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위의 두 그림 중에 어느 그림이 진리에 가까울까요?
위쪽은 미국 애리조나 플래그스태프에서 찍은 밤하늘 사진입니다.
아래쪽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입니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위쪽이 밤하늘을 더 잘 기술합니다.
아래쪽은 과학에 사용할 데이터로서는 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두 그림을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쪽 그림을 보며 우리는 고뇌하는 반 고흐를 떠올립니다.
이 그림에는 고흐가 재 창조한 밤하늘이 담겨 있습니다.
별과 달을 포함한 밤하늘을 묘사한 고흐의 작품이 과학적 원리를 알려주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인생을 조망하게 됩니다.
과연 두 그림 중에 어느 것이 더 진리에 가 깝습니까?
그 답은 진리가 무엇에 관한 물음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존재를 인식합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다면적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 면만이 아니라 다양한 면, 혹은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나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서로 다른 부위를 만진 경험을 바탕으로 코끼리는 딱딱하다, 부드럽다, 주름이 많다 등 서로 다르게 결론을 내립니다.
누구 말이 옳을까요? 다 옳을 수도 있습니다.
코끼리는 딱딱한 상아도 가지고 있고 부드러운 꼬리털도 가지고 있고 주름진 피부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부위를 만지느냐에 따라 경험의 내용이 달라지고 결론이 달라집니다.
첫 데이트를 회고하는 두 남녀가 말다툼합니다.
누가 먼저 마음을 표현했는지, 첫 데이트 장소는 어디였는지, 두 사람의 기억이 서로 다릅니다.
누가 옳을까요? 서로 다른 진술이 나오는 것은 기억이 갖는 한계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험한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중요하게 느낀 내용을 선택적으로 기억하지요.
기억의 재편으로 구성된 경험은 실제 일어난 사건과는 꽤나 다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인간의 기억이 왜곡된다는 것도 실험적으로 잘 입증되고 있습니다.
9.11 테러 사건을 경험 하면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장기간의 연구들은 경험한 내용에 관한 기억을 왜곡시 킨다는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억은 선택적일 뿐만 아니라 왜곡되기도 합니다.
사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간의 함수로 연속적으로 존재 합니다.
반면에 우리의 경험은 단편적이고 불연속적입니다.
영화와 사진을 비교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영화를 감상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합니다.
중간중간 스냅사진으로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보고 영화 전체 이야기를 파악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존재하는 것들이 영화와 같다면 그것들에 관한 인간의 경험은 스냅사진처럼 불연속적이고 제한적입니다.
인간의 경험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심오한 측면에서, 우리는 경험의 배반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것이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파동일까요? 입자일까요? 사실 파동과 입자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다는 말은 모순된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현대물리학은 빛이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빛의 이중 성입니다.
빛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존재들은 종종 이중성을 보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영역에도 이런 이중성의 요소가 많습니다.
우리는 지구가 태양의 중력에 의해 1년에 한 번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과학적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신이 지구의 공전을 섭리한다고 믿습니다.
이중성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만 그렇게 모아진 사건들을 통해서 신은 역사를 주관하고 이끕니다.
이중성입니다.
자연계에는 다양한 우연성이 있습니다.
방향 없이 생겨나는 듯한 우발적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 우주도 변하고 지구도 변하고 생물들도 진화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과정을 신의 계획과 섭리가 담긴 과정이라고 고백합니다.
이중성입니다.
경험의 다면성과 실재의 다층성, 그리고 경험의 배반은 인간의 경험이 갖는 제한성과 이성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과학만이 실재를 파악하는 유일한 도구가 아님을 다시 한번 분명히 알려 줍니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제한적으로 만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질문을 낳고,
존재의 특성은 더더욱 심오한 질 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그런 특성을 가졌는지에 관해
인과관계와 작동 원리를 찾는 과학적 질문을 던지고 답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우주라는 실재의 한 면을 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과학을 통해 그 한 면을 보는 것조차도 다양한 한계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학뿐만 아니라 과학 외적인 탐구도 반드시 필요합니 다.
우주라는 존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인과관계와 작동 원리도 찾아가야 하지만,
우주의 특성들이 던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탐구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합니다.
출처 : 대화(저자 강영안, 우종학.)
'쉼터 >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신을 요구하는 진리 (0) | 2025.01.31 |
---|---|
우주의 질문, 인간의 응답 (0) | 2024.04.25 |
과학이 답할 수 없는 질문 (0) | 2024.04.25 |
우주의 다섯가지 특성 (0) | 2024.04.24 |
두 가지 질문 : 어떻게 그리고 왜 (0) | 2024.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