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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 04. 인공지능과 인간의 주체성

w.j.lee 2024. 5. 31. 10:03

제4부 인공지능과 한국교회

 

04. 인공지능과 인간의 주체성

 

알파고의 재등장과 그 의미

 

2016년 3월에 벌어졌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2017년 5월 22일부터 일주일간 중국에서 알파고와 인간 대표 간의 두 번째 바둑 대결이 이루어졌다.

한 해 전에 알파고를 상대하는 이세돌의 대국 내용에 비판을 가하면서, 자신이 인간 대표로 선발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던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커제 9단이 대표로 나섰다.

하지만 대국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인공지능의 승리가 예상되었기 때문에 이번 대 결은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알파고와 커제 9단과 의 3판 2선승제, 두 번째는 알파고와 인간대표 5명의 상담기(세계 바둑 대회 우승 경력을 가진 중국기사 5명이 한 팀을 이뤄 상의하면서 최선의 수를 찾아 알파고를 상대하는 방식), 그리고 세 번째 방식은 알파고를 A, B로 나누어 각각 인간과 짝을 이루어 대결하는 페어 바둑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이세돌과의 매치 이후 인터넷 바둑 사이트에 비공식적으로 '마스터'라는 아이디를 통해 둥장한 알파고는 한중일 프로기사들과의 인터넷 대결에서 60전 60승 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이 전대미문의 고수가 누군지 몰랐지만 승리의 횟수를 하나씩 더해가자 마스터가 바로 알파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중에 구글에서도 인정하였다.

 

따라서 이번 이벤트는 인간이 더 이상 알파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했다.

커제는 세 번째 대국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자 급기야 매우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상담기에서는 최정상급 인간 대표 다섯 명이 지혜를 모아도 알파고의 승리를 전혀 저지 할 수 없었다.

보통 정상급의 대결에서는 승부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알파고는 줄곧 인간 대표에게 전혀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젠 인간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다만 이번 이벤트에서 보여준 한 가지 희망적인 면이라면 페어바둑에서 인간과 인공지능 이 서로의 의도를 읽고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페어바둑의 승패는 두 기사가 얼마나 이심전심이 되어 서로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일관된 작전을 구사하는가에 달려있다.

페어바둑에 참여한 두 기사 중 알파고의 착수는 대체로 자기 편의 수 에 대해서도 무심한 듯 보였지만, 몇 대목에서는 확실히 호흡을 맞춰 대국을 풀어나갔다. 

이로써 앞으로 인간과 인공지능이 한 팀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총 다섯 판의 대국을 마친 후 구글은 이번 대국을 마지막으로 알파고가 바둑계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하였다. 

알파고의 목적은 범용 인공지능의 개발 여부를 테스트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2016년과 2017년에 걸친 두 번의 이벤트를 통해 인간만이 지닌 능력이라고 믿 었던 종합적인 판단력과 직관이 요구되는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충분히 과시했다.

 

이것이 바로 구글이 알파고를 통해 전 세계에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구글은 바둑을 제패하기 위해 알파고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알파고가 범용 인공지능으로서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주체성
이제 인공지능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창조 신앙에 내포된 인간의 의미, 특히 인간의 주체성의 상 실 문제에 주목하게 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 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 려라" 하셨다

(창 1:27-28).

 

이 말씀에서 지시하듯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천부적 권리와 자유를 부여 받은 주체적인 존재다.

하나님 께로부터 부여 받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주체성은 자연환경을 개척하고 문명을 이루는 과정에서 월등하게 발휘되었다.

사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육종이란 방법을 사용하여 자연상태에 존재하지 않던 곡식과 과일나무들을 개발해내고 가축을 길들여왔다.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인 개는 본래 야생의 늑대로부터 인류가 1만 년에 걸쳐 개량하여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종으로 진화된 것이다.

전서구를 비롯하여 다양한 용도로 키우는 비둘기 역시 인간이 야생 비둘기로부터 개량한 결과다.

우리에게 우유와 고기를 제공하고 짐을 날라주는 가축 대부분이 원래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야생 상태의 동물을 인간이 부단히 개량하고 길들여 만들어낸 것들이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창조, 즉 '무부터의 창조'는 아닐지라도, 명백하게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체들을 새롭고 진귀한 모습으로 '재창조'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인간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에는 유전자공학을 이용해 하 나님의 창조 목록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도 있다.

이런 점에서 필립 헤프너는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가리켜 '피조된 공동창조자' Created Co-Creator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피조물인 동시에 주체적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육종과 생명공학을 통하여 생명세계를 만들어왔고, 마침내 인공지능까지 창조해내었다.

실로 인간은 피조물이면서 하나님과 함께 창조를 만들 어가는 '피조된 공동창조자'로서의 주체적 존재다.

 

그런데 인공지능에 의존하면 할수록 인간의 주체성도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체는 자연 혹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현상을 유지해 나간다.

인공지능과 로봇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은 육체적·정신적 능력 및 자연 상태 속에서의 생존력을 상실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쉬운 예로 스마트 폰의 보급에 따라 전화번호를 외우는 능력이 저하되었고, 내비게이 션의 보편적 사용에 따라 길을 찾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기술 문명 속에서 양육된 현대인은 원시적 환경에서 살고 있는 토착민에 비해 생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물론 힘든 일은 모두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이 좋아하는 운동이나 레저 활동 혹은 예술이나 지적 유희를 통해서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생존 능력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 단련과정을 통해서만 획득되고 유지된다는 점이다.

 

근육에 가해지는 고통이 없으면 결코 근육은 생성되지 않는다.

세상의 고통스러운 일을 로봇이 담당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면 인간은 과연 진정으로 행복해질 것인가?

이러한 상태로 세대를 거듭한다면 아마도 인간은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나약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로봇이 제공하는 안락한 환경 속에서,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되는 보육원과 좋은 환경 속에서 양육되어 스스로는 문제해결의 능력을 상실한 존재로 점점 쇠락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능력 상실

 

자동차 운전은 인간의 능력이 필연적으로 고통과 위험을 감내 한 단련과정을 통해서 획득된다는 주장을 입증할 좋은 예다. 

처음 운전대를 잡고 도로 주행에 나선 초보 운전자들은 옆으로 휙휙 지나 가고 마구 끼어드는 다른 자동차들 속에서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며, 실제로 사고의 위험성도 매우 높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이다.

대략 2025년경이면 무인 자동차 제작과 운행이 기술적으로 완성될 것이며, 보편적으로 이용하기까지는 추가로 5-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자동차 산업과 문화가 혁명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미국 자동차회사가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되면 현재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의 20퍼센트만이 자 동차를 소유하겠다고 응답했다.

왜냐하면 자동차 소유자가 평균적으로 차를 사용하는 시간은 하루 중 겨우 한두 시간 정도에 불과한데,
만일 필요한 시간과 장소로 무인 자동차가 와서 대기할 수 있다면 굳이 비싼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자동차가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율운전에 의해 운행 되면 교통 체증 역시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전체 교통사고의 95퍼센트 가량은 인간의 부주의나 졸음, 음주, 보복운전에 의해 발생하는데, 인공지능에 의한 자율주행은 이러한 사고를 원천적으로 방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6년 5월 테슬라 S모델의 오토파일럿 자율운전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사망 사고를 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과 테슬라의 발표에 따르면, 차체가 높은 컨테이너 트레일러가 도로를 가로지르며 좌회전하는 상황에서 자율운전 프로그램 센서가 컨테이너의 흰색 측면을 하늘과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망 사고에도 불구하고 테슬라 회사는 자사 자동차들 이 자동주행 모드로 운행한 누적 거리는 2억 900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반면, 미국과 세계의 모든 자동차를 놓고 따지면 사망사고가 각각 주행거리 1억 5천 킬로미터, 9천 700만 킬로미터에 한 차례 꼴로 일 어난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이미 자율운전이 인간 운전자보다 안전 하다고 주장했다.

일론 머스크는 사고 이후 자율주행 관련 소프트웨어인 '오토파일럿'을 개선하여 현재보다 훨씬 안전한 운전 능력을 갖 추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새로운 자율주행 프로그램인 '오토 파일럿 8.0'을 공개하면서 안전도가 극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발표했다.

 

만일 인공지능 운전 프로그램이 인간 운전자를 완전히 대체하게 되면 교통정체의 감소를 가져오고 교통경찰과 자동차 보험이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다.

2012년에 발표된 IEEE의 보고서에 의하면, 2040년에는 전 세계 차량의 약 75퍼센트가 자율주행 자동차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심화되는 미래에는 어쩌면 인간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불법이 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인간이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던 시대는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 것이다.

아마도 이는 현대인이, 호주 사막의 토착민이나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과 달리, 사막이나 밀림 속에서의 생존 능력을 상실한 것과 비슷할 것이다.

또한 자동차 운전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므로 인간은 현재 의 능력을 점차 잃어버리고 자연 속에서 지금보다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전망이 제기하는 인간의 위기는 단순한 생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성의 문제다.

인간은 스스로 위험을 감수한 모험을 선택하여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 존재다.

앞으로 불확실한 인간 대신에 보다 완전한 인공지능에게 사회 시스템의 관리를 맡긴다면 세상은 보다 안전해지겠지만 피조물 가운데 가장 주체적 존재로서 인간의 특성은 심각하게 제한 받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로봇이 사람의 직업 가운데 3분의 1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대량 실업의 발생과 동시에 엄청난 이윤 창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낙관 주의자들은 사회전체적으로 부가가치가 늘어나 일자리가 없어지더 라도 역소득세 같은 재분배 제도를 통해 보다 더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산업혁명 당시 증기기관이나 기계가 발명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계로 인한 인간의 소외와 피해를 우려했지만, 결국 더욱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내고 삶의 질을 과거에 비해 개선했 듯이 인공지능의 폐해를 지레 짐작하여 과장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난에 찌든 동네보다 실업률이 높은 동네가 더 황폐해진다는 연구결과는 실업의 문제가 단순히 소득의 재분배로 해 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주체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건비로 지출되던 비용이 로봇 개발자와 투자자에게 집중된다면 이로 인해 부의 집중이 더욱 가속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이 세상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다수의 실업자들과 천문학적 부를 소유한 소수로 나누어지는 상황이 온다면 인간의 주체성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예컨대 야생의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인디언 보호구역에 수용된 아메리카 원주민들 대다수가 건강한 삶을 찾지 못하고 약물과 알콜 중독으로 찌들어간 이유도 주체성의 상실로 인한 것이었다.

 

인공지능은 어쩌면 인간으로부터 노동의 고통과 함께 주체적 삶의 의미도 빼앗아갈지 모른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앞날에 엄청난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가져 다줄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더 많이 차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과연 인간은 인공지능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모든 생로병사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인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는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그 판단은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신학적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맘몬이즘(물질숭배사상)에 빠져 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을 가장한 금송아지 앞에 절하며 더 많은 물질적 축복을 바라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변화를 가속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300ppm이었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15년 들어 처음으로 400ppm을 넘어섰다.

기후학자들은 금세기 내에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5도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에 파국적 결과를 불러올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엔을 비롯한 각 나라 정부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인류생존을 위해 긴급하게 취해야 할 필수 불가결한 조치를 미루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경제성장을 늦출 수 없기 때 문이다.

 

출애굽기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지금 이집트에서 종살 이하며 가마솥에서 건져먹던 고기가 생각나서 가나안을 향해 발걸 음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한 인류 앞에는 심각한 도전과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기후변화로 파생될 많은 문제들, 심화되는 양극화로 인한 갈등, 핵전쟁의 위협 등 인류의 생존이 걸린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현재 인간의 모습은 윤리적으로나 영성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그동안 인류는 자본주의의 포로가 되어 힘없는 나라를 침략하고, 가난한 이웃을 착취했으며,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변화를 일으켜 지구 생명체들을 멸종시키는 범죄를 저질러왔다.

무한경쟁과 독점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도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르러 전 세계적 파국이 눈앞에 닥쳐오고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제임스 러브록은 인간이 지구를 파괴한 대가로 이제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복수를 피할 길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만일 인공 지능이 지구생명 전체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의 임무로 여긴다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제거되어야 할 암적 존재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피조물 중 으뜸인 인간이 결국 자신이 창조한 인공지능에 의해 우주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전혀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 끝에 무지개를 걸어두시어 우리에게 희망을 선물하셨다. 

일찍이 테이야르 드 샤르댕은 인간의 정신은 진화를 거듭하여 마침내 오메가 포인트를 향해 도약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현재 인간은 윤리적으로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현명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당면한 여러 가지 시련을 극복하고 보다 완벽한 존재로 도약할 수 있 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과정신학은 이 세계를 궁극적으로 하나님 의 창조가 실현되어가는 과정과 사건으로 간주한다.

비록 그 과정에는 많은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종국적으로 피조물 중 가장 뛰어난 지능을 지닌 인간은 이 과정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존재다.

 

이제 인간에게 지능 Intelligence이 아니라 의식Consciousness이 요청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인간의 의식은 138억년의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우주 안에 피어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자각이어야 한다.

조화로운 우주를 찬미하고, 아름다운 지구 생명체들과 함께 삶을 경축하며, 형제자매인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꾸어야 한다. 

 

만일 우리 인류가 도덕적으로 고양되어 이러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훌륭한 파트너가 되어 인 간과 더불어 하나님의 창조를 완성하는 친구가 될 것이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