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 5 부 : 02. 동물! 인간의 친구

w.j.lee 2024. 5. 31. 10:02

제 5 부 과학과 영성 사이에서

 

02. 동물! 인간의  친구

 

지난 해 발생한 조류독감AI, avian influenza으로 인해 3천만 마리가 훨씬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 

조류독감이 이제 진정되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다시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한다. 

또 얼마나 많은 돼지와 소들이 산 채로 땅 속에 묻힐 것인가?

이 땅에서 사육되고 있는 죄 없는 가축들의 희생이 커도 너무 크다.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은 동물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인간은 본래 야생 상태에 있던 동물 중 일부를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었다.

인간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 가축들은 인간사회에서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가축들은 고기, 유제품, 비료, 육상 운송, 가죽, 군대의 공격용 탈 것(전차), 쟁기를 끄는 동력, 털 등을 인간에게 제공했다.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1937에 따르면 20세기 이전까지, 즉 고대의 모든 문명을 통틀
어 인간이 가축화에 성공한 초식 대형 포유류 동물은 고작 14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이외에도 코끼리나 사냥용 매, 애완용 설치류나 파충류 등 많은 동물이 길들여져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임 받는 관 계를 맺기도 한다.

가축화된 동물이란 인간이 번식과 먹이 공급을 통제하는 동물, 즉 감금 상태에서 인간의 용도에 맞도록 선택적으로 번 식시켜 야생조상으로부터 변화시킨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은 거의 모든 동물이 가축화될 수 있는지 테스트를 받았다는 점이다.

고대인들은 사냥이나 다른 기회를 통해 거의 모든 종류의 야생 동물의 새끼를 잡아와 길러보았으며 이들을 길들여보는 경험을 하였다.

아직까지 가축화되지 않은 동물은 모두 인간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가축화에 실패하여 야생동물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에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성찰하게 해주는 구절이 있다.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아담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 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창 2:19.

 

하나님께서 각종 동물을 아담에게 데리고 오자 아담이 그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김춘수의 시가 떠오른다.

꽃이란 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 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이야기는 곧 그 동물이 우리 인간에게 '의미 있는 그 무엇'이 되었다는 뜻이다.

요즘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들이 가족처럼 대접을 받고 모두 이름을 불러주듯이 옛날 농가에서 기르던 동물들도 각각 이름이 있었다.

그때는 가축도 가족의 일원이었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동물을 통해 비로소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선호(김영필 분)는 아버지가 어렵게 농사지어 기껏 대학공부 를 시켜 놓았더니 취직도 못하고 장가도 못 든 채, 여전히 농사짓는 아버지 집에서 빌붙어 사는 노총각이다.

당연히 아버지는 빈둥거리 는 아들을 못 마땅히 여기고, 아들은 소만 애지중지 여기는 아버지에게 사사건건 반발한다. 아버지와 갈등을 겪던 주인공 선호는 어느 날 작심하고 아버지 몰래 소를 차에 싣고 인근 도시의 우시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결국 소를 팔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소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선호가 소를 팔러 다니던 중에 한 어린이가 다가와 소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소의 이름을 통해 주인공은 소와 대화를 하게 된다.

소와 함께 여행하면서 선호는 신기하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모든 문제의 근원이 결국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곧 불교의 십우도(十牛圖)에 나오는 소년이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섰다가 마침내 해탈을 얻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십우도는 심우도(尋牛圖)라고 도 하는데 수행을 통해 본성을 깨닫는 10단계의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禪畵)다.

 

결국 주인공 선호는 소와 함께 여행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문제의 본질을 깨닫고, 마침내 다른 사람들과 화해를 이루게 된다.

소의 이름을 부르고 대화를 하게 되자 소는 팔아치울 가축이 아니라 친구 이자 동반자로 변하였다.

이처럼 인간에게 동물은 단지 고기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 생명이다.

때로는 가족이고, 친구이며, 스승이 되기도 하는 의미 있는 존재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수많은 동물들은 이름이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공장식 대규모 사육장에 갇혀서 이름 대신 번호표를 달고 사육된다.

이들은 인간에게 의미 있는 그 무엇이 되지 못한다.

다만 투입된 사료 대비 최대한의 살코기를 뽑아내야 하는 고기제조기일 뿐이다. 

빈번하게 찾아오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가금류의 폐사나 구제역으로 인한 소, 돼지의 살처분 사태는 공장식 대량 축산 시스템의 문제로 인한 것이다. 

옛날 농부들은 콩을 심을 때 한 구멍 에세 알을 뿌리면서 한 알은 공중의 새가 먹고, 한 알은 땅속의 벌레 가 먹고, 남은 한 알을 잘 키워 사람이 먹을 요량으로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농업에서는 새와 벌레가 먹지 못하도록 농약을 뿌리고 오직 사람만이 몽땅 먹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욕심이 문제인 것이다.

 

이제는 육식의 욕망을 절제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때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는 쾌적한 자연 상태에서 유기농법으로 가축을 기르는 친생태적 농장이 시도되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나 현재의 대량 사육 시스템은 분명 잘못된 방식이므로 이러한 대안적 축산업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이제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처음처럼 친구의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 

창조질서에 맞게 사람과 동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인간의 몸과 마음의 병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심우도 (尋牛圖)

1. 심우(尋牛) : 자신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

 

2. 견적(見跡) :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단계

 

 

3. 견우(見牛) :  소를 발견하는 단계

 

 

4. 득우(得牛)  ;: 소의 고삐를 잡다

 

 

5. 6. 목우(牧牛) : 야성을 길들이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는 잊었으나 사람만 있는 불박법박(佛縛法縛)의 단계

 

8. 인우구망(人牛俱忘) : 소는 물론 사람도 잊는 대오(大悟)의 경지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 본래의 모습(근원)으로 돌아가다

 

 

10. 입전수수(立廛垂手) : 중생제도의 길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