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설화
김시습은 그의 괴벽과 기행으로 이미 범상한 인간이 아님이 세상에 알려졌고,
또 유·불·도 3교의 어느 것을 신봉하는지 조차도 분간할 수 없게 처신하였다.
그러나 우리 땅의 수련 중심 도교의 도맥에서는 중시조격 지위에 있으며,
장생불로하는 신선이 되는 묘리를 터득한 사람으로 여겨져 신선과 관련된 설화까지 낳았다.
김시습이 강원도 양양 땅의 설악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강릉 사람인 최연(崔演)이 뜻을 같이하는 젊은이들 5, 6인과 함께
김시습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다 거절하고 유독 최연만은 가르칠 만하다고 머물러 있게 하였다.
최연은 반 년 동안 사제간의 도리를 다하고 자나깨나 곁에서 떠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달이 높이 뜨고 밤이 깊어질 때 잠을 깨어 보면
김시습이 간 곳이 없고 잠자리가 비어 있었다.
최연은 속으로 괴이하게 여겼으나
감히 추적해서 찾을 수가 없어 그대로 있고는 한 것이 여러 차례였다.
어느날 저녁 달이 또 밝아지자 김시습이 옷을 차려 입고 몰래 나가는데,
최연이 멀리서 그 뒤를 밟아갔다.
큰 골짜기 하나를 지나고 재를 하나 넘자 숲이 우거져 있어 그 사이로 살펴 보았다.
재 아래에는 사람들이 앉을 만한 큰 반석이 있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객 두 사람이
김시습과 인사를 나누고 반석에 앉아 이야기를 하였다.
거리가 멀어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랜 시간 후에 그들이 헤어지자 최연은 먼저 돌아와서 본래대로 자리에 누웠다.
그 이튿날 김시습은 최연을 보고
“처음에는 너를 가르칠 만하다고 여겼으나
지금 네가 조바심하여 가르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그를 쫓아버렸다.
김시습이 밤중에 만나 이야기한 자들이
사람인지 신선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김시습이 선관들과 담소한 듯한 여운을 남기는 설화이다.
김시습은 그 뒤 두타승(頭陀僧:떠돌면서 수행하는 승려)이 되어
홍산(鴻山:지금의 부여에 있는 산)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죽었는데,
임종 때 화장하지 말라는 유언이 있어 승려들이 임시로 절 곁에 매장하였다가
3년 뒤에 제대로 매장하기 위하여 그 관을 열어보았더니 안색이 살아 있는 것 같아
그가 시해(尸解:몸만 남기고 혼백이 빠져 나가서 신선이 됨.)한 것이
아닌가 하고들 여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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