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로 인한 고난의 흔적이 있습니까?
찬 송 : 399장 - 어린 양들아 두려워 말아라
성 경 : 베드로선서 4:12~14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요 절 :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환경이 문제입니까, 상황이 문제입니까? 나의 진짜 문제는 무엇입니까?
모든 상황과 환경을 살피시는 하나님,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여 주의 일에 열정을 쏟지 못했던 지난 모습을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의 영광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게 하시고 흔적을 자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원 목사 ㅣ 석곡교회
(벧전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요 절 :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밖에서 놀던 아이가 다쳐서 들어왔습니다. 코피가 나고 이마가 퉁퉁 부었습니다. 정작 놀란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빠였습니다. 아빠의 놀라는 모습을 본 아이는 더 크게 울엇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서럽게 울던 아이가 어느 순간 울음을 그치더니 다시 나가서 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다치고도 또 놀러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당황해 하는 아빠를 두로하고 아이는 거짓말 처럼 방긋 웃으며 다시 뛰어 나갔습니다. 아이에게는 지금의 상황이나 환경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놀수 만 있다면 그것으로 즐겁고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갈수록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즐거워하지 못합니다. 만족스런 상황이 아니면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오늘의 말씀처럼 고난을 당할지라도 즐거워하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을까요?
고난 당할 것을 걱정하면 신앙생활이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작당히 믿습니다. "적당히'라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크게 손해 보지도 않고, 부담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만큼 성장도, 역사도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적당히 믿으면 환난이나 고난은 당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헌신하면 손해도, 치욕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적당히 믿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늘 환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한 후에 당할 고난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행 14;3),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행 20:24) 한마디로 예수님을 전하다 당하는 고난 가운데 즐거워 했으며 수치 가운데 기뻐했습니다.
고난은 상처라는 흔적을 남깁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아파하고, 어떤 이는 자랑스러워 합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상처를 상처로만 보면 아픔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달으면 달라집니다.
예수로 인한 고난의 흔적은 천국의 상급이 큽니다. 고난고 치욕 속에서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사람을 세상은 이길 수 없으며 그는 세상 속에서 천국을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 인입니다.
고난을 당할 지라도 즐거워하고 치욕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은, 참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한동안 서럽게 울던 아이가 어느 순간 울음을 그치더니 다시 나가서 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다치고도 또 놀러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당황해 하는 아빠를 두로하고 아이는 거짓말 처럼 방긋 웃으며 다시 뛰어 나갔습니다. 아이에게는 지금의 상황이나 환경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놀수 만 있다면 그것으로 즐겁고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갈수록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즐거워하지 못합니다. 만족스런 상황이 아니면 기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오늘의 말씀처럼 고난을 당할지라도 즐거워하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을까요?
고난 당할 것을 걱정하면 신앙생활이 기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작당히 믿습니다. "적당히'라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크게 손해 보지도 않고, 부담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만큼 성장도, 역사도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적당히 믿으면 환난이나 고난은 당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헌신하면 손해도, 치욕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적당히 믿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 늘 환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한 후에 당할 고난도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했고(행 14;3),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행 20:24) 한마디로 예수님을 전하다 당하는 고난 가운데 즐거워 했으며 수치 가운데 기뻐했습니다.
고난은 상처라는 흔적을 남깁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아파하고, 어떤 이는 자랑스러워 합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상처를 상처로만 보면 아픔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달으면 달라집니다.
예수로 인한 고난의 흔적은 천국의 상급이 큽니다. 고난고 치욕 속에서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사람을 세상은 이길 수 없으며 그는 세상 속에서 천국을 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 인입니다.
고난을 당할 지라도 즐거워하고 치욕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은, 참 그리스도 인으로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환경이 문제입니까, 상황이 문제입니까? 나의 진짜 문제는 무엇입니까?
모든 상황과 환경을 살피시는 하나님, 고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여 주의 일에 열정을 쏟지 못했던 지난 모습을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의 영광을 위해 당하는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게 하시고 흔적을 자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원 목사 ㅣ 석곡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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