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한국의 說話

피아골 종녀촌의 슬픈 사연

w.j.lee 2016. 2. 3. 12:39


피아골 종녀촌의 슬픈 사연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골짜기에 여인들만 사는 마을이 있었다.

열두 살 먹은 소연이가 엄마의 만류를 무시하고 계곡으로 빨래를 하러 갔다.

엄마는 놀랍게도 20대 중반쯤으로 보인다.

빨래를 하고 있는 소연에게 중년 여인이 다가오더니 빨래하는 소연이를 이모저모 뜯어본다.

소연이가 그녀를 어머니라 불렀다.

어머니라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성신(性神)어미


그녀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어머니라 부르는 성신어미였다.


지리산 피아골 계곡.


그날 밤, 소연이는 성신어미에게 불려갔다.

그런데 다짜고짜 달거리를 하느냐 물었다. 달거리. 월경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왜 성신어미는 달거리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그랬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이른바 종녀촌(種女村)이었다.

종녀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집에 팔려가서 아이를 낳아주는 '씨받이 여자'를 말한다.

성신어미가 종녀촌을 지배하면서

씨받이가 필요한 집에 은밀하게 종녀를 보내 아이를 낳게 하였다.

아들을 낳아주면 큰돈을 받고, 딸이면 핏덩어리 딸과 함께 종녀촌으로 돌아왔다.

종녀로 팔려가는 것이 아니라 뒷방아기로 팔려가는경우도 있다

나이가 들어 물러난 대감이나 부잣집 노인이 품고 자는 소녀를 뒷방아기라 하는데,

종녀촌으로 그런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성신어미야 돈만 주면 뒷방아기도 상관하지 않았다.

간혹 뒷방아기로 갔다 돌아온 종녀들이 낳은 아들이 있으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키우는데,

건장한 아이는 종녀촌에 남게 하여 시동(侍童)으로 키우고,

부실한 아이들은 멀리 내다 버렸다.

사실 소연이 엄마도 벌써 12년 전에 종녀로 갔다가 딸을 낳는 바람에 구박만 받고 돌아왔다.

그때 낳은 딸이 지금의 소연이었다.


피아골 단풍.


아래쪽 이끼 군락이 슬픈 느낌을 준다.

어느 날, 마을에 낯선 여인이 들어섰다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던 성신어미가 우연히 소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며칠 후, 동무들과 함께 산에서 나물을 캐고 돌아오던 소연이 걸음걸이가 어정쩡하였다.

성신어미가 저쪽에서 오다가 소연이와 마주치려는 순간

소연이 엄마가 잽싸게 소연이를 낚아채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보니 소연이 속곳에 피가 맺혀 있었다. 달거리였다.

그러자 소연이 엄마가 깜짝 놀라더니 소연이에게 달거리에 대해 일러주면서

어머니가 알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소연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짐(요즘의 생리대)을 하였다.

개짐을 하고 보니 소연이 스스로도 뭔가 어른이 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에 비밀이 없는 법,

소연이가 달거리를 한다는 이야기는 금세 성신어미의 귀에 들어갔다.


성신어미가 소연이를 부르자 소연이 엄마는 자신을 대신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성신어미는 소연 엄마를

버커리(늙고 병들거나 고생살이로 쭈그러진 여자)라며 무시한다.

그날 밤부터 소연이네는 건장한 청년 몇이서 지켰다.

성신어미 호위를 하는 시동들이었다.

소연이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금세 정해진 날이 되었다.

이제 이 밤만 지나가면 소연이는 종녀로 팔려갈 운명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종녀로 팔려가기 전날 밤에 종녀촌에서는 어른들끼리 한바탕 잔치가 열렸다.

종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선금으로 성신어미가 잔치를 여는 것이다.

종녀로 팔려가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마을 사람들에는 잔칫날이었다

성신어미가 먼저 제단 앞에서 아들 생산을 비는 제를 올렸다.

성신상과 남근(男根)이 새겨진 제단 앞에서 성신어미는 이상야릇한 주문을 외웠다.

문을 외우다 열기가 고조되면 성신어미는 입고 있던 옷을 차례로 벗어 던지면서

성신가(性神歌)를 부르며 관능적인 춤을 추었다.

그러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성신어미는 호위를 하는 시동들과 어울려 한바탕 욕정을 불태우곤 했다.

물론 처음 종녀로 나가는 아이들에게 음양의 도를 깨우쳐준다는 명분이었다.


@제천에 있는 남근석.


남아선호사상이 강하였던 옛날에는

아들을 낳기 위해 남근석을 찾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가 끝나면 보통 마을 사람들은 성신어미가 나눠주는 술과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성신어미가 시동들과 어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제를 보게 된 소연이는 경악 그 자체였다.

성신어미가 절정에 이를 즈음 갑자기 소동이 벌어졌다.

연이가사라져버린 것이다 전날 밤,

소연이 엄마는 소연이를 좋아하는 종간이를 불러놓고 은밀한 당부를 하였다.

소연이를 데리고 도망을 가라 일렀던 것이다.

하지만 소연이는 엄마를 두고 도망갈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소연이는 엄마 당부대로 종간이와 도망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제가 절정에 달할 때를 틈타 도망을 가기로 계획을 하였다.

어린 소연이로서는 정말 보기 민망한 낯 뜨거운 제였지만

성신어미가 어떤 소리를 내면 도망가기로 약속을 했기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창 시동들과 어우러지며

감탕질(여자가 흐느끼며 음탕하게 놀리는 짓)을 하던 성신어미가 까무러칠 듯 소리를 냈다.

지금이다. 소연이가 몰래 밖으로 나가니 종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시동이 지킬 차례였는데

일부러 종간이가 자신이 보초를 서겠다고 하여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연이가 도망을 간 후 소연이 엄마는 성신어미에게 변을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죽는 순간에도 소연이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족쇄와도 같았던 지긋지긋한 종녀의 대물림이 끝났기 때문이다.

종간이와 함께 피아골을 벗어난 소연이는 멀리 종녀촌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피아골 종녀촌의 슬픈 이야기는 남아선호 사상이 지배했던

우리 중세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설화 그 원석을 깨다

허석 / 한국설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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