가능성 때문입니다. 

수학적 기술을 통해, 예측한 내용이 맞는지 틀린지를 검증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중요해졌습니다.

독립적인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새로운 경험적 데이터를 얻어서 그 예측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과학자들은 매우 효과적으로 합의를 끌어냅니다.

서로 다른 설명이나 이론을 제시하며 논쟁하던 과학자들 사이에서 빠르고 효과적으로 합의된 결론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이 모 든 과정은 우주가 수학을 통해 매우 훌륭하게 기술된다는 사실에 기반합니다.

 

도대체 우주는 어떻게 이렇게 수학적 특성을 갖는 것일까요?

우주가 수학적인 특성을 갖는다는 것은 우주가 규칙성과 논리성, 명료성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이럴 땐 이랬다가 저럴 땐 저런 방식으로 작용하는 변덕스러운 우주가 아니라,

같은 원인이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규칙과 질서가 우주의 특성입니다.

그러한 규칙성은 수학의 논리처럼 매우 합리적으로 서로 연결 되어 하나의 모순 없는 설명체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과학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려 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은 여기저기 덧칠해진 지저분하고 볼썽사나운 낙서 같은 그림이 아니라

때론 복잡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매우 명료하고 군더더기 없이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인류가 파악한 우주에 이렇게 수학적 특성이 있다는 것은 우주가 질서 있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입니 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우주가 무질서하고 변덕스럽거나 혹은 귀신들이나 마술사들이 설치는 혼잡스럽고 엉망진창인 우 주가 아니라 수학으로 산뜻하게 기술되는 우주인 이유는 무엇 일까요?

 

우주가 수학적이라는 사실은 우주의 기원에 어떤 지성이 있다는 생각을 낳습니다.

사실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우주가 어떤 무한한 지성에 의해서 탄생했고 운행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은 그 우주적 지성을 신의 마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흔히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처럼 자연의 이성적 원리를 신으로 여겼다며 범신론자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아인슈타인 자신은 무신론자나 범신론자가 아님을 밝혔다고 합니다.

우월한 이성적 능력을 가진 존재가 우주에 드러나 있다고 언급한 아인슈타인의 고백은 흥미롭습니다.

 

나의 종교심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나약하고 힘없는 정신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무한히 우월한 영을 향한 겸손한 감탄이다. 불가해한 우주에 드러나 있는 우월한 이성적 능력을 가진 존재에 대한 깊은 확신이 내 안에서 신의 개념을 형성한다.

 

아인슈타인뿐만이 아닙니다. 

뉴턴, 보일, 맥스웰, 하이젠베르크, 디랙 등 우주의 수학적 특성에 매료된 많은 과학자는

종교인이든 아니든 그것과는 별개로, 모종의 지성적 존재를 우주가 수학적 특성을 갖는 원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철학자나 과학철학자 중에서도 우주의 수학적 특성과 우주의 합리성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무신론자였던 앤터니 플루는 자신을 유신론자로 회심하게 만든 세 가지 이유 중 하나로 우주의 합리성을 꼽습니다.

수학으로 기술되는 우주의 합리성을 볼 때 무한한 지성이 우주를 창조했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는 것이

평생에 걸쳐 진리가 이끄는 대로 탐구해 온 지적 여정을 통해 그가 도달한 결론입니다.

물론 우주가 수학적 특성을 갖도록 만든 우주적 지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처럼 꼭 인격적인 신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가 수학으로 매우 훌륭하게 기술되는 특성이 있다는 경험적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힌트를 주는 셈입니다.

 

3. 우주의 우발성과 지성의 출현

세 번째로 우주의 우발성과 지성의 출현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 대우주론에 의하면 우주는 빅뱅에서 시작하여 팽창을 거치며 별과 블랙홀과 은하들을 만들며 진화해 왔습니다. 

100억 년 넘게 걸린 그 과정에서 놀랍게도 생명체가 탄생했고 지성이 출현 했습니다.

우주와 지구에서 펼쳐진 자연의 역사는 수많은 우발적 사건으로 가득합니다.

그 우발적 과정 끝에 지성이 출현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주의 역사가 우발적이었다는 말을 조금 더 풀어서 설명 해야겠습니다. 

과학은 모든 자연현상을 필연과 우연으로 설명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으면 필연이라고 기술합니다.

반면, 주사위를 던지면 여섯 숫자 중 하나가 나오는 것처럼,

다른 가능성도 있지만 한 가지 경우로 사건이 발생했다면 우연이라고 기술합니다. 

우연이라는 말은 그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의미이며,

우발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과학이 다루는 필연과 우연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필연과 우연과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가령, 너와 내가 만나 결혼한 것이 필연이었다고 말하면 마치 두 사람이 결혼하도록 운명지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에 짝사랑하는 여인을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말하면,

그 여인을 만나려는 목적으로 퇴근 시간에 그 여인의 회사 근처 지하철역에서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추어 지하철을 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 다.

목적이나 계획 없이 어쩌다 지하철을 탔는데 거기서 그 여 인을 만났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자연현상의 작동인, 곧 작동 원리에 관한 설명일 뿐이며,

목적인, 곧 목적성에 관한 설명은 아닙니다.

어떤 사건이 우발적이라는 과학적 설명은 그 사건이 꼭 그런 방식으 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즉,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는 뜻이지요.

필연이 아닌 모든 사건은 우연입니다.

들고 있던 핸드폰을 놓치면 땅으로 떨어집니다.

하늘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동전을 던지면 항상 앞면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뒷면이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앞면이 나오든 뒷면이 나오든 과학은 이 사건을 우연적 또는 우발적이라고 기술합니다.

 

과학의 필연과 우연을 어떤 목적성과 연관시키는 것은 과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범주의 오류를 낳습니다.

가령, 내가 핸 드폰을 놓쳐서 땅으로 떨어뜨린 사건을 과학이 필연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 핸드폰은 망가질 운명이었다거나 혹은 누군가가 내 핸드폰을 깨트리려고 계획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동전의 앞면이 나온 사건을 과학이 우발적이라고 기술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앞면이 나오도록 조작했거나

신이 어떤 목적을 갖고 앞면이 나오도록 섭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은 어떤 사건에 신이 부여한 형이상학적인 목적이나 계획이 있는지를 검증할 능력이 없습니다.

과학은 다만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 다른 가능성이 있었는지를 판단하여 필연과 우연으로 설명할 뿐입니다.

물론 누군가 조작했다면 과학으로 밝힐 수 있지 않느냐고 반론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신의 행위를 과학으로 측정하고 탐구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의 의도를 밝히는 일은 살인사건의 범죄자를 밝히는 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과학은 신이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그 유무를 판단할 수는 없으며 과학은 자연계 내의 인과관계를 단지 필연이나 우연으로 기술할 뿐입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주의 역사는 우발적입니다. 

즉, 138억 년 동안 흘러온 우주의 역사는 꼭 그렇게 진행되어야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지구는 46억 년 전이 아니라 더 일찍 생성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체들의 진화 과정도 꼭 한 가지 방식으로 일어나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침팬지는 손가락이 열 개가 아니라 여덟 개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우주의 역사를 되돌려 다시 한번 빅뱅으로부터 우주를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138억년 우주의 역사는 똑같이 반복될까요?

혹시 우주의 역사가 전혀 다르게 펼쳐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주를 다시 시작한다면, 우주의 한 변방에 우리 은하가 만들어지고,

우주 역사 후반부에 8개 행성을 가진 태양계가 형성되기 시작해서 태양에서 1억 5,000만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액체상태의 물을 갖는 지구가 생성되고,

지구의 진화과정을 통해 오대양 육대주가 생성되고 생명체가 출현해 진화하여 다양한 종이 생겨나고,

6,500만 년 전에 공룡이 멸종하는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는 그런 복제 우주가 만들어질까요?

 

사실 이 질문은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초기조건이 똑같다면, 물리법칙에 의해서 인과관계의 체인이 이어지는 우주이기 때문에 아무리 다시 반복해도 정확하게 똑같은 우주가 될 것으 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우발성도 정확하게 필연이 됩니다.

 

주사위를 던져서 3이 나온 것은 우발적입니다.

그러나 잘 따져보면 주사 위를 잡았을 때 어느 숫자를 위 쪽으로 오게 잡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얼마의 힘을 주면서 던졌는지,

주사위가 떨어진 책상 표면의 마찰계수는 얼마였으며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세게 불었는지 등의 물리적 조건 들이 결국 3이 나오도록 작용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던지기 전에는 어느 숫자가 나올지 모르지만 던지고 난 후에는 왜 3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필연적 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입 니다. 

 

즉 우발적으로 보이는 사건도 사실은 초기조건과 물리적 환경이 결정된 상황에서 결국 필연적으로 3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우발성은 단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결과를 결정하는 물리적 조건을 100퍼센트 알 수 없다는 뜻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발성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필연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우발성을 '인식론적 우발성' 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우연과 필연은 물리적 현상뿐만 아니라 생명현상에도 적용됩니다. 

진화는 여러 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으므로 우발적이라고 기술할 수 있지만

사실 진화가 일어나는 조건과 환경을 고려 하면 결국 진화가 그 방향으로 일어난 것은 필연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건들이 모여서 진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필연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물론 물리현상과 다르게 생명현상에서 발생하는 우발성은 다양한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자끄 모노는 '우연과 필연'에서 아미노산 잔기들의 배열을 다루면서

연에 기초한 배열들이 반복되면서 질서와 규칙이 되어 필연으로 전환된다고 설명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우발성이 결국은 필연성의 결과였다는 이 견해에 따르면 초기조건이 같은 우주를 빅뱅부터 다시 반복했을 때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역사를 갖는 쌍둥이 우주가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이 견해는 우발성을 인정하지만, 그 우발성은 초기조건을 다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에 의한 우발성일 뿐입니다.

 

기상 현상 같은 복잡계들이 이런 우발성의 대표적 예입니다.

날씨는 분명히 물리적 현상이지만, 한 달 후 날씨는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날씨는 말 그대로 우발적입니다.

그 이유는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 너무 많고 사건에 동참하는 입자가 너무 많은 복잡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일 날씨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지만, 4주 후 월요일 오후 2시의 날씨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4주 동안 쌓일 우발성의 총 합을 생각해보면 마땅히 예상되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4주가 지나 월요일 오후 2시에 비가 내렸다면 그것은 정확히 물리적인 조건들에 의해서 결정된 것입니다.

대륙의 고기압과 해양의 저기압이 다양한 조건을 통해서 밀고 밀리면서 그 시간에 한반도에 비를 내리게 한 것입니다.

돌아보면 이 사건은 필연적이라 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주는 우발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필연적인 사건들이 연속되면서 하나의 역사를 갖게 될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주를 다시 시작하면 똑같은 우주가 반복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초기 조건이 결정되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양자역학이 다루는 미시세계에서 바로 그런 일 들이 일어납니다.

전자의 운동과 같은 미시세계 현상은 똑같은 조건을 주더라도 다른 결과가 발생합니다.

주사위로 비유하자면 아무로 똑같은 초기조건과 물리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하더라고 매번 다른 숫자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 미리 결정될 수 없다고 알려 줍니다. 

잘 알려진 불확정성의 원리가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그 대신 어떤 일이 발생할지를 다만 확률적으로 기술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양자역학은 자연 세계의 비결정성을 보여 준다고 해석합니다. 

즉, 양자역학은 필연이 아니라 우발성을 드러냅니다.

똑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 결과는 필연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발성은 필연의 결과가 아니라, 필연과는 다른 우발성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우발성은 '인식론적 발성과 다르게 '비결정적 우발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연 세계에 정말로 비결정성이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필연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보이는 양자역학의 사건들도 결국 인간이 파악해 내지 못한 어떤 다른 물리적 조건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남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낳은 아버지라고 불리지만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자연 세계에는 인과관계나 필연을 뛰어넘는 우발적인 사건이 허용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의 철학을 잘 드러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은 숨은 변수를 찾기 위한 연구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물리적 조건을 똑같이 주었는데도 서로 다른 결과가 발생하는 것은 파악하지 못한 어떤 숨은 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 숨은 변수 를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미시세계의 사건을 필연으로 만들고 비결정성을 없애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최소한 아직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연 세계에는 필연적으로 결정되 지 않는 어떤 비결정성이 있다는 해석은 양자역학의 주류 해석에 해당합니다.

 

양자역학의 우발성을 수용한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우주의 역사는 똑같이 반복될 수 없습니다.

초기조건을 똑같이 주고 빅뱅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우주는 전혀 다른 역사를 갖게 될 것입니다.

초기 우주는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 미시세계에 해당하고, 초기조건이 같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주가 팽창해서 더는 우주가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지 않을 만큼 커지는 시기가 곧 도래하겠지만

여전히 우주 안에는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는 영역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 입니다.

우주에 담긴 비결정성은 수많은 우발성을 드러내며 전혀 다른 결과들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 결과들이 연속적으로 쌓이면서 우주는 전혀 다른 역사로 펼쳐질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생명체가 출현하는 과정, 그리고 생물 진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비롯해 미시세계의 현상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우발성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편, 자기 조직화를 특징으로 하는 생명현상에는 양자역 학의 우발성과는 다른 차원의 우발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 다. 

입자들의 물리적 작용을 넘어 세포 이상의 생명현상에는 어느 정도 자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리화학적 구조나 생화학적 구조에 기반하지만 그 구조로 환원될 수 없는 한 단계 위로 창발된 생명 현상들은 새로운 특성들을 갖습니다.

그 특성들은 '생물학적 우발성'을 드러냅니다.

가령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은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물리적 조건을 준다고 하 더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사결정은 자유의지가 작동하는 한 우발적이라는 말입니다.

생명체들의 자율성은 필연이 아니라 우발성으로 기술할 수 있습니다.

그 자율성들의 합은 생명의 역사를 다른 방향으로 바뀌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를 다시 시작한다면 최소한 인간의 역사는 다른 방향으 로 전개될 수 있는 우발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138억 년의 우주 역사는 필연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우주는 매우 우발적인 결과입니다.

이 우주에서 생명체가 출현한 것도, 더 나아가서 지성이 탄생한 것도 우발적입니다.

즉, 우주가 꼭 지성을 출현시켜야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주는 생명체가 없는 우주가 되었을 수도 있고, 인간처럼 우주의 의미를 묻는 지성이 탄생하지 않는 우주가 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서 지성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놀랍습니다.

우주의 우발적 사건들은 우주의 역사를 어느 방향으로도 흘러가게 할 수 있었지만

그 연속되는 우발성의 결과로 우주는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왔으며,

우주에는 마침내 지성이 출현했습니다.

 

최근에는 인간 지성을 넘어서는 뛰어난 인공지능이 만들어지고

결국에는 초지성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 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지성이란 무엇인가와 관련해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 킵니다.

그러나 일단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우발성의 과정 끝에 지성이 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불 러일으키는 질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우주의 우발성은 어떻게, 그리고 왜 지성을 탄생시킨 걸까요?

우발적인 사건들을 통해 태어난 지성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지성은 단지 물리적인 우주가 어쩌다가 만들어 낸 확률이 낮은 사건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우주는 마치 살아 숨 쉬는 유기체 같아서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고 알아줄 지성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래서 연속되는 우발성의 끝에 인간이라는 지성을 만들어 내기로 작정한 것일까요?

혹은 우주적 지성에 의해서 우주가 만들어졌고, 우발적 과정을 거치면서 우주적 지성이 자신을 닮은 인간 이라는 지적 존재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이 우주는 지성을 출현시킬 목적이라도 가졌던 것 일까요?

아니면 지성의 출현은 수많은 우발적 사건이 연속된 끝에 생긴 억세게 운좋은 사건 일까요?

 

우발성의 역사 끝에 탄생한 지성에 관해 끝없이 이어지는 이 질문들을 과학으로 답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 문제는 과학의 도움뿐만 아니라 철학을 비롯한 형이상학적 고찰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질문들입니다.

 

우주는 생명체가 없는 우주 가 되었을 수도 있고, 인간 처럼 우주의 의미를 묻는 지 성이 탄생하지 않는 우주가 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서 지성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기적이라고 부를 만큼 놀랍 습니다.

 

4. 인간의 이성과 수학적 우주의 공명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의 네 번째 특징은 인류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한다는 사실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 없다고.

인류의 지성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길게 잡으면 1만 년입니다. 

돌도끼와 돌칼을 다루던 호모 사피엔스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현대인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우주의 역사와 우주의 광대함을 알아내었고,

물리적 우주가 운행되는 자연법칙과 작동 원리를 파악해 왔으며,

우주 의 기원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광대함과 장구함 앞에 인류의 역사를 놓고 비교해 보면 아인슈타인의 말에 고개가 끄덕 여집니다.

칼 세이건의 표현처럼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 작은 행성에 사는 지구인들이 어떻게 우주의 물리적 특성과 작동방식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짧은 지성사를 가진 인류가 도대체 어떻게 수학을 이해하고 과학을 발전시켜서 우주의 기원과 미래를 논하게 되었을까요?

 

인류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식론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인류에게 어떻게 앎이라는 것이 가능해졌을까요?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서 사유를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하다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이성의 작업을 쌓아 갔습니다.

존재하는 것들을 만나는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존재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

그 능력을 인류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인식 능력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에 쌓여 있습니다. 

더군다나 인류의 인식 세계가 우리 삶의 무대가 되는 지구를 넘어 우주 끝까지 펼쳐져 있다는 점은 놀랍습 니다.

 

우주를 파악하는 인식 능력이 단순한 정보처리 능력은 아닙니다.

인류의 지적 능력은 보고 듣고 냄새 맡은 정보를 처리해서

천적이 다가오는지 아닌지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어디로 도망갈지를 처리하는

단순한 정보처리나 판단 능력을 넘어섭 니다.

 

추상적인 사고와 감각, 자아에 대한 인식,

나아가 우주와 인류의 관계를 묻고 미래를 조망하는 인류의 지성을 단순하다 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지성적 능력을 통해 우주를 인식해 낸 결과,

인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모든 것이

작위적으로 가능한 마술적 우주나 아이들이 제멋대로 그린 조잡한 그림이 아니라,

필연과 우발성이 빚어낸 조화와 다양성을 바탕으로 질서 있게 진화해 온 우주로,

상당히 명료하고 아름답게 그 실 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류의 지성사를 통해 인식해 낸 우주의 모습은 여전히 미완성이고,

얼마나 실재와 가까운지에 관 해서도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려 낸 이 그림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우주의 합리성과 수학적인 특성도 놀랍고

그 우주에서 지성이 출현했으며 인류가 우주의 모습을 어느 정도 실재와 가깝 게 인식해 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 주목할 만한 점은 우주의 특성과 인간의 이성이 서로 공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인류는 추상적 사고를 통해 수학의 체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수학은 추상적 사고를 바탕으로 합니다.

인류는 수의 개념을 알아냈고 기하와 공간의 개념을 체계화했습니다.

수학으로 표현하는 비례 식이나 미분 방정식은 그 자체가 간결하고 아름답습니다.

실재와 상관이 있건 없건 간에 수학을 풀어가는 과정,

정리를 증명해 가는 과정은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지적 사유입니다.

 

물론 수 학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이 실제로 우주에 존재하는 않을 것입니다.

수학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있는 우주의 운명은 여러개가 가능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운명은 하나로 귀결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추상적 사고의 결과인 수학의 언어는

인류가 경험하는 우주, 곧 측정하고 실험하고 파악한 우주의 특성들을 매우 훌륭하게 기술해 줍니다.

우주가 수학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앞에서 언급했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간의 이성이 우주의 특성과 공명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우주에 대한 경험의 씨줄과 추상적 사고라는 날줄을 엮어

인식의 세계 안에 우주라는 옷을 만들어 파악해 냅니다.

 

인간의 이성과 우주의 특성이 공명한다는 점은 자명한 듯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가령, 두 사람이 대화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같은 언어로 대화를 한다면 서로 말이통할 것입니다. 

백장미라는 단어를 말하면 둘 다 하얀 장미꽃 잎과 가시가 있는 줄기를 떠올릴 것입니다.

"배가 고파요"라 는 문장을 말하면 그 의미가 서로 통할 것입니다.

같은 언어를 매개로 두 사람은 실재에 대한 똑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한다면 어떨까요?

가령, 포르투갈 말로 로사 블랑카rosa branca라고 해도 일본어를 쓰는 상대방은 백장미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두 사람의 언어가 서로 공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몸짓입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배를 가리키며 슬픈 표정을 짓는 몇 번의 노력을 거친다면

아마도 상대방은 배가 고프다는 뜻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뜻은 통합니다.

언어는 서로 공명하지 않지만 배고프다는 개념이 경험을 통해 각자의 인식틀 안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몸짓을 통해 그 개념이 서로 공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음식 을 먹지 않는 외계인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식물처럼 광합성으로 모든 영양분을 만들어 내는 이 외계인은 배고픔을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구인과 외계인이 아무리 서로 몸짓을 주고 받아도 외계인은 지구인이 배고프다는 걸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배고프다는 개념이 서로 공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계인의 인식 세계에는 배고픔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어나 몸짓이나 수학은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유하는 경험이나 정보가 있어서 공명할 수 있는가입니다.

인간의 추상적 사고와 우주의 특성이 수학이라는 언어를 매개로 서로 공명한다는 말은

인류의 지성과 우주의 특성 사이에 공유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을까요?

인간의 이성과 우주의 특성이 공명한다는 말은 인간의 이성과 우주의 특성을 각각 만들어 낸 어떤 원리나 우주적 지성이 먼저 존재했다는 뜻일까요?

그 우주적 지성에 의해서 우주의 특성이 생겨났고 지성을 가진 인류가 출현했다는 함의가 있는 걸까요?

아니면 수학적 특성을 가진 우주에서 우발적으로 탄생한 인류도 자연스럽게 수학을 파 악해 낼 지성이라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요?

수학적 특성을 갖는 우주에서 처음부터 예고된 대로 지성이 탄생했고,

그렇게 탄생한 인류가 지성을 통해 우주를 인식하게 된 것일까요?

 

5. 우주의 특별한 역사

우주의 다섯 번째 특징은 인류를 탄생시킨 특별한 역사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우주의 역사는 아무렇게나 흘러온 것이 아니라 100억 년의 진화과정 후에 생명체와 인류가 탄생하고 생존할 수 있는 매우 특정한 혹은 특별한 방향으로 흘러왔습니다. 

앞에서는 우발성을 통해 탄생한 생명과 지성에 관해 살펴보았지만, 이번에는 우주의 특별한 역사를 만들어 낸 특별한 물리적 조건들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인 마틴 리즈는 6개의 숫자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물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6개 상수는 특정한 값을 갖고 있는데 그 값들이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우주는 매우 다른 역사를 가졌을 것이다."

즉, 그 상수들이 다른 값이었다면 우주는 인류가 존재할 수 없는 다른 역사로 펼쳐졌을 거라는 뜻입니다.

과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물리 상수들의 값이 달랐다면 우주는 지금과는 다른 특성을 가졌을 것이며,

우주의 역사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서 인류가 존재할 수 없는 우주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원자 간 결합력이 너무 컸더라면 수소가 다 없어져서 물이 생생되지 못했을 것이고,

원자 간 결합력이 너무 작았더라면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지 못해서 우주에는 산소나 탄소 같은 입자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주에 들어있는 질량의 총합이 지금과 달랐더라면, 우주는 팽창 속도가 매우 빠르거나 매우 느려서 별들이 핵융합 반응을 적합하게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탄소가 없는 우주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탄소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생명 과학을 통해서 배운 모든 생명체에게 탄소가 꼭 필요하기 때문 입니다. 

탄소가 없는 우주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우주라는 뜻입니다.

 

물론 탄소가 필요 없는 생명체를 상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지구상의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생명체는 탄소를 기반으로 하고 물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경험적 한계를 넘어 다양한 생명체로 사유를 확장해 볼 수 있지만,

우주에 그런 생명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경험적 증거가 없는 이상,

우선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생명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우주의 역사는 탄소가 만들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필 탄소를 만들어 내고 생명체가 태어 나고 생존하기에 적합한 우주가 되었습니다.

이런 우주를 마치 누군가 그렇게 세밀하게 조정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미세조정우주 fine-tuned universe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우주가 준비해 온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과학철학자들은 이런 우주의 특성을 '인류 원리' 혹은 '인간 원리'anthropic principle 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도대체 우주는 왜 이런 특성을 갖는 것일까요? 

현대 과학으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물리학의 기본 상수가 왜 꼭 그 값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래에 과학이 더 발전하면 왜 우주가 하필 이런 조건을 갖고 인류를 탄생시킨 방향으로 흘러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과학적 답변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열려 있어야 합니다.

19세기 과학을 돌아보면서 그 낮은 수준에 미소짓게 되듯이,

현재 21세기 과학이 최고의 완성된 과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특별해 보이는 우주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우주는 인류 원리라고 부를 만큼 특별한 방향으로 흘러왔는지,

과학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다섯 가지로 살펴본 우주의 특성은 우리에게 심오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주의 광대함과 경이로움,

우주의 합리성과 수학적 특성,

우주의 우발성과 지성의 출현,

인간이 우주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독특한 역사로 기술되는 우주,

이런 특 성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와 같은 과학적 질문과 더불어 이런 우주의 특성이 던지는 함의가 무엇인지를 묻게 합니다.

우리 앞에는 '왜 우주는 이런 특성을 가져야만 하는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과학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출처 : 대화(저자 강영안, 우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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