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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질문 : 어떻게 그리고 왜

w.j.lee 2024. 4. 22. 14:53

 

두 가지 질문 : 어떻게 그리고 왜

 

다양한 경험 중에서 먼저 과학적인 경험을 얘기해 볼까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직업이 과학자이다 보니 과학 이야기는 더 쉽게 할 수 있겠지요.

과학으로 탐구한 우주는 여러 특성이 있습니 다.

자, 우주를 어떻게 정의해 볼까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우주라고 정의해 볼 수도 있습니다.

보통 유니버스universe 라고 하지 요.

유니버스 우주는 이런 질문을 낳습니다.

'우주는 왜 존재하 는 걸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존재할까?'

 

이 질문은 태양이나 지구, 북한산이나 내가 키우는 반려견 등 존재하는 모든 것에 관해서도 똑같이 던질 수 있는 공통된 질 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우주에 적용할 때는 질문의 차원이 약간 달라집니다.

 

가령,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왜 존재하게 되었나요"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답해 볼 수 있겠습 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내 부모님이 서로 만나서 사랑하고 나를 낳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서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산도 마찬 가지입니다.

북한산이 존재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지층이 다양 한 지질학적 과정을 거치며 생성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니버스로 불리는 우주 전체에 관해 이 질문을 던져 보면, 그런 식으로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우주라고 정의한다면,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왜 무nothing 대신에 유something가 존재하는가"라는 질 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우주는 존재할까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우주가 존재하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과학은 이 질문에 충분한 답을 줄 수 있을까요?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과학자들이 지칭하는 우주는 흔히 물리적 우주physical universe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우주라고 정의할 때와는 약간 의미가 달라집니다.

물론 물리적 우주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즉, 물질과 에너지로 구성된 물리적 우주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통 자연주의 naturalism 를 믿는다고 해서 자연주의자라고 부르거나 물리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합니 다.

 

자연주의가 옳은지, 아니면 물리적인 우주 너머에 어떤 다른 실재가 있는지는 철학이 다룰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학자 중에는 물리주의자도 있지만, 물리적 우주 외에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불가지론자도 있습니다.

또한 물리적 우주 외에도 어떤 실재가 존재한다고 보는 비물리주의자도 있습니다.

 

자연주의가 옳든 틀리든 간에 어쨌든 과학자들은 물리적 우주를 대상으로 연구합니다.

그 이유는 과학으로 탐구 가능한 범위가 물리적인 우주로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혹은 과학자들은 우주의 물리적인 측면을 연구한다고 말할 수 도 있습니다.

천문학자인 저도 우주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우리가 사는 우주,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적인 우주를 주로 지칭 합니다.

 

우리가 사는 물리적 우주는 아무렇게나 생긴 우주가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마음대로 그려 낸 우주는 실제로 우리가 사는 우주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날아 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처럼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우주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자유지만,

우리가 실제로 사는 우주에는 그런 모습이 없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머리가 셋이고 다리는 일곱인 동물을 마음대로 상상해 볼 수는 있지만,

지구에는 그런 동물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주의 어느 다른 행성에는 그런 동물이 존재할 수도 있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좋은 모습만을 골 라서 만든 우주, 그런 우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령, 중력 법칙이 질서 있게 별들의 운행을 규정하는 그런 우주라면,

나무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칠 수도 있는 우주가 됩니다.

별들은 안정적으로 중력 법칙에 따라 운동하지만 나만 중력을 무시하면서 마구 하늘을 날을 수 있는 그런 마법사의 우주는 동화에서나 가능할 뿐입니다.

 

반면, 우주는 우리가 과학을 통해서 만나고 경험하는 딱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주는 과학을 통해 경험적으로 파악한 특성들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코스모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질서라는 뜻입니다.

과학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는 코스모스의 우주입니다.

칼 세이건이 자신의 책에 "코스모스"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우주가 자연법칙으로 규정되는 질서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자연법칙으로 상당히 잘 기술되고, 예측 가능 하며 질서 있는 우주입니다.

우주는 과학자들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수학을 통해 매우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기술됩니다.

물론 코스모스의 우주는 군인들이 줄을 맞추어 집합해 있듯이 우리 눈에 보기에 깔끔하고 대칭적이며 정렬되어 있다는 뜻은 아닙 니다.

우주에는 복잡성과 불규칙한 형태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특성들까지도 하나의 통일된 규칙을 통해 수학적으로 잘 기술될 수 있습니다.

카오스 이론도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 안에서 규칙성을 찾습니다.

유니버스라는 말과 달리 코스모스라는 말 은 우주가 갖는 특성을 드러냅니다.

바로 과학자들이 경험하는 질서라는 우주의 특성 말입니다.

 

우주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어떤 특성이 있습 니다.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본질 혹은 본성이라고 할 수도 있 겠지요. 

존재의 특성은 다시 질문을 낳습니다. 

왜 그런 특성이 있느냐는 질문 말입니다. 

'우주는 왜 하필 이런 특성을 가진 걸 까? 

다른 특성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 우주는 코스모 스의 우주인가? 

왜 우주는 카오스의 우주이면 안 되는가? 

이 질문은 어쩌면 진리로 가는 힌트를 던져줄지도 모릅니다.

 

실재하는 모든 것에는 어떤 특성이 있고, 우리는 그 존재들 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그 특성을 알아 갑니다. 

그리고 그 특성을 파악하게 되면 우리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존재의 특성에 관한 질문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어떤 원리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특성을 갖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간단히 표현하면 어떻게 how에 관한 질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의미에 관한 질문들입니다.

'왜 하필 우주는 이런 특성을 갖게 되었나?

우주가 이런 특성을 갖는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목적이나 가치 혹은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떻게'와 '왜'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사용됩니다. 

'어떻게'라는 말로 과정이나 원리를 묻기도 하고 '왜'라는 단어 로 당위나 목적을 묻기도 합니다. 

편의를 위해서 간단히 '어떻 게'와 '왜'로 구별했지만 중요한 점은 실재의 특성에 관한 질문을 크게 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질문, 즉 원리나 과정을 파악하는 어떻게how라는 질문과 목적이나

의미를 찾는 왜 why 라는 질문은 매우 다른 성격의 질문이 며

서로 구별해서 답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먼저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출처 : 대화(저자 강영안, 우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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