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 5부 : 01.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w.j.lee 2024. 5. 31. 10:03

제 5 부 과학과 영성 사이에서

 

01.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세계

 

종교에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종교의 특징 중 하나는 보이는 대상보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궁극적 실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유대-기독교에서는 일찍이 눈에 보이는 우상이 참된 신이 아님을 강조했으며, 불교에서도 눈에 보이는 현상이 결코 참된 실재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러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종교는 신도들의 기복신앙을 만족시키기 위해 항상 가시적인 숭배의 대상을 만들고자 하는 유혹을 받아왔다.

불교든 기독교든 역사적으로 눈에 보이는 대상을 무비판적으로 숭배할 때가 곧 세속적 욕망과 결탁한 가장 타락한 시기였다.

 

과학에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생물들은 맨 처음에는 아주 원시적인 빛을 감지하는 감광세포에서 시작하여 수억 년의 진화를 거쳐 마침내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는 눈을 갖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눈이 있기에 만져보지 않고도 외부세계를 인지할 수 있다. 

짝짓기를 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 그리고 포식자나 위험한 환경을 피하기 위해 시각정보는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빠지기 쉬운 오류는 우리의 눈에 비친 외부세계의 모습이 진짜라고 믿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분명히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주지만, 결코 그것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다.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본다는 것은 우리의 눈이 가시광선을 감지하고 뇌로 전달해서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카메라의 원리와 똑같이 눈의 망막에는 사물의 상이 위 아래 거꾸로, 좌우 반대로 비치는데, 뇌에서 이를 보정해서 똑바로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눈의 효용가치가 형편없을 것이며, 물구나무를 서서 거울에 비춰 보아야 할 것이다.

진화론에서는 이를 가리켜 생물의 적응력이라고 설명한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가시광선이란 빨간 색에서부터 보라색까지의 파장이다.

그런데 이 가시광선은 무한히 넓은 스펙트럼을 갖는 전자기파의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 파장의 길이 파동과 파동 사이의 거리가 1미터 이상이면 전파 Radio wave다.

밤하늘 저 멀리 은하 저편 성운 속에서는 새로운 별들이 탄생하고 있지만, 가스와 먼지구름에 가려져 일반 망원경으로는 관측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전파망원경은 가스구름을 뚫고 나오는 별들의 전파를 탐지하기 때문에 성운 속에서 탄생하고 있는 아기별들의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

 

전파보다 짧은 파장을 지닌 파동들은 극초단파Microwave로서 파장의 길이가 몇 센티미터다. 

이 사이의 전파를 이용해 우리는 TV를 방송하고 휴대폰을 사용한다. 

이보다 짧은 파동은 적외선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붉은색 외부의 전파로서 1만분의 1센티미터 이상이다.

군인들은 적외선 망원경으로 캄캄한 밤에도 적진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 눈이 감지하는 가시광선은 4천만분의 1에서 8천 만분의 1센티미터 사이로서 매우 좁은 영역에 불과하다.

그보다 더 짧은 파장을 지닌 파동들은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 등이 있다.

 

칠레의 아카타미 사막에 세운 알마 전파망원경

 

우리의 맨눈으로는 밤하늘에서 불과 수천 개의 별 밖에 볼 수 없 지만, 실상은 지금 이 순간에도 1천억 개가 넘는 은하들이 존재하며, 우리 은하 안에만도 1천억 개가 넘는 별들로부터 전자기파들이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 우주는 무수한 전자기 파들의 춤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전자기파의 종류와 가시광선의 영역, 그리고 용도들

 

위의 표는 전자기파의 스펙트럼에 따라 인간이 이용하는 가전 제품이나 용도를 보여준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가시광선은 전자 기파의 전체 영역 가운데 매우 좁은 영역에 불과하며, 이에 따라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참된 실재 가운데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양자역학은 원자와 소립자들의 세계, 즉 미시 세계micro world를 다루는데, 이 세계는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훨씬 더 작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들여다볼 수가 없다. 

결국 안개상자 속에서 입자들을 충돌시킨 후 소립자들이 짧은 시간동안 남기는 궤적을 통해 이들의 존재방식을 구성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아원자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짧은 파장의 전자기파를 사용해야 하는데, 실험의 수단이 되는 전자기파의 파장이 짧아질 수록 에너지가 커지기 때문에 실험 자체가 탐구의 대상이 되는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세세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해서 이 이야기는 양자역학적 방법을 통해 파악한 미시세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믿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실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우리의 뇌는 눈으로 들어 오는 시각정보 가운데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일부 정보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린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떤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실상은 실재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한 단면을 부각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그럼에도 광대한 전자기파 가운데 매우 좁은 영역에 불과한 가시광선에 의존해서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이 자기가 본 것을 전부라고 착각한다.

개미 한 마리가 코끼리 발등에 잠시 올라타고서 코끼리를 다 안다고 우기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눈에 비춰진 사물의 모습은 궁극적 실재 가운데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불경이나 성서만 아니라 물리학에서도 우리는 독선과 오만을 경계하고 겸손과 관용을 배울 수 있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