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질문, 인간의 응답
앞에서 살펴본 우주의 다섯 가지 특성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그 특성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집니다.
1. 광대한 우주는 꼭 존재해야 했는가? 물질은 어디서 기원했는가? 우주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2. 우주는 왜 수학적인가? 자연법칙은 어떻게 기원했는가?
3. 우주의 우발성은 어떻게 지성을 탄생시켰나?
4. 인간은 어떻게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나? 우주의 수학성과 인간의 이성은 어떻게 연결되었나?
5. 우주는 왜 인간이 탄생하기에 적합한 역사를 가졌나?
이 질문들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은 제가 보기에는 현재의 과학으로는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학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질문들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대 과학을 똑같이 수용하더라도 이 질문들에 관해서는 서로 다르게 답하는 철학적 입장 혹은 종교적 입장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입장이 가능할까요?
크게 리처드 도킨스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주의 무신론과 기독교 유신론, 둘로 나누어서 이 질문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1. 과학주의 무신론
과학주의 무신론의 입장은 물질이 목적 없이 진화해서 우연히 인간을 만들어 냈으며,
인간이 신이라는 개념을 발명했지만 이제는 과학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므로 신이라는 개념은 불필요하며 종교는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런 무신론의 세계관으로는 우주가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들에 답하기가 버거워 보입니다.
도킨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는가"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신은 누가 만든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무신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물질이 인간을 만들어 냈다면 그 물질은 누가 만들었는가?
무신론자들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합니다.
물질은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했다는 답변은 신이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한다는 답변과 비교할 때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최소한 과학적인 답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주가 어째서 자연법칙으로 잘 설명되며 수학적 특성을 갖는지에 관한 질문도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우주가 수학적 특성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자연 세계의 특성 일 뿐이다"라는 답변은 다시 말하면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런 답변은 별로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무신론자인 빅터 스텐저는 수학으로 기술되는 자연법칙이 어떻게 생겨 났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뇌터의 정리'를 가지고 물리학의 기본적인 보존법칙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우주의 대칭성과 같은 수학적 합리성을 전제로 한 다음에 거기서 출발해서 보존법칙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수학적 특성에서 또 다른 수학적 특성을 유도하는 방식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가장 기본인 수학적 특성들, 가령 우주의 대칭성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의 대답은 만족스럽지가 않습니다.
"왜 악한 사람이 더 잘 살고 선한 사람이 더 고통을 받는받는가"라는 질문에 "원래 인생이 그런 거야"라고 답한다면 여러분은 만족할 수 있을까요?
인간 지성의 기원에 대한 설명도 쉽지 않습니다.
우발적 사건들이 연속되는 우주의 진화과정에서 지성이 탄생했다는 것은 기적처럼 보이는 놀라운 과정이었다고 고백할 뿐입니다.
우주의 수학적 특성과 인간의 이성이 공명을 이룬다는 점은 마치 우주와 인간을 포괄하는 어떤 원리가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성적이고 수학적 특징을 갖는 그 원리의 기원을 무신론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류 원리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과학으로 밝혀지지 않은 어떤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답변입니다.
흔히 다중우주론을 꼽습니다.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우주가 있다는 다중우주론에 따르면 그 많은 우주 중에 인류를 탄생시킬 특별한 조건과 역사를 갖는 우주가 하나쯤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별별 우주들이 다 존재할 테니까 이렇게 특별해 보이는 우주가 하나쯤 있어도 사실은 특별한 것이 아니 라는 것입니다. 우연으로 인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지요.
다중우주론은 과학적인 경험적 증거를 현재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학적으로도 완성된 이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철학적인 면에서도 다중우주론이 우주 자체의 존재를 설명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수많은 우주 중의 하나이며 빅뱅은 단지 우리 우주가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다중우주론의 설명을 받아들이더라도 '그렇다면 그 수많은 우주는 어떻게 기원하였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무신론의 대답은 철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답은 우주가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2. 기독교 유신론
기독교 유신론은 이 질문들에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우주는 우주를 창조하기로 작정한 창조주의 뜻과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주가 수학적이고 자연법칙으로 질서 있게 잘 기술되는 이유는 창조주의 성품을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신실하고 약속을 지키고 오래 참고 동일한 분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자연계에 마구 간섭하는 변덕스러운 신이 아니라 창세기 1장에 기술되어 있듯이 무질서에 질서를 하나하나 부여해 규칙적이고 안전한 우주를 창조한 분입니다.
우주의 수학적 특성과 자연법칙은 바로 창조주의 성품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창조 세계를 보존하고 다스리도록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뜻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그래서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창조 세계를 다스릴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는 창조 세계가 어떻게 운행되는지 파악할 이성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담긴 의미 중에 이성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에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서 질서 있게 운행되는 수학적 특성을 갖는 우주를 파악할 수 있는 이성을 가졌고,
그래서 우주의 수학적 특성과 인간의 이성은 서로 공명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100억 년이 넘는 우주 역사의 전반기에 수많은 별을 통해 탄소와 같은 원소들을 만들어 내셨고,
우주 역사 후반기에 태양계를 만들고 생명체가 존재할 조건을 가진 지구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주의 역사를 운행하는 과정이었다고 그리스도인들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운행하시는 방법은 천사를 보내서 별과 행성을 움직이거나 기적적이고 특별한 방법으로 뭔가를 간섭 하시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초자연적 신을 믿는 기독교는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되지 않는 기적을 거부하거나 제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밝혀진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연의 작동과정들을 사용해서 역사하신 내용을 주로 배우게 됩니다.
과학으로 보면 우주의 역사는 우발적입니다. 그러나 우발적, 우연적이라는 과학의 설명 은 작동 원리에 관한 설명일 뿐 이며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목적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과학은 자연현상의 목적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고 다룰 능력도 없습니다.
우주의 우발적 역사는 바로 신의 창조 과정이었습니다.
우발적 사건들이 이어진 역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시공간의 특별한 한 좌표계에서 지구와 생명의 세계를 만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놀라운 기적처럼 인간의 지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신론 입장에서는 우발적 사건들이 연속해서 일어난 끝에 지성이 출현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보이겠지만,
기독교 유신론은 과학이 우발적 사건이라고 파악하는 것들 안에 신의 섭리와 계획이 담겨 있다고 이해합니다.
우발적 우주의 역사는 하나님이 지성적 인간을 창조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3. 두 관점의 비교
우주의 기원에 관해 전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우주의 기원을 빅뱅으로 설명하자, 그렇지 않다면서 우주는 거대한 거북이가 등으로 떠받치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렇다면 그 거북이는 누가 떠받치고 있냐고 과학자가 묻자 그 거북이는 다른 거대한 거북이가 떠받 치고 있다고 답했답니다.
그럼 그 거북이는 누가 떠받치고 있냐고 묻자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밑으로 계속 거북들이라고
농담 같은 이 이야기가 우주의 기원을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근원적 한계를 잘 보여 줍니다.
"우주가 빅뱅에서 기원했다면 빅뱅은 어떻게 생겼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 빅뱅을 통해 우주를 창조 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반대로 빅뱅은 수많은 우주 중의 하나가 시작된 것일 뿐이고 그 수많은 우주는 스스로 존재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 두 설명은 모두 밑으로 계속 거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나 스스로 존재하는 물질을 밝히는 일은 과학으로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존재에 관한 무신론의 답변과 기독교의 답변은 서로 전제가 다르므로 직접적인 비교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둘을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우주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면서 기독교 입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지적 설계나 자연신학의 오류를 반복하자는 의도가 아닙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주의 특성에 대한 무신론이나 기독교의 답변은 둘 다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을 수용하는 면은 동등하지만, 무신론과 기독교 둘다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답변들, 곧 형이상학적 답변을 시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이 영원 전부터 존재했는지, 물질이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했는지는 과학으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수학적 특성이나 인간 이성과의 공명, 그리고 우주의 우발성도 모두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영역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을 넘어서는 이 질문들에 대한 무신론과 기독교 유신론의 답변을 각각 인정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을까요?
저는 무신론의 답변이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무신론의 답변은 신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존재가 던지는 질문들을 회피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저는 오히려 과학을 넘어 경험의 다면성과 실재의 다층성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기독교 유신론의 답변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형이상학적 질문들을 모두 포함했을 때 기독교가 무신론에 비해 훨씬 설명력이 크다고 말합니다.
물론, 악과 고통의 문제처럼 여전히 답하기 어려운 경험의 측면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들에 관해서도 기독교 유신론은 충분히 의미 있는 설명을 제시합니다.
가령, 자유의지 변론이나 자연법칙 변론들이 하나의 설명입니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무신론의 답변과 비교해 볼 때, 기독교 유신론이 우주의 존재와 그 특성들을 설명하는 방식이 훨씬 더 설 득력 있고 통일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출처 : 대화(저자 강영안, 우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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