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제 3부 중간사 시대의 유대 문헌

제13장 외 경

w.j.lee 2023. 5. 9. 13:35

제13장     외  경

 

구약의 외경은 길이와 주제, 표현방법이 각기 다양한 14권을 말한다.

많은 영어역 성경들이 수록한 외경의 순서는 흠정역(King James)의 번역자들이 친숙한 구약의 라틴어역을 따르고 있다.

라틴어역과 다른 유일한 예외는 에스드라서가 맨 마지막 자리에서 맨 처음으로 바뀐 것이다.

벌게이트의 현대역에서는 이들 두 책이 신약의 뒤에 오며 므낫세의 기도는 벌게이트에서 빠져 있다.

 

영국 성공회의 제6조항(the sixth Anglican Article of Religion)은 구약 39권의 목록 뒤에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히롬 [Hierome]이 말하였듯이) 교회는 생의 모범과 예절의 교훈을 위하여, 또 다른 책들을 갖는데, 그러나 교회는 그것들을 사용하여 어떠한 교리도 수립하지 않는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에스드라 3서, 에스드라 4서, 토비 아스, 유딧, 에스더 부록, 지혜서, 시락의 아들 예수, 바룩, 세 아이의 노래, 수산나 이야기, 벨과 용, 므낫세의 기도, 마카비 1서, 마카 비 2서."

 

이 책들 가운데서 B.C. 300년~A.D. 100년에 이르는 기간에 발달 된 유대 문학의 다양한 특색이 발견된다. 

비록 극히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이 책들이 헬라어 구약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을지라도 히브리어 구약에는 포함되지 않고 있다.

유대인은 두 가지의 구약 정경, 즉 팔레스틴 사본(성경의 맛소라 사본이 보여주고 있는)과 알렉산드리아 사본(70인경이 보여주고 있는 대로의)이 있다는 사실이 자주 진술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이 외경 가운데 어떤 책을 정경으로 간주한 증거는 전혀 없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외경이 구약 정경의 일부를 형성하였다는 이유로 외경에 정경적 지위를 주었을 것이다. 

반면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외 경을 24권으로 된 히브리어 정경에 첨부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이 유로 그것들을 정경으로 삼았다는 것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개신교 학자들은 이와 같은 비정경적 문헌들을 첨부한 것은 문헌상의 여건에 근거하여 설명되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브루스(Burce)는 이렇게 말하 고 있다.

 

각 책이 파피루스나 양피지의 두루마리로 된 것이며 많은 수의 그와 같은 두루마리가 하나의 상자에 함께 보관되었을 때, 비정경적인 문헌들이 정경적인 지위를 획득하지 않고도 정경적인 책들과 같은 상자에 보관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타당한 일이었다.

분명히 한 상자 안에 보관된 많은 책들의 관계는 한 권으로 함께 묶여진 많은 책들 의 관계 보다는 더욱 약한 것이다. 

 

70인경에서 외경에 속한 책들(에스드라 2서 제외)은 항상 정경적인 책들과 나란히 동일 계급에 놓여졌다. 

에스드라 1서는 에스라와 느헤미야 앞에 오고 유딧과 토비트는 에스더 뒤에 오고, 에스더와 다니엘 부록은 각각 에스더와 다니엘의 일부로 취급되며, 지혜서와 집회서는 정경의 지혜서들(욥기, 시편, 잠언)과 함께 자리한다.

바룩은 예레미야 뒤에 나오며 므낫세의 기도는 70인경의 부록을 형성하는 시와 찬양의 결집에 포함되어 있다.

 

다음의 분류에서 볼 수 있듯이 14권의 외경에서 각기 다른 문학의 쟝르가 발견된다.

 

1. 역사적 문헌: 에스드라 1서,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

2. 하가다 (Haggadah), 또는 종교적 소설: 토비트, 유딧, 에스더 부록, 다니엘 부록

3. 지혜 혹은 윤리문학: 집회서, 솔로몬의 지혜, 바룩, 므낫세의 기도

4. 묵시문학: 에스드라 2서.

 

정통적인 유대인이나 개신교 신자들은 외경 가운데 어느 한 책도 정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은 유대인의 정경을 용인하시고 그것들을 사용함으로 그 권위를 공인하셨다. 

반면에 그들이 외경의 책들을 24권의 정경과 동일한 수준의 것으로 간주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초기의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헬라화된 유대인들에게서 70인경을 취하여 정경과 외경의 구별을 두지 않았다.

오리겐 (Origen)과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그 밖에 다른 교부들은 구약의 책들을 열거할 때는 이론상 구분을 하였지만 실제로 인용할 때는 정경에 속한 책들에서 인용하는 것과 동일한 형식으로 외경에서도 인용 하였다.

어거스틴(Augustine)을 포함한 라틴 교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정경과 외경을 구별하지 않았다.

즉, 어거스틴은 구약이 45권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여 토비트, 유딧,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 집회서, 지혜서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제롬(Jerome)은 "아포크리팔"(apoc ryphal)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용어는 어원학상 “감추어진" (hidden)이란 뜻이며 에스드라 2서 24장에 나오는 이야기,

에스라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94권의 책을 구술하였는데

그 가운데 24권은 책으로 간행되었고 70권은 은밀히 보존되었다는 이야기에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제롬은 '아포크리팔'이란 용어를 '감추어진'이란 뜻으로 사용 하지를 않고 교회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정경에 반대되는 것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종교개혁 시대에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은 외경에 대하여 상이한 태 도를 취하였다. 

1545~1563년의 트렌트 종교회의는 토비트와 유딧, 에스더 부록, 다니엘 부록, 바룩, 집회서, 지혜서, 마카비 1서와 2서를 정경성을 주장하였으며 이 입장이 1870년의 바티칸 회의에서 재확인 되었다.

가톨릭 학자들은 항상 이 책들을 “듀테로캐노니칼"(deuter- ocanonical, 이차적 정경)이라고 부른다.

개신교 개혁자들 가운데서 외경의 위치를 평가함에 있어서 의견이 다양하였다.

영국 성공회는 그 것들에 이차적 정경의 위치를 허락하고 계속하여 그들의 예배의식 가 운데서 그것들을 낭독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는 외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소위 외경이라 불리우는 책들은 영감되지 않은 것으로 성경의 정경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둥의 권위가 없으며 여타의 인간적 저작물 이상의 무엇으로 인정되거나 사용되지 않는다.

 

루터(Luther)는 외경 가운데 어떤 책의 정경성도 인정하지 않고 구약의 전체에서 외경적인 책들을 발췌하여 그것들만을 따로 구약과 신약 사이에 위치시키는 획기적인 일을 단행하였다.

루터는 1,100년 전에 제롬이 한 주장을 실행한 것이다.

그는 1534년에 이 일을 하였으며, 이 해에 그는 히브리어와 아람어, 헬라어로부터 독일어로 성경번역을 완성하였다.

루터는 외경에 대해서는 열정적이 아니었다.

1535년 커버데일(Miles Coverdale)은 루터의 형식을 따라 최초의 영어성경인 쇄본을 내었다.

이후로 모든 개신교 성경들, 즉 1537년의 매튜의 성경, 1539년의 태버너 성경 (Taberner Bible), 최초의 “공인교회 낭독용" 성경인 1539년의 큰 성경(Great Bible, Coverdale), 청교도에 의하여 출판된 1560년의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68년의 비숍 성경 (Bishop's Bible, 교회와 왕실이 인정한), 1611년의 흠정역 (King James, 또는 Authorized version)은 구약에서 외경을 별도로 구분한 루터의 이러한 혁신적인 방법을 채용하였다.

이 모든 번역 성경들에서 외경은 구약 다음에 별도의 그룹을 형성하였다.

 

보다 초기의 영어역과 독일어역 성경들에서는 이러한 일이 없었다. 

14세기에 성경이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번역 성경들은 외경을 구약 전체에 분산시켜 수록하였고 이러한 관습은 라틴어 본문 (1382-88년에 Wyclif 와 Purvey가 사용한)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라틴어 성경은 제임스 1세 때 발행된 1610년의 듀에이 번역 본(the Douay version)의 모델이기도 하였다.

 

가장 초기의 외경 영역본들은 이 책들의 초두에 그 가치와 권위에 대한 진술을 병기하였다. 

1560년의 대 성경과 제네바 성경은 이 책들이 건덕을 위하여 읽혀질 수는 있으나 확인과 교리수립을 위하여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진술하고 있다.

성경에서의 외경의 제거는 어떤 제네바 성경에서 외경을 생략시켰던 청교도의 영향으로 돌려진다.

1629년 흠정역의 어떤 판에는 외경이 없이 출간되었다.

1827년 이후 대영성서공회와 해외성서공회 (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ies)는 외경에 속한 비정경적인 책들의 출판을 위한 기금을 확장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이전에는 많은 개신교도들이 중간사 시기에 속한 이 책들에 친숙하였으나 그 이후에는 이 책들의 내용을 아는 이들 이 거의 없게 되었다.

1607~11년의 흠정역 번역자들과 1870~94년의 영어 성경 개역자들은 외경을 무시하여 가장 최상의 가능한 번역을 위한 동일한 노력을 경주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들의 시간을 외경 의 비평적 본문연구에 투자하지 않았다.

굳스피드(Goodspeed)는 외경 의 번역이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1535년 커버데일은 파기우스 의 라틴역과 루터역을 포함한 독일어역의 도움을 받아 그의 라틴 벌 게이트역에서 외경을 번역하였다.

커버데일의 외경 번역을 그 뒤의 모든 영어역 성경들이 따랐으며,

비록 헬라어에 기초하여 개역되었을 지라도 굳스피드의 미국 번역본(The American Transtlation)과

본질적으 로 라틴어에 의존한 1957년의 표준개정역(RSV)의 새 번역도 이전에 사용한 외경 번역을 따랐다.

 

비록 외경이 영감된 정경의 일부는 아닐지라도 이 책들은 종교적이거나 문학적, 역사적으로 생각해볼 때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책들은 선지자의 소리와 계시가 중단되었던 구약과 신약 사이의 공백을 메꾸어준다.

 

정치적인 면에서 외경문헌들은 중요한 기간을 포함한 유대인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에 우리를 도와준다.

특별히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자유를 얻기 위하여 유대인의 투쟁에 대하여 신빙성있고 자세하게 묘사한 마카비 1서와 2서는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이 두 책은 히브리 역사의 가장 영웅적인 기간 중의 하나를 기록하고 있다.

 

외경은 또한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귀중한데 그 이유는 이것들이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 세기들 동안에 펼쳐진 유대인의 영적이며 철학적, 지적 생활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단한 가치에 관하여 엉거(Unger)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책들은 우상숭배의 실제적인 소멸, 즉 충실한 유일신의 확신의 성장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메시야의 소망과, 또한 부활과 미래 의 보상과 징벌의 신앙이 더욱 더 확산되었다. 

 

이 동일한 책들이 마찬가지로 메시야 강림 이전 세기에 보여주었던 유대교의 변질된 모습을 학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아가 문학적 문헌들로서도 외경은 그 뒤를 잇는 문학에 괄목할 만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학자들은 다수의 신약 저자들이 외경의 작품들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과연 어느 정도 신약의 저자들이 이 책들에 친숙하였는지가 논쟁점이 되고 있다.

비록 신약이 외경을 직접적으로 인용하거나 영감된 책들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히브리서 11:34~38에서 마카비 시대의 영웅들을 암시하고 있음이

의심의 여지가 없듯이 신약은 외경과의 친숙도를 보여준다.

 

예술과 문학, 종교에 대한 전체 성경의 영향을 확인하고자 원하는 사람은 외경에 대한 지식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