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기도 & 묵상

사순절(四旬節) 묵상(默想, meditation) : 잔치가 진짜다

w.j.lee 2022. 3. 27.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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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진짜다

3월 27일(주일) 사순 넷째 주일

말씀(누가복음 15:1-3, 11b-32)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11.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요절(要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 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 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 하다 하니라 (눅 15:2, 32)

 

 

 

 

누가복음 15장은 잃은 것을 찾고 기뻐하는 주인의 비유로 가득합니다.

매우 귀에 익은 비유들이지만 비유가 주는 깨우침은 여전히 새롭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세리와 죄인들이 모여들자 그들을 멀리하는 바리새인들은 못마땅해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이 위엄 있게 전해지고 고요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존중을 표하는 고상한 자리를 원하지만,

용서를 선언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회복된 이들이 떠들썩대는 나눔의 식사자리입니다.

 

죄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불편한 저들은 이런 장면이 못마땅한 정도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 말씀을 훼손하고 기만하는 것으로 보였을 겁니다. 

 

수군거림이 잔치의 기쁨을 흩트리려 하자

예수님은 잃은 양 한 마리, 잃었던 한 드라크마,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들어 일러 주십니다. 

세 비유의 내용은 모두 잃었던 것을 찾은 것이고, 주인은 기쁨에 못이겨 잔치를 열었다는 것입니다.

회복된 기쁨에 못이겨 주인이 잔치를 열었으니 기쁨을 누리는 것이 주인과 함께한 이들에게 가장 소중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면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로 이뤄지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야말로 복음의 능력이자 실재였지요. 

개한 죄인들이 나누는 기쁨과 감격의 자리 - 이게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자 교회의 모습이지요 - 야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신랑의 잔치자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재산을 축냈던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때 

아버지는 잃었던 아들이 돌아온 기쁨을 잔치로 만끽하려 합니다. 

그러니 첫째 아들이 그 잔치를 거절하는 것은

아버지의 기쁨을 외면하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거절하는 것이지요. 

 

버지의 기쁨을 첫째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바리새인들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둘째 아들이 축낸 재산에만 눈길을 주고 주인이 본 손해를 제 손해처럼 여겼나 봅니다. 

물질 중심의 세상에서 손익계산에 익숙한 눈길이지요. 

그러니 첫째는 아버지께 배신감마저 느꼈지요. 

은혜를 잊고 알량한 수고의 계산서를 들이밀고픈 고약한 심성일지 모르겠습니다.

 

사순 기간의 주일을 통해 우리는 이 시기를 걸어갈 힘을 얻어야겠습니다. 

이 여정은 심각하게 인상쓰며 십자가를 향하는 시간이 아니라 

회복케 하신 은총을 감사하며 주님이 베푸신 기 쁨의 잔치에 함께하는 여정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드러내고 그분의 가없는 품을 경험하여 

참된 생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라는 초대장이지요. 

래서 첫 과정은 회개이며 돌이킴이나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용납하시는 사랑에 젖어드는 기쁨과 감격입니다. 

 

엄격한 의무와 책임감의 종교에 익숙한 이들은

이 기쁨과 감사가 쉬 받아들여지지 않고 판단하고 정죄하기 바쁩니다. 

바리새인들이 겪은 위험은 오늘도 상존합니다. 

 

함께 기뻐하는 이들과 기뻐하는것, 함께 슬퍼하는 이들과 슬퍼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 사역의 핵심인 긍휼이며 우리가 닮길 힘써야 할 은총의 덕목입니다.

 

 

기도
주님, 

이 여정에서도 당신이 베푸시는 기쁨과 감사를 오롯이 누리게 하십시오. 

타인을 판단하다가 그가 용서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는

흉악한 어리석음에 빠지 지 않게 하시고

먼저 제가 그렇게 용서받았음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