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제 3부 중간사 시대의 유대 문헌

제16장 위경의 각론

w.j.lee 2023. 5. 9. 13:32

제16장 위경의 각론

 

 

1. 열 두 족장의 유언

 

본서는 A.D. 1세기 초에 유행하였던 문학양식에 속하는 것으로 보 인다.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하는 책들은 모세의 전설, 아담과 이브 이야기, 이사야의 승천서, 아브라함 묵시록, 선지자들의 생애가 있다. 

족장들과 선지자들에 대한 옛 전설들이 모아졌으며 새로운 전설들이 저술되었다. 

어떤 기독교회의 목록에서는 이 책이 정경과 외경의 목 록에 포함되기도 한다.

 

(1) 본서의 가치
열 두 족장의 유언의 가치는 묵시적인 성격보다는 윤리적인 성격에서 찾아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대부분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권면과 격려를 담고 있으며, 죄를 피하라는 경고를 제공하기 때문이 다.

본서의 명칭은 야곱의 열 두 아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여기서 그들은 임종 직전의 부친 야곱과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로 묘사되며, 야곱은 차례대로 그들에게 도덕적 유언과 윤리적 훈화를 들려준다.

비록 본서가 유대인의 저작이며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지라도 본서에는 성육하신 메시야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의 삽입이 들어 있다. 

열 두 족장의 유언은 각 권마다 한 사람의 족장의 이름으로 된 12권의 작은 책을 모은 것으로 기록된 형식의 통일성이 증거하듯이 아마도 한 사람에 의하여 기록된 듯하다.

 

(2) 본서의 형식
이 책의 일반적인 형식은 야곱이 임종에 직면하여 자기 아들들을 침상 곁에 불러 모으고 각자의 미래를 예언하는 창세기 44장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마도 모세가 열 두 지파를 각 지파별로 축복하고 그들 에게 궁극적인 승리를 확신시켜주는 신명기 33장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열 두 족장의 유언에 있어서 예언은 작은 역할을 할 뿐 이다.

 

열 두 족장에 대한 각각의 유언에 있어서 세 가지 특별한 요소가 주목될 수 있다. 

첫째, 각 족장들은 자기가 범한 죄와 역시 자기가 이룩한 덕행을 진술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인생여정을 술회한다. 

이 이야기들은 흥미로운 내용으로서, 성경상의 영웅들의 생애에 민속적인 수식을 한 초기의 아가다(Agada)로 꾸며져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이야기 가운데 나타난 인물들의 죄를 경고하여 독자들을 위한 실제적인 교훈을 제시하며, 반면에 그들의 덕행을 모방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윤리적인 교훈이 본서의 특별한 모습을 형성하였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묵시의 경지에 몰입하여 아들들의 미래의 사건들을 알려준다.

이러한 특징이 본서에서 특출한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 예언 가운데는 이따금 지파들의 변절이 예언되고, 그들의 포로됨이 묘사되 며, 성전의 멸망이 언급되고 있다.

메시야의 강림에 대한 상당한 예언들도 나타난다.

 

(3) 본서의 메시야 예언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 가운데서 메시야가 유다로부터 오실 터이지 만 그가 레위 지파에서 나시리라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레위의 후예라는 사실은 열 두 족장의 유언의 상당 부분이 당시까지는 바리새파였던 요한 힐카누스의 통치 동안에 저술되었다는 사실로서 설명되었다.

처음에 저자는 힐카누스를 선택된 메시야로서 생각하며, 그에 게 영광된 미래를 약속하였다.

따라서 요한 힐카누스가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메시야는 레위로부터 나와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가 바리새파나 그의 후예들과 결별하고 마카비 일가가 유대인들이 기대하던 이상적인 통치자에서 멀어지자 열 두 족장의 예언의 뒷부분에서는 메시야가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4) 본서의 윤리적 교훈
학자들은 윤리적 교훈들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르우벤은 부정을 경고하며 (창 35:22:49:4), 시므온은 자기의 요셉에 대한 질투와 유다에 대한 격분을 견책한다.

6:7에서 레위는 세겜 성에서 한 부당한 무력행사(창 34장)를 인정하지만 그의 과거가 여러 사람들에게서 칭송을 받고 우호적인 예언의 대상이 된다.

유다는 그의 자손에게서 메시야가 나실 것을 예언하며, 또한 그의 탐욕과 술과 여자에 대한 결과를 경고한다.

스불론은 그의 자손들에게 그의 동정 적이고 인정스러우며 자상한 성격을 본받으라고 권한다.

그는 유명한 어부가 될 것이며, 최초의 선장이 되어 자기 배로 항해할 계획의 확실성을 주장한다(5:5~6:3).

단은 증오심과 어리석음을 피하도록 강조하며 요셉에 대한 자기의 행동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갓은 그의 후손들에게 형제와 친척들을 사랑하며 요셉을 미워한 자기의 본을 따르지 말라고 충고한다.

아셀은 자손들이 매사에 정직하며 위선자가 되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요셉은 애굽에서 겪은 자기의 유혹을 자세히 말하며 그의 아들에게 모든 것 위에 순결할 것을 권한다.

베냐민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마음을 순수하게 가지며 행악하게 하는 모든 유혹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생활에 비난을 받지 않게 하라는 훈계를 한다.

 

(5) 본서의 저작 시기
파이퍼(Pfeiffer)에 따르면 열 두 족장의 유언은 B.C. 140~110년, 즉 요한 힐카누스의 시대 (B.C. 135~104)에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찰스는 저자가 요한 힐카누스의 통치 초기에 이 책을 기록한 어떤 바리새인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톰슨(J.E.H. Thomson)은 찰스와 다른 학자들의 주장에 반대하며, 본서가 신약에 의존하였지 그 반대의 경우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본서가 A.D. 1세기 말엽에 저작되었다는 말과 같다.

 

 

2. 희년서, 또는 “소 창세기"

 

"소 창세기"(The Little Genesis)로도 알려진 희년서(The Book of Jubilees)는 흥미있는 책이다. 

이 책의 널리 알려진 이름은 그것이 따르고 있는 연대기의 형식, 즉 희년의 제도가 갖는 양식에서 유래되었다.

각 회년은 49년으로 구성되며 49주로 구분되어 매 일년은 일주일의 하루를 말하고 있다.

두번째 이름은 희년서가 주로 정경인 창세기에 기록된 사건들을 보충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1) 본서의 내용
희년서의 내용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고 이스라엘이 기다리라 는 명령을 들은 후에 한 천사가 모세에게 구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희년서는 종교적인 허구로서 저자는 세상의 창조부터 시내산에서의 율법수여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재기술하고 있다.

동일한 역사를 기술한 정경 창세기와 비교할 때 이 책은 성경 이야기의 부록이라고 말해져야만 한다.

여기에 수록된 부가적인 내용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로 구전을 통하여 전승되었다고 추정된다.

희년서는 2장 초두에서 창세기 1:1에서 출애굽기 14:31에 이르는 히브리 성경의 내용을 병행시키며 자주 미드라쉬적인 내용을 삽입시킨다.

 

희년서의 저자는 정경에 나타난 사건과 인물들은 생략한다.

간혹 이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면 그에 대한 첨가와 확대의 정도일 것이다.

희년서에서 누락된 내용은 변증적인 이유에서 행하여진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바로에게 사라가 단지 자기의 자매라는 그릇된 인상을 주었던, 혹은 이삭이 아비멜렉에게 유사한 범죄를 한 경우와 같은 애굽에서의 아브라함의 기만이 여기에 속한다.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사건 들을 정당화시키기가 어렵다고 느꼈음에 틀림이 없다.

 

시므온과 레위가 계략을 꾸며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그들이 힘을 쓸 수 없을 때에 학살한 이야기도 생략되어 있다.

라반의 소유 가운데서 자기의 양떼를 늘리기 위하여 야곱이 사용한 계략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창세기 49장과 같이 야곱이 축복한 내용을 희년서에서는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축복이 야곱이 이전에 한 선언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디나가 12살에 납치당하였다거나 야곱이 부모에게 1년에 4차례 선물을 드렸다는 것과 같은 첨가된 내용도 변증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희년서에 나타난 보다 긴 추가적 내용들은 대부분 예식과 관계된 것이었다.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 (34:1~9)과 에서와의 전투 (37장과 38장)가 길게 다루어지고 있다.

 

(2) 본서의 문학 쟝르
희년서는 두 가지 문학양식, 즉 주석적인 것과 변증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서 주석적인 내용이 압도적이다.

독자들은 성경에 언급된 족장들과 영웅들, 사건들의 모습을 둘러싼 초기에 구체화된 다양한 아가다적인 전설과 이야기를 조직화하려는 최초의 시도를 발견할 것이라고 어떤 학자들은 주장한다.

희년서에는 묵시적 요소 또한 괄목할 만하며 천사와 마귀들에 대하여 자주 언급한다.

희년서는 악한 천사들의 타락과 그들이 인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기술하고 있다.

미래가 다른 묵시문학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메시야가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지만 다른 묵시문학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초자연적 특성들의 묘사가 없다.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며 그것은 물리적이며 윤리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불멸의 세계에 들어가 천년 동안 고통과 죄가 없이 살 것이다

 

(3) 본서의 저작 목적
본서의 저작의 목적은 저자가 소유한 유대교의 신앙이 인간의 역사 가 시작될 때부터 존재한 그대로의 정황임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거룩한 수인 7이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역사 속에서 수행한다는 사실을 보 여주고 싶어하였다.

 

(4) 본서의 저작 시기
권위있는 학자들은 희년서의 저작 시기에 대하여 의견의 일치를 갖 지 않는다. 

찰스와 리트만(Littmann)) 같은 만만치 않은 학자들은 이른 시기, 즉 요한 힐카누스와 바리새파가 투쟁하던 연대를 지지한다.

톰슨은 이에 반대하면서 본서의 변증적인 어조와 에돔에 대한 중오로 보아 로마가 팔레스틴을 통치하였던 헤로디안 왕조 때에 저술되 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이 때는 "그리스인과 헬라화된 사람들을 항상 볼 수 있었으며 유대인으로서 히브리어를 아는 이들이 헬라의 문화에 감염되었고 그들의 신앙과 경전이 침식당하는 모습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때였다."

이와 같은 연대추정은 에돔에 대한 증 오로써 설명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저작 시기는 헤롯 대왕이 사망한 B.C.4년 경이 될 것이다.

반면에 파이퍼(Robert Pfeiffer)는 본서의 저작연대를 요한 힐카누스의 통치 말기 (B.C. 135~104), 즉 열두 족장
의 예언이 기록된지 얼마 안되는 때로 잡는다."

 

토레이는 벨리알과 마스테마(Mastema)와 같은 이름들이 저작 연대 의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무녀의 신탁서와 이사야 승천기, 열 두 족장의 유언, 선지자들의 생애에서 벨리알이란 이름이 나온다. 

따라서 희년서는 A.D. 1세기 이전이 될 수가 없다고 토레이는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본서의 저자가 하스모니안 왕조 아래서 제사장직을 맡아 긍지를 가졌던 어떤 제사장이었다고 주장한다.

 

(5) 본서의 원어
희년서는 헬라어 번역본에 근거한 에디오피아 사본만이 현존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자들은 희년서의 원어가 히브리어나 아람어 둘 중 의 하나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3. 이사야 승천서

 

본서는 중간사 시기 묵시문학에 속한 책이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적 자료들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중간사 시기 묵시록 들과는 다르다. 

이사야 승천서(The Ascension of Isaiah)에 대하여 지금 까지 알려진 지식은 이사야 승천서가 런던의 책방에서 로렌스 (Archbishop Laurence)가 발견한 에디오피아역에 의존하고 있다. 

역시 헬라어와 라틴어로 된 약간의 단편들도 발견되었다.

 

본서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즉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작품으로 생각되는 이사야의 순교(1:1~3:13;5:2~14), 히스기야의 유언 (3 :13~5:1), 이사야의 환상(6~11장)이다.

이사야의 순교 부분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살해되었다는 점에서 탈무드에 나오는 이사야의 사망 내용과 일치한다.

이사야의 순교(the Martyrdom of Isaiah)의 헬라어 번역본은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의 번역이라는 것이 페랄(Ferrar)의 확신이다.

이사야의 순교에 담긴 것과 동일한 이야기가 A.D. 1세기 경에 수집된 유대인의 전설집인 선지자들의 생애에서도 발견된다.

히브리서 11:37은 이사야의 순교에 대하여 “톱으로 켜는” 형벌로 묘사 하고 있다.

 

이사야의 순교와 승천에 대하여는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 특히 오리젠이 가끔 언급하였다.

오리겐은 이사야 승천서를 “이사야 위경"이 라고 불렀다.

순교자 저스틴은 그가 이사야 승천서와 친숙하였음을 보여주는 어투로 이사야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다.

 

(1) 본서의 내용
이사야의 순교를 포함하는 1~5장은 주로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에 대하여 예언한 이야기, 즉 므낫세가 여호와 대신에 벨리알을 섬기며 이사야가 두 토막으로 톱질을 당하리라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히스기야 사후에 므낫세는 온갖 악행을 자행하여 이사야를 포함 한 모든 참된 신자들을 광야로 불가피하게 도피케 한다.

베키라 (Bechira)라는 사마리아인이 므낫세 왕에 대항하는 예언을 하였다고 이사야를 고발하여서 결국 선지자는 체포되어 순교를 당한다(5:1b ~14).

3:13~5:1a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삽입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여기서 벨리알은 이사야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예언하기 때문에 그를 미워한다고 묘사되어 있다.

 

본서의 후반부(6:1~11:40)는 이사야의 환상으로 어떤 그리스도 인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히스기야 통치 20년이 되는 해에 이사야가 왕에 관한 환상을 보았다고 이 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7층천에서 아담과 하나님과 함께 맨 앞에 자리한 성도들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자기의 아들을 보내실 것이라는 계획을 하나님으로 부터 들은 후에 7층천에서 돌아온다.

다시 한번 환상을 통하여 이사야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그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모든 사건 들을 보게 된다.

이 환상 때문에 사단은 므낫세를 시켜서 이사야를 두 동강 내었다.

 

(2) 본서의 저작 연대
로버트 파이퍼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쓴 이사야의 순교편은 아마도 A.D. 2세기로 그 연대가 추정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순교편이 아람어로 기록되었으며 A.D. 2세기에 기원하였을 것으로 믿고 있다.

찰스는 이 순교의 이야기를 드예미드(Djemid) 왕에 관한 페르샤 전설과 관련시킨다.

이 전설은 하나님이 대적에게 쫓기는 왕을 숨기기 위하여 나무 속을 열게 하셨으나 이블리스(Iblis)의 도움으로 그는 발 견되고 왕을 속에 감춘 나무가 톱질에 의하여 두 토막이 났다는 이야기이다.

본서의 흥미있는 특징의 하나는 메시야를 “사랑하는 자”라고 지칭 한 것인데 학자들은 이 명칭이 원래부터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후에 그리스도인에 의하여 삽입된 것인지에 대하여 의견의 일치가 되지 않 고 있다.

 

 

4. 예레미야의 파라리포메나

 

예레미야의 파라리포메나(The Paralipomena of Jeremiah, '파라리포메나'는 '지나간 일', 혹은 '누락된 일'이란 뜻-역자주)는 해리스 (James Rendel Harris)가 편집한 헬라어 사본에 수록되어 전하여지며

『바룩의 남은 이야기: A.D. 136년의 한 기독교적 묵시록』 (The Rest of the Words of Baruch: A Christian Apocalypse of The Year 136 A.D.)으로 명 명된다.

 

아그립바 1세(A.D. 44년 사망)나 아그립바 2세(A.D. 110년 사망) 중의 하나인 아그립바(Agrippa)에 대한 언급은 본서가 필연적으로 A.D. 50년 이후에 저술된 책임을 말한다.

본서의 처음 8장은 유대인이 기록하였을 가능성이 큰데 이것은 본서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가 헬라어로 번역되었음을 의미한다.

본서의 뒤편은 에디오피아어, 알메니아어, 슬라브어로 번역되었다.

 

(1) 본서의 내용

제1부(1~4장)에서 여호와는 예레미야에게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것이며, 그는 성전의 기명들을 땅에 묻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는다.

이 일 후에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예루살 렘이 멸망하기 전에 예레미야는 내시 아비멜렉을 보내어 아그립바의 과수원에서 무화과 나무를 가져오게 한다.

그런데 이 내시는 과수원에서 잠에 빠져 66년 후에 깨어난다.

이 때 한 노인이 그 동안에 일어난 변화를 이야기해준다(5장).

 

예레미야는 바룩에게서 한 통의 편 지를 받는데

그는 바벨론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 가운데서 모든 이방인들이 떠나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의 백성들이 여루살렘으로 귀환하지 못하리란 이야기를

예레미야에게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

 

66년 전에 꺾었지만 아직도 생생한 무화과 나무와 함께 바룩의 편지를 독수리가 바벨론까지 전달하였다(6장).

그 후에 이 독수리는 죽은 사람을 살리고 뒤따라오는 예레미야를 유다의 자손들에게 되돌아 오도록 인도하는 등 혁혁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끝내 그들의 이방인 아내들과 결별하지 못하였던 유대인들은 시온에 돌아가는 일을 허락받지 못하고 대신에 사마리아의 성읍과 일단의 사마리아인을 발견하였다(7~8장).

 

예레미야의 파라리 포메나의 마지막 부분에서 삼년 후에 재개된 예루살렘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면서 졸도한 예레미야는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해질 구원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예레미야가 유대 민중에게 허락한 후에 그들은 그에게 돌을 던져 죽일 수 있었다(9장).

 

비록 파라리포메나가 이방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특히 이방인 아내를 얻지 않아야 한다는 유대인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을지라도 (6:13 ~14:8:2) 본서 전체가 그리스도인의 작품일 수 있다고 어떤 학자 들은 믿고 있다.

 

 

5. 선지자들의 생애

 

선지자들의 생애 (The Lives of the Prophets)는 A.D. 1세기에 아마도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 같은 일련의 전기적 묘사로 구성되어 있다. 

그 것은 히브리어로부터 헬라어와 라틴어, 수리아어, 에디오피아어로 번역되었다.

토레이는 영어 번역을 함께 수록한 비평적 헬라어 번역판 을 출판하였다.

모든 현존하는 번역들은 헬라어 사본으로부터 되어진 것이다.

1883년 하마커(Hamaker)는 본서의 원어가 히브리어였음을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토레이의 주장에 따르면 헬라어 사본은 분명히 헬라어로 번역되었다는 증거를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주장 하고 있는 사실은 헬라어를 해독할 수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명해 져야 한다.


(1) 본서의 내용

선지자들의 생애는 히브리 선지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들 각자는 자기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느 지파에 속하였고 어디서 장사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성경에 이미 나타난 선지자 들에 대한 내용이 반복되지는 않으며 대신에 다른 내용들이 보충되어 있다.

많은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첨가되어 있다.

다른 선지자들에 대한 전기는 짧고 규칙적이고 비성경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하박국의 전기들은 진실된 것이라고 본서는 주장한다.

 

여러 고정본(Recension)들을 한번만 비교해 보아도 선지자들의 생애에 대하여 언급된 순서가 각각 상당히 다양한 것을 알게 된다.

가장 공통적인 순서는 스웨트(Swete)의 『헬라어 구약성경』(Old Testament in Greek)에서 제시된 대로이다.

 

선지자들의 생애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애굽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명예를 얻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애굽의 나일강에서 위험한 파충류들 (독사들과 악어들)을 쫓아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알렉산더 대제는 예 레미야의 뼈를 알렉산드리아에 보내어 그 지역에서 악어를 근절시키 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레미야는 그의 글에서 뱀과 싸우는 동물인 아르골라이(argolai)를 소개하였다고 추정된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살던 단과 갓지파 사이에서 태어난 어떤 사내를 우상숭배로 책망하였기 때문에 그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한번은 백성들이 굶주렸을 때 에스겔은 자신의 지휘 아래 함정에 잡힌 물고기를 케발 운하(Chebar Canal)에서 가져다가 그들의 양식으로 삼게 하였다.

그밖에도 다른 기적들을 에스겔이 일으켰다고 묘사되어 있다.

 

다니엘의 생애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야기의 4분의 3을 차지 하는 느부갓네살의 변신이다. 

그는 머리는 황소이며 다리와 몸통의 뒤는 사자인 복합적인 형태의 동물로 변하였다. 

마침내 다니엘의 기도를 통하여 느부갓네살이 자기의 죄를 고백한 후에야 그는 전신이 회복되었다.

 

아모스는 아마샤의 아들에 의하여 곤봉으로 살해되었다. 

전설이 전하는 대로 요나는 사렙다의 아들이었는데

열왕기상 17:8~24에 의하면 엘리야가 그녀의 집에 체류하였다고 한다.

요나는 엘리야가 생명을 되찾게 해준 소년이었다.

요나는 후기의 여생을 두로의 이방민족과 섞여 살면서 니느웨에서 행한 자신의 그릇된 예언을 참회하였다.

 

하박국의 생애는 역시 벨과 용에서도 발견되는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시므온 지파이며 스가랴 집안 출신인 하박국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다의 포로됨을 예언하였다.

선지자는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애굽으로 피난하였다.

후에 농부로서 자기 일과를 수행하던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그는 추수군들에게 음식을 가져 다주려 하면서 그의 식구들에게 “나는 먼 나라로 떠나려는데 곧 돌아 오겠노라”고 말하였다.

그가 말을 마치자 그는 바벨론에 있었고 사자 굴에 있는 다니엘에게 음식을 갖다주었다.

그는 곧바로 팔레스틴에 돌아와 아무 말없이 그곳의 추수군들에게 음식을 갖다주었다.

 

나단의 생애를 진술하는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한 꿈을 통하여 다윗이 큰 죄를 지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소식에 접하자 그는 왕에게 경고를 보내지만 벨리알은 나단을 위한 함정을 준비하여 그가 때를 맞춰 다윗에게 경고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토레이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가 원래는 선지자들의 생애에 수록된 것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열왕기에 나오는 전기적 내용 을 복사하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본서를 기록한 어떤 필사본들은 스가랴 (눅 1:5 이하)와 시므온(눅 2:35 이하),

세례 요한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다.

선지자들의 생애 가운데서 다수의 전기들에는 기독교적인 요소들이 나타나며,

또한 메시야의 강림에 대한 예언들도 발견이 된다.

토레이는 이것들이 삽입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6. 욥의 유언

 

본서는 비록 소위 위경문학의 몇 가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학양식에 속해 있었지만 18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학자들에 의하여 알려지지 않았던 책이다.

오늘날 본서는 마이(Cardinal Mai)가 최초로 출판한 『Scriptorum Nova Collectio』(Rome, 1833) 제7권인 헬라어판에서만 수록되어 전해진다.

1897년에 콜러(Kaufmann Kohler)는 헬라어 사본을 재판하여 마이의 본문에 번역을 붙이고 또한 서론과 주를 첨가시켰 다.

 

욥의 유언은 사실상 금세기 초에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고대에는 세상에 알려졌던 듯하다.

그 이유는 갈라시우스(A.D. 492-496년의 로 마 주교)의 교서에 인용된 위경문헌의 긴 목록에 본서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70인경의 욥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학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책이다.

그의 『Apocrypha Anecdota』에서 마이의 본 문과 약간 상이한 본문을 수록한 제임스(M.R.James)는 70인경이 욥의 유언에서 욥의 아내의 풍부한 언설을 인용하였다고 주장한다.

 

(1) 본서의 내용

본서에서 욥의 아내인 시티도스(Sitidos)는 정경인 욥기에서보다 더 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파산하여 굶주리게 되었지만 그를 변호한다. 

그녀는 남편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며 살지만 그의 건강과 재산이 회복되기 전에 죽는다. 

시티도스는 그녀의 자녀들이 천국에 있음을 본 후에 위로와 평강 가운 데 이 세상을 하직한다.

 

세 친구와 엘리후는 본서에서 뛰어난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있다.

그들이 욥을 책망하고자 시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시지만 그들의 믿음에 대한 욥의 중재를 통하여 용서받는다.

욥의 첫 아내가 죽은 후 욥은 디나(Dinah, 이 이름은 또한 Targum 에서도 같은 이름이다)와 결혼하며,

그녀는 세명의 딸을 낳아서 영감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린다.

욥의 형제인 나홀(Nahor)은 삼일의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욥의 영혼이 빛나는 수레를 타고 떠나는지를 설명하면서 해설을 계속한다.

본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홀과 욥의 일곱 아들과 다른 이들이 간단한 만가를 부른다.

 

파리 사본에서 헬라어 번역자는 욥의 아들들에게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지만 히브리어 원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두 아들의 이름은 텔시호로스(Tersichoros)이며, 또 다른 두 아들은 니케포로스(Nicephoros) 이고,
다른 두 아들은 이피프로우론(Iphiphrouron)이란 이름의 두 부분 을 각각 취하고 있다 [토레이].

본서의 구조는 1~45장에서 욥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speak. er)임을 지적해주는 듯하다. 
톰슨에 의하면 마지막 두 장은 분명히 후에 추가된 것이며 딸들에게 준 새 선물들은 불가해 한 대목이다. 

 

(2) 본서의 원어

토레이는 욥의 유언이 세계 언어에서 번역되었으며, 아마 아람어가 가장 유력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마귀를 지칭하는 헬라어 디아볼로스(diabolos) 대신에 아람어형인 스타나(Stana)가 어디서나 사용되고 있다.

파이퍼는 아람어가 원어라고 주장한다. 17)

 

(3) 본서의 저작 연대

제임스는 본서가 A.D. 2, 3세기에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에 의하여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제임스에 따르면 이 사람은 읍에 대 한 히브리어 미드라쉬에서 욥의 유언을 헬라어로 번역하였으며,

이때 욥기 헬라어 역본을 사용하였고, 그의 번역본에서 의역을 할 때 약간의 친숙한 신약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반면에 콜러는 『유대 백과사전』(Jewish Encyclopedia). II, 200-202에 실린 그의 소논문 “욥의 유언"에서 본서는 기독교적 요소가 전혀 없이 전적으로 유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콜러는 많은 미드라쉬와의 평행적 내용을 보건대 본서는 유대문학사의 기독교 이전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단정한다.

 

 

7. 아담과 이브 이야기

 

본서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알려져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라틴어 역본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 [생애]"(The Book [or Life] of Adam and Eve)이며

반면에 헬라어 역본은 “모세 묵시록”(Apocalypse of Moses)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유대인의 설화문학에 속한다. 본서는 다른 언어들로 번역되었으며 아람어역과 슬라브어역이 남아 있다.

이 모든 역본들은 히브리어나 세계의 원본에서 유래되었다고 토레이는 주장한다.

본서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상당한 삽입과 첨가가 특징을 이루고 있다.

아담과 이브에 대하여 정경인 창세기에서 발견되지 않는 내용이 이 위경문헌에서 나타난다고 추정된다. 

 

(1) 본서의 내용

에덴 동산의 북부와 동부가 아담에게 배당되고 남부와 서부는 이브에게 할당되었다.

두 사람의 호위천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마귀가 이브를 유혹하였고, 그녀가 굴복한 결과 즉시 자기의 벌거벗은 것을 인식하였다.

그녀가 몸을 가리려고 하자 무화과 나무를 제외한 모든 나무들이 자기의 나무잎 사용을 거절하였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후에 그들이 풀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며칠간 굶주렸다(4:1 이하).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아담은 목에까지 차는 요단 강의 한 바위 위에서 40일 동안 서서 참회하기로 결정하고 이브도 37일 동안 티그리스 강에서 동일한 참회를 한다.

 

본서는 이어서 가인의 출생에 따른 상황을 전해준다. 

그리고 이어서 아벨의 살해와 셋의 출생 이야기가 기술된다.

아담은 셋에게 낙원에서의 그의 추방을 이야기해준다.

에덴 동산 주변에 커다란 강들이 있었으나 미카엘은 주변의 강물을 얻게 하여 아담을 땅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 후에 아담은 셋에게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유대인의 역사를 예언하였다.

아담이 심하게 아프자 이브와 셋은 아담을 치료할 수 있는 자비의 나무에서 나는 한 방울의 기름을 얻기 위하여 에덴 동산 으로 향하였다(36:2).

그러나 도중에 맹수들이 그들을 공격하여 셋이 물린다.

낙원의 문에 도착하여 셋과 이브는 그 기름을 현 세대의 마지막 날에만 얻을 수 있으며 아담은 6일만에 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모세 묵시록"의 헬라어판에서 이브는 자녀들을 불러모으고 그들의 범죄와 그 이후의 일들을 자세하게 들려주면서 특별히 아담과 이브에 대한 여호와의 선포와 심판을 강조한다. 

미카엘이 나팔을 불자 천군 들이 집합한다. 

하나님은 그룹들이 끄는 마차를 타시고 천사의 노래 가운데 에덴 동산에 들어가시며 

낙원의 모든 나무들이 꽃을 피운다. 

이 후에는 창세기 3:9~19이 부연된다. 

아담과 이브의 사망과 장례로 본서는 끝이 난다.

 

(2) 본서의 저작 시기와 장소
본서는 A.D. 70년 이전에 저작되었다고 믿어지는데 그 이유는 저자의 시대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말하는 29: 4~10의 작은 묵시록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언급이 전혀 암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서의 저작된 장소가 어딘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8. 모세 승천서

 

모세 승천서 (The Assumption of Moses)는 고대의 문헌들에서 그것에 대한 언급이 발견되는 어떤 대단히 큰 작품의 한 단편만이 전해지고 있다. 

본서는 1861년 케리아니(Ceriani)에 의하여 밀란의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모세의 몸을 두고 벌어진 천사장 미가엘과 사단 사이의 투쟁을 말하는 유다서 9절의 암시가 모세의 승천에 대한 언급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추측하고 있다. 

모세의 승천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단편은 오직 라틴어판에만 남아 있다. 

 

어떤 헬라어 본문에서 번역된 현재의 라틴어 번역본은 모세의 승천을 언급하지 않지만 모세가 죽기 전에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는 일종의 묵시록이다. 

외경의 초기 목록 에 두 가지 작품, 즉 모세의 유언과 모세의 승천서가 언급되어 있다. 

모세 승천서에 담겨 있는 내용은 오히려 모세의 유언의 특성을 보여 준다. 

본서는 모세가 하늘로 들리워짐을 포함하고 있지 않는다. 

모세의 꿈 속의 승천 개념이 배제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1) 본서의 내용

본서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들려주는 하나의 강화를 전하려는 취 지를 갖고 있다. 

본서에는 모세가 임종이 다가오자 어떻게 여호수아에게 성문서를 전하였는지에 대한 묘사가 있다.

모세는 자기가 기록을 남기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히브리 국가에게 정해진 때가 이를 때까지는 그것을 비밀에 부쳐두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그의 후계자에게 설명 한다.

 

저자의 시대에 이르는 유대 역사의 파노라마가 서술되고 있다.

그는 한 지파가 다른 지파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지를 예언한다. 

“보라 이것은 모세가 전에 우리에게 예언으로 말하였던 것이 아니냐?

그렇다. 우리는 그가 중재하였던 여호와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된다고 그가 선포하였고 우리에 대하여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았었도다.”

 

본서에는 B.C.587년의 예루살렘 멸망과 안티오쿠스의 박해, 하스모 니안 왕가의 통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이의 구분, 헤롯의 통치에 대한 언급이 나타난다.

결론 부분에서 행복한 미래의 약속이 제시되 면서 낙관적인 어조로 끝을 맺는다.

 

(2) 본서의 연대

저작 연대는 좁게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승천서는 독자에게 B.C.4년의 헤롯의 사망을 전해주며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기록되었을 기능성이 가장 크다.

저자는 헤롯의 아들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들의 통치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암시를 보여준다.

따라서 저작 시기는 A.D. 1~30년 사이가 될 것이다.

 

(3) 본서의 원어

토레이는 “탁소”(Taxo)라는 비밀한 이름에서 승천서의 원어를 단정 짓는다. 

즉, 그의 주장에 의하면 그것이 마타디아스와 그의 아들들을 지칭하는 "하스모니안"의 암호문이라고 한다.

토레이는 "Taxo”라 는 단어의 철자들이 의미하는 수자가 히브리어가 아닌 아랍어의 “하스모니안"의 수자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실은 본서가 아람어로 기록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학자들이 본서가 아람어로 기록되었음을 확신하지는 않으며, 토레이의 주장은 인위적이고 “탁소”가 일곱 아들을 가진 반면에 마타디아스는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 다는 사실에서 의구심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4) 본서의 종교적 교훈
본서의 주된 관심은 유대의 신학에 대한 교훈에 보다는 일반적인 관점에 담겨 있다. 

본서에 의하여 제기된 중요한 질문은 “박해에 대한 경건한 유대인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열심당은 힘에는 힘이라고 대답하면서 무력의 사용을 주창하였다.

그들은 수리아의 압제에 굴복하기 보다는 무력으로 회복한 유다마카비의 경우를 찬양 하였다.

그러나 모세 승천서는 이 견해에 반대한다.

본서는 마카비의 행적을 논박하며 무저항을 지지하였다.

마카비 시대의 위대한 순교자인 엘르아셀이 추종의 모범으로 제시된다.

메시야의 시대는 무력이 아니라 순교에 의하여 인도된다.

따라서 모세 승천서는 유대인의 정 적주의(Jewish quietism)를 주창하는 책이다.

 

(5) 신약연구를 위한 본서의 가치

승천서는 유다서와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의 설교에 나타나는 몇 가지 문구들에 빛을 던져주기 때문에 신약의 연구자들에게 가치가 있다고 학자들은 믿는다.

또한 팔레스틴의 지배계급(바리새인들)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예수님 외에도 다른 이들이 당시의 정권이 빠진 타락상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9. 바룩 묵시록(바룩 2서)

 

본서는 전체가 수리아 번역본에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리아어 바룩 묵시”(The Syriac Apocalypse of Baruch)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는 헬라어에서 번역되었으며 나머지는 아람어 원어에서 번역된 것으로 믿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바룩의 작품으로 전해진 책들 가운데는 또 하나의 묵시록이 있다.

본서는 비교적 최근에 밀란의 도서관에서 발견되었으며 1866년에 이태리 학자인 케리아니(Ceriani) 가 라틴어 번역본으로 출간하였다.

 

(1) 본서의 내용
본서는 예루살렘이 멸망될 때에 바룩에게 일어난 일을 그가 설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목격자는 "유다 왕 여호야긴 25년"의 벽두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1:1). 

만일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계시가 B.C. 590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6:1에서 독자는 환상을 보기 전날 바벨론 군대가 도착하여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예언이 B.C. 587년 제10월에 있었음을 의미하였다.

예루살렘에서의 시드기야의 추방이 8:5에 언급되고 있다.

학자들은 이 연대들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여호야긴 25년으로 본서의 연대를 잡는 것은 하나의 실수였다.

왜냐하면 이 이스라엘의 왕은 단지 석달 밖에 통치하지 못하였다.

사실은 저자가 A.D. 70년의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하고 있으면서 동시대의 인물과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에 성경에 나오는 옛날의 역사를 상상하여 이 이야기를 꾸미고 있다.

 

본서는 7부로 나누어진다. 

이것은 예언의 모델로 시작한다. 

“느라야의 아들, 바룩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가라사대.”

제1부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이 선포되지만 바룩은 이스라엘의 패망이 “잠시 동 안"일 뿐이라는 말에 위로를 받는다.

제2부에서 바룩은 여호와께 그 의 불만을 토로하도록 허락받은 후에 7일 동안 금식하라는 환상을 보게 된다.

바룩은 심판이 이방인에게 임할 것과 특히 의인들을 위하여 있게 될 오는 세상의 영광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갈대아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사들의 역사로 묘사되고 있다.

제3부에서 바룩은 역시 에스드라 2서의 주제이기도 한 악의 성질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제4부에서 독자는 미래의 세계가 의인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제5부에서 바룩은 하나님 나라의 지연에 대하여 불평하며 선택될 자의 수효가 찼음에 틀림이 없 다고 믿고 있다.

이 일이 이루어진 후에 메시야가 오실 것이다.

제6 부는 로마 제국과 메시야의 승리를 상징하는 백향목과 포도나무의 환상을 서술한다.

바룩이 장래의 영광을 누구와 나눌 것인가를 묻자,

“믿는 자들”이란 답을 듣는다.

6개의 “검은 강”은 세계 역사에 있어 6개의 악한 기간을 말하며 “6개의 맑은 강"은 선한 기간의 수효를 가리킨다.

저자는 바로 이 부분에서 육체 부활의 교리를 천명하고 있 다.

 

(2) 본서의 연대

바룩 묵시록은 각 부분을 특징짓는 어조와 개관의 다양함에서 볼 수 있듯이 편집된 책이다. 

파이퍼는 에스드라 2서가 저술된 직후, 즉 A.D. 90년과 100년 사이에 기원하였다고 추정한다.

벤첸(Bentzen)은 본서가 에스라 4서와 바나바 서신 저작 연대 사이인 A.D. 170년 이전의 어느 때라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톰슨은 A.D. 59년이나 60년을 가리키는 세줄의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본서의 저작 시기 를 A.D. 70년 이전의 어느 때라고 추정한다. 

 

만일 본서가 A.D. 70년과 10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면 이것은 상당 히 많은 분량의 신약문헌과 동시대의 문헌이었을 것이며, 신약을 공 부하는 이들에게 상당한 가치를 지닌 책이 된다. 

본서는 1세기 후반부에 우세하였던 유대교의 교리와 신앙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가 유대교에 대하여 도전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던 동안 한 때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변호하고 주장하였던 교리와 신앙이었다.

 

(3) 본서의 종교적 교훈들

바룩 묵시록의 교훈은 매우 흥미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주목해볼 가치가 충분한 교훈들이 상당히 수록되어 있다.

메시야의 개념이 다른 것들과 상이하다.

본서는 이중적인 메시야의 때, 즉 커다란 전쟁 뒤 에 있는 시온의 일시적인 회복과 그런 후에 진정한 메시야가 모습을 나타내신다고 가르친다.

이 후에 영원한 메시야 때가 시작된다.

 

이 견해는 후에 탈무드에 의하여 채택된 것으로 그곳에서는 모든 유대인이 메시야 벤 요셉에 의하여 집결되며, 곡과 마곡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나아온다고 가르쳤다.

이 전쟁에서 그 메시야는 살해되며 그 후에 다윗 가문의 메시야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 스도와 성 바울의 교훈들은 대칭에 의하여 설명된다.

 

구전 율법과 성문 율법을 준수함에 대한 정통적인 바리새파의 견해는 다음의 진술에 서 나타난다.

"목자와 양과 산은 율법에서부터 오며 비록 우리가 떠날지라도 율법은 남아 있는다."

바룩 묵시록을 주의깊게 읽으면 저자가 선행에 의한 구원을 받으며 이 선행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공적의 보고를 제공한다고 보여준다.

 

죄와 자유의지, 예정의 문제들이 바룩 2서에서 모두 다루어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교훈이 다음의 진술에 담겨 있다.

“우리 각자는 자기의 영혼을 소유한 아담 이었다”(54:19).

“오, 아담, 당신은 당신에게서 태어난 모두에게 무엇을 하셨는가?”

여기에 저자가 해결할 수 없는 하나의 반명제가 나 타나있다.

 

 

10. 에녹서

 

다니엘 뒤에 나오는 에녹서(The Book of Enoch)는 이 부류의 문헌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묵시문학으로 여겨진다. 

본서는 기독교 시대 이전 처음 두 세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저자들에 의하여 저술된 작품들의 결집이다. 

본서에서는 항상 서로가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어조와 외형에 있어서 하나의 통일성에 의하여 묶여진 다양한 종교적 관념들이 발견된다.

 

에녹서의 10편의 아람어 단편들의 일부가 쿰란 제4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에녹 1서는 5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순서가 논리적으로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질적인 작품들의 저자로서 에녹이 선택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하여 설명된다.

즉,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 창세기 5: 24의 해석은

에녹이 그의 생애 도중에 하늘로 옮겨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와 같이 이른 시기에 유대인에게 보편화된 신앙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본서에 수록된 환상은 족장 에녹이 받은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본서가 주로 종말론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91-104 장은 훌륭한 부분으로 유대인의 지혜문학의 탁월한 예가 된다.

 

본서 의 서론부에서 에녹은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이의 환상을 본다.

“천 사들이 나에게 보여준 것을 그들로부터 설명을 들었으나 그것은 이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먼 훗날에 다가올 세대를 위한 것이다."

 

(1) 본서의 편집
찰스는 에녹 1서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1~36장(B.C. 170년 이 전),  37-71장 (B.C.94~64), 72-82장 (B. C. 110년경), 83-90장 (B.C.166~161), 91-105장(B.C.104~95).

찰스와는 달리 로울리(Rowley)는 본서 처음 부분의 연대를 다니엘서 저작 직후, 즉 마카비 이전 시대가 아닌 마카비 시대로 잡는다.

그리고 다른 장들 (85~90장, 91-105장)이 마카비 시대 이후이자 B.C. 63년 로마의 예루살렘 정복 이전으로 잡는다.

주간의 묵시록(the Apocalypse of Weeks)인 37~71장, 1~5장: 83-84장과 108장 12-36 장: 181-182장: 72~82장은 B.C. 150 이전으로 연대를 추정한다.

이 구절들은 희년서 4:17~19에 의하여 그 연대가 추산되고 있다.

 

(2) 본서의 내용
본서는 시편이나 다른 유대인 문헌들에서와 같이 마지막 편자에 의 하여 5개의 구분으로 정리되었다.

 

제1부(1~36장)는 주로 에녹이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 즉 사람의 딸들과 사랑에 빠진 천사들, 혹은 파수군들에 대한 심판과 그들을 위한 에녹의 중재에 대하여 서술한다.

하데스(지옥, Hades)에 대한 섬뜩한 묘사가 에녹 1서의 이 부분에서 발견된다.

 

제2부(37~71장)는 에녹이 하늘로 옮기워진 이야기와 함께 세가지 “비유”, 또는 묵시적 계시들이 나타난다.

 

제3부(72-87장)는 우선적으로 에녹에 계시된 별들의 운동의 신비, 천문학에 대한 일종의 논문을 제공한다. 

에녹은 미래 세대의 소식을 전하려는 목적으로 별들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모습과 그들의 항로를 자기 눈으로 목도한다.

 

제4부는 처음 두 부분에서 주장하는 노선과 동일하게 죄와 이스라엘의 고난을 다루고 있다.

에녹은 므두셀라에게 홍수와 천사의 타락, 지하에서의 그들에 대한 심판, 노아의 구원, 출애굽, 율법수여, 가나안 정복, 사사시대, 연합왕국의 수립, 성전건축, 분열된 두 왕국의 이야기, 북왕조의 멸망, 포로에 대한 자신의 환상을 말한다.

이어서 마카비가의 반란, 이방인의 강탈, 대심판의 때까지 천사들이 통치하는 네 기간이 따른다.

제4부의 마지막 부분은 새 예루살렘의 수립과 이방인의 회심, 의인이 부활, 메시야의 강림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 다.

 

제5부는 죄의 기원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없지만 주로 의인의 고난과 압제하는 죄인의 번영 문제에 할애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악을 고발하고, 죄인에 대한 화를 말하며, 의인에 대한 축복을 약속한다.

제5부 안에는 "주간의 묵시록" (93:1~10; 91: 12~19)의 옛 형태를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그 날에 주께서 땅의 아들들을 소환하여 그들이 지혜를 입증하도록 명하셨다.

그들에게 (그것을) 보이라.

이는 너희가 그들의 안내자이며 세상에 대한 보상 이기 때문이라.

나와 내 아들이 정직한 자의 길과 생명으로 그들을 하나 되게 하리니 너희가 화평을 누리며, 즐거워 하리라.

너희 정직 의 아들들이여. 아멘."

 

몇 개의 문단(37-71장: 72~82장: 108장 참조)이 아마도 독립적인 책들인 것 같으며 부분적으로 표제가 붙여 있다. 

어떤 문단들(6~11 장; 39: 12a:54:7-55:2;60장: 65: 1~69; 25장: 106-107장)은 원래 가 독립되었던 것이며, 

에녹의 작품이 아니라 노아의 전설로 다루어 지는데, 희년서 10:13과 21: 10에 언급된 노아서(Book of Noah)인 것 같다.

 

(3) 본서의 저자와 원어
어떤 학자들은 너무 좁은 의미에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 지만 

본서의 확실한 저자는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고 생각된다. 

82:2 에서 독신주의가 찬양된다는 사실이 본서가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았 다는 증거로 취해졌지만 결혼의 반대가 에세네파의 근본교리는 아닌 것이다.

 

본서의 원어는 히브리어이며 작은 부분만이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에 의하여 헬라어로 번역되었으며,

본서를 보존하는 유일한 번역본인 에디오피아어 번역은 헬라어에서 나왔 다.

A.D. 8세기의 연대기 학자(Chronographer)인 시빌루스(George Synellus)는
 

에녹서에서 상당한 인용을 하였으며, 이 단편들에서 뽑은 발췌문을 보존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학자들은 본서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다. 

18세기의 마지막 4반세기에 에디오피아의 여행가인 브루스(Bruce)가

본서의 에디오피아 번역본 세권을 유럽에 전하였다.

에디오피아 교회에서 에녹서는 정경으로 간주되었으며 지금까지 보존되 었다.

 

 

11. 솔로몬의 시편

 

솔로몬의 시편(The Psalms of Solomon)은 18편의 시를 모은 책으로 대단한 종교적 발전의 시기에 살았던 경건한 유대인의 영혼을 이해하고자 열망하는 학자들에게 매우 흥미있는 시편이다. 

어떤 학자는 그 것들을 "바리새인의 시편"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초대교회의 정경 목록 가운데 어떤 것은 18편의 "솔로몬의 시편"을 수록하고 있다. 

그 것들은 시편의 시가들을 연상케 하는 양식과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들 가운데 많은 시들이 정경의 시편처럼 표제를 갖고 있다.

“셀라”란 단어가 그 가운데서 두번 발견되어 의식용으로 사용되었음 을 보여준다.

파이퍼는 시들을 영지주의 작품인 피스티스 소피아(The Pistis Sophia)에서 발견되는 5편의 기독교적 송가(ode)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솔로몬의 시편에 대한 헬라어 사본과 영어 사본 이 라일(H.E.Ryle)과 제임스(M.R.James)에 의하여 출간되었다.

유명 한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원래부터 이 책을 포함하였다.

몇 명의 초기 목록 작성가들은 본서를 권위있는 종교서적으로 분류하였다.

솔로몬의 시편은 이차적 정경의 판정선을 오르내린 위경 가운데 하나였다.

 

다른 유대교와 기독교 문헌들과 마찬가지로 본서는 중세 동안 망각 속에 빠져버렸다.

회셀(Hoeschel)이 17세기 초에 아우그스부르그(Augus burg)의 도서관에서 어떤 사본들을 보게 되었고 세르다(della Cerda)는 그것을 1626년에 발간하였다.

그 때 이후로 동일한 작품의 헬라어 사본이 4번이나 더 발견되었으며 인쇄본의 근거로서 도움이 되었다.

 

(1) 본서의 목적
본서의 목적은 “율법을 경시하고” 사두개파와 제휴한 마카비가의 군주들의 최후를 통고하는 것이었다. 

이 시들은 이방 나라에서 유대인이 아닌 온 이방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는 유대인에게 강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언급은 폼페이에 대한 암시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시편 2편에서 예루살렘을 정복한 용이 애굽의 해안에서 자멸하였다는 글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2) 본서의 내용
솔로몬의 시편은 정경에 속한 시편이 보여주는 양식을 따라 가깝게 모방되어 있다. 

 

시편의 제1편은 선전포고를 선언하지만 주로 위선자의 비난을 다루고 있다.

제2편은 예루살렘의 포위공격을 묘사하며, 그들에게 닥친 역경과 징계가 매우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애굽의 모래 위에서 벌어진 정복자의 죽음에 대한 묘사로 끝맺는다.

제3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지은 한 편의 감사의 시이다.

제4편 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대적에게 발하셨던 위선자에 대한 비 난을 강하게 재현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제5편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 하는 기도이다.

제6편은 주로 의인에 대한 축복을 다루고 있다.

제7 편에는 역경의 시기에 여호와께서 장막을 그들 가운데서 옮기지 않기 를 구하는 기도가 있다.

제8편은 예루살렘의 포위상황을 묘사하며 그 성읍의 죄악을 비난한다.

제9편에서 포로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죄를 간구한다.

제10편은 주님의 채찍을 취하는 자가 얼마나 복된가 를 서술한다.

제11편은 포로에서의 귀환을 노래한다.

제12편은 정경 시편 가운데 120편의 한 연(stanza)과 흡사하다.

제13편은 그 주제가 외인에 대한 축복이다. 그 다음의 시는 동일한 감동을 갖는다.

제15 편은 "내가 환란을 당할 때 주를 불렀나이다"라고 주장함으로 시작한다.

제16편은 옛 청교도의 체험을 느끼게 한다. 이전의 16편에 달하는 시편들은 메시야에 대한 암시는 전혀 없으나 메시야의 왕국을 가 르치고 있다.

그러나 제17편은 성경 형성 이전의 유대교 문학에서 발 견되는 주된 메시야적 구절들 가운데 하나로 믿어지는 것을 수록하고 있다.
제18편의 주된 관심은 기독론에 있다.

 

메시야는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하스모니안 왕가 몰락 이후에 로마군을 축출하실 것이라고 묘사 한다.

메시야의 통치는 지혜로우며, 거룩하고, 의로우며, 영적인 것이다.

또한 의인의 부활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그는 메시야 왕국의 물질적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영생을 위한 것이다.

 

파이퍼는 솔로몬의 시편에 나타난 교훈들은 바리새파 신학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편에 나오는 사람들은 주를 경외하는 의인과, 하스모니안 왕가와 바리새파 고관들로 지칭되는 죄인, 혹은 행악자로 구분된다.

파이퍼에 의하면 다음의 진술이 초기 바리새파의 교훈에 대한 요약이 될 것이라 한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 자신의 선택과 능력에 예속되나이다. 

선행이나 악행은 우리 자신의 행사에 의거하며 당신은 당신의 의로우심으로 인간에게 찾아오시나이다. 

의를 행하는 자는 주님과 함께 삶을 영위케 하며 악을 행하는 자는 그의 생명을 파멸시키나이다(9:7~9). 

 

(3) 본서의 원어
솔로몬의 시편의 원어는 히브리어이지만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그 사본은 헬라어 사본에서만 구할 수 있다(여러 사본들이 있다).

헬라어 사본이 라틴어로 번역되었 다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1909년 해리스(J. Rennel Harris)는 그의 솔로몬의 송가와 시편』(Odes and Psalms of Solomon)에서 수리아어 번역 을 간행하였다.

 

(4) 본서의 저작 연대
솔로몬의 시편이 폼페이의 침략과 B.C. 48년의 애굽에서의 죽음, B.C.63년의 팔레스틴 정복 이전의 다른 사건들에 대한 언급을 수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편들의 기원 연대로서 B.C. 1세기의 마지막 4 반세기로 생각된다. 

아마도 이 시편들은 B.C. 63년에서 40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파이퍼는 양식상의 통실성이 이 18편의 시 모두가

동일한 저자에 의하여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고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

 

 

12. 무녀의 신탁서

 

기독교 시대의 시작 이전에 무녀의 신탁서(Sibylline Oracles)에 대한 다수의 결집이 있었다. 

헬라와 로마의 저술가들은 무녀(Sibyls)에 대 한 신앙을 유포시켰다. 

“Sibyl”이란 단어는 “신의 협의체”(the Coun sel of God)를 의미한다. 

그러나 고전적 의미에서의 sibyl은 신의 영감 을 받아 예언하는 여인으로 동굴에 거하는 자이다. 

헬라인들 가운데 서 통용된 sibylla는 노아의 사위가 되었던, 호머(Homer) 시대 이전에 유포된 소설의 등장인물이었다. 

무녀의 신탁서는 그리스적 환경 가운데 특별히 그것들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예언의 은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여인들이 이태리에서 바벨론에 이르는 각기 다른 곳에 거주하였다.

소아시아의 에리드래(Erythrae)가 무녀의 원조가 기거하던 곳이라는 주장도 있다.

초기 로마 역사에서 쿠마인(Cumaean) 무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로마의 10인 위원회(decemvirs)가 열심히 추적하였던 그녀의 신탁서는 B.C. 83년 쥬피터(Jupiter) 신전에서 파괴되었다.

이오니아(Ionia) 에서 새로운 신탁서가 출현했으나 그것 역시 파괴되었다.

유명한 신탁서가 쥬피터 신전(the Capitol)의 화재로 불타버리자 슐라(Sulla)는 이태리와 그리스를 뒤지며 불타버린 신탁서의 내용을 대신할 신탁서를 찾았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에 어거스틴은 무녀의 신탁서를 추적하는 일을 재개하였다.

 

애굽에서 또 다른 무녀의 신탁의 결집서가 출현하였으며 그것은 최초로 로마의 신탁서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B.C. 3세기에 이르러서 많은 유대인들이 무녀의 신탁서와 친숙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이교의 신탁서의 핵심을 취하여 모세의 율법을 삽입, 수정함으로써 이 이교의 책들 속에 모세의 유일신교를 복합시켰다.

 

B.C. 150년 경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어떤 유대인이 6개의 기둥으로 (hexameter line) 편집된 한권의 무녀 신탁서집을 출간하였는데 비유대인들에게 유대교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헤시오드와 호머의 시가 사용 한 서사시적 용어를 구사하였다.

이 신탁서들은 에리드래의 옛 무녀가 예언한 권위있는 신탁으로 간주되었다.

이방인들은 그들의 신화에 대한 언급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역사에 대한 암시가 담긴 헥사메타에 기꺼이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1) 본서의 목적
무녀의 신탁서는 전도의 목적으로 유대인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이 시들에서 유대교가 찬양되며 유대인의 미래와 영고성쇠가 예언되어 있다. 

유대인의 무녀 신탁서들이 유대교로 개종시키는데 얼마만큼 성공을 거두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것들이 대단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는 사실은 믿을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에 의하여 시작된 무녀의 신탁서들은 그리스 도인들에 의하여 계속 사용되어졌다. 

무녀의 신탁서 전체는 15권으로 믿어지며, 제9, 10, 15권은 남아 있지 않다. 

제3권의 일부는 B.C.2 세기에 기록되었으며 제4권과 5권은 비록 유대인 저자에 의하여 기록 되었을지라도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가필하였다. 

전 15권의 무녀의 신탁서 가운데서 제2, 4, 5권은 구약의 외경을 언급하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현재 출간된 신탁서는 각기 다른 시대에 기록된 단편들을 집대성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3권은 독자들에게 알렉산드리아 유대인이 유대인의 신앙을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채용한 방법을 이해하게 하는데 가장 적절한 책이다.

제3권은 유대의 역사를 찬양한 외 에도 메시야의 때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2) 본서의 내용
제1권은 창조에서 시작하여 노아가 방주에서 나올 때까지의 인간의 역사를 언급한다. 

이어서 빵의 이적과 십자형, 유대인의 멸망을 묘사 하는 그리스도의 인생여정을 서술한다. 

본서에 따르면 하데스(지옥)가 아담으로부터 유래된다 [톰슨].

에녹서와 마찬가지로 본서는 거룩 한 파수군과, 구원의 하나님(Theos Soter)을 통하여 완성될 것 같은 계산표를 언급한다.

 

제2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 강화의 형식을 따 르며 본서에서는 이 내용이 주제가 되어 반영되고 있다.

에녹서와 같이 여기서도 미가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이란 4명의 천사장들이 소개된다.

 

제3권은 이전 것보다 더 큰 책이다. 여기서는 혼합된 자료들이 큰 무리를 이룬다.

다수의 역사적 언급이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바벨탑의 건립, 솔로몬 왕국의 설립, 타국들에게 역사적 중요성 을 제시하는 사건들이 있다.

로마에 의한 애굽의 정복, 트로이 함락, 알렉산더 대제의 정복, 고레스 통치에 이르는 유대인의 역사 개관, 바벨론과 애굽, 곡, 마곡, 트로이, 리비아의 우상숭배의 죄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 일련의 신탁들이 다른 문헌보다 이른 시기에 언급되어 있다.

또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브리기아, 구브로, 헬라인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들과 메시야의 강림시 종결될 악한 세계에 대한 미래적 심판의 단언들이 나온다.

이 예언들을 통하여 유대인들은 하 나님의 율법에 충실한 백성으로서 칭송받으며, 반대로 이방인의 이교는 비난을 받고, 이교도가 유대교에 들어오도록 권한다.

 

제4권은 전적으로 유대적이다. 

앗수르에서 시작하여 알렉산더 대제에서 끝이 나는 위대한 제국들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고찰이 시도된다.

제5권은 줄리어스 씨저에서 안토니우스로 넘어가는 황제계승의 이야기를 전한다.

제6권은 십자가를 찬양하는 단 26행의 시로 되어 있다.

제7권은 단편적이다.

제8편은 각행의 첫자가 다음의 문구를 만 드는 답관체(acrostic)로 되어 있다.

IESOUS CHRISTOS THEOU HUIOS SOTER STAUROS(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주 십 자가).

 

(3) 본서의 연대
무녀의 신탁서에 편집된 다양한 책들의 연대는 각 책의 내용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여러 책들이 각기 다른 시기에 기록되었다.

제3 권은 제일 오래된 책으로서 B.C. 140년 경 기록되었다.

제4권은 6B.C.80년 경에, 제5권은 B.C. 130년 경에 기록되었다.

이 책들은 모두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이교에 대항하여 유대교를 위한 가장 강경하고 담대한 논쟁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저작한 책들은 보다 이후에 되었으며, A.D. 5세기까지 추정된다.

현재 전해지는 완전한 결집은 A.D. 6세기에 편집된 것이다.

 

 

13. 마카비 3서

 

외경의 목록에서 발견되는 소위 마카비 3서와 마카비 4서는 마카비 1서나 2서와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나 70인경의 사본들은 마카비 3 서와 4서를 외경 중의 하나로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마카비 3서 (3 Maccabees)는 마카비 일가와 관계가 전혀 없다. 

 

이 책은 불확실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소설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을 죽이고 그 신전에 들어가려고 한 애굽의 프톨레미 4세 (B.C.221-203)의 시도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자신이 참석한 가운데 신전이 봉헌되는 것을 유대인으로부터 거절당하나, 그 안에 들 어갔다가 하나님의 손에 매맞는다.

 

이러한 사실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학자들은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본서는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유대인을 징벌하려고 계획하여 시도하려다가 좌절하였던 프톨레미 7세(B.C. 145~117)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Against Apion, III. 5)에 근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파이퍼는 요세푸스의 책에 있는 이야기가 마카비 3서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본서의 저술을 유발시킨 동기는 유대인을 박해하려는 어떤 시도의 실패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카비 3서의 저작 동기는 에스더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한 것이다. 

즉, 유대인들이 과거에 하나님께 성실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 게 보호하셨는가를 상기시킴으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도덕적 성격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구성된 유대 민족과 그들의 종교에 대한 찬양 인 것이다.

 

(1) 본서의 저작 시기
왁스맨은 칼리굴라(Caligula)의 통치 하에서 유대인에 대한 최초의 박해가 발생하였던 A.D. 30년 경에 이 이야기가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마카비 3서가 칼리굴라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이론을 확증하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페 랄(Ferrar)은 문학적 유사성 때문에 함께 묶어서 생각할 수 있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와 마카비 2서가 기록된 B.C. 100년 경으로 추정한다.

하다스(Hadas)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의 특권들이 상실될 위 기에 처하였던 B.C. 25~24년에 본서가 기록됐다고 하는 것 같다. 

 

(2) 본서의 언어

마카비 3서의 원어는 헬라어였다. 

저자는 그의 어휘구사에 있어서 비범한 어휘와 뛰어난 수사적 기교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마카비 2서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책들에서 발견되는 양식상의 오류들이 여 기서도 발견된다.

토레이는 이러한 스타일이 "극도의 과장법이며...즐 겁게 읽혀질 수 있는 헬라어는 아니다”라고 묘사한다.

이러한 판정 에 아이스펠트(Eissfeldt)도 동조한다.

(3) 본서의 저자

본서의 저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알렉산드리아의 어떤 유대인 이었다. 

본서는 다니엘서와 외경인 그 부록을 인용하며 마카비 2서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본서는 역사적인 책으로 간주되는 반면에 이 기간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애굽 정복자들에 대한 감정과

B.C. 3~2 세기에 애굽에서 취해졌던 반-셈적 태도의 감정에

흥미로운 빛을 비추어준다는 점 때문에 아직도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14. 마카비 4서

 

(1) 다른 마카비서들과의 관계

본서의 책명은 마카비 일가에 대한 다른 세권의 책들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마카비 4서 (4 Maccabees)는 철학적이며 교훈적 문헌의 부류에 속한다. 

본서는 형식에 있어서는 헬라적 패턴을 지닌 일종의 강화, 혹은 비난의 책이 거나 "정욕을 극복하는 이성의 규율에 대한" 일종의 소책자이다.

 

마카비 4서의 저자는 대부분의 예화자료를 마카비 2서 6:18~7:42에 서 말해지는 유대인 순교자들의 이야기에서 빌려온다.

서두에서 저자는 경건한 이성 (reason)이 잘못된 동기와 정욕을 극복케 하는 절대적인 통치자임을 보여주고자 의도하였다고 말한다.

사람은 그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의에 모순되어서 발생되는 감정들까지도 제어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본서는 처음에는 “이성이 지닌 최상의 능력에 대하여”란 제목(제롬과 유세비우스의 어떤 책에는 이 이름 으로 나타난다)으로 명명되었다.

유세비우스의 책들에서 본서는 이 성의 최상권에 대하여』(On the Supremacy of Reason)란 책명으로 나타난 다.

그러나 마카비 4서란 명칭 역시 이른 시기에 발견된다.
저작의 목적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치세에 있었던 유대 국민의 순교가 보여준 영웅심을 회상함으로써 유대인 독자들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것인 듯하다.

 

(2) 본서의 내용
간략한 서론적 문단에서 저자는 자신이 논술하고자 제기한 질문의 범위(1:1~11)와 이 과정에서 그가 사용하려는 방법을 밝히고 있다.

본서는 다음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1) 주된 문제제기에 대한 철학적 토론(1:13~3:18),

(2) 순교자들의 이야기와 그로부터 배워야 할 교 훈들 (3:19~마지막).

 

마카비 2서 3~7장이 본서 2부의 기본적 자료 를 제공한다.
본서는 강론, 혹은 설교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청중에게 강연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1:17;2:4;13:10;18: 4). 

프로이덴탈 (Freudenthal)과 다른 학자들은 마카비 4서에서 기록된 유대인의 설교의 예를 보게 된다고 믿고 있다.

 

유대인 순교자들의 수난과 승리가 5장에서 시작되어 본서의 4분의 3에 걸쳐 다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마카비 3서 6:18~7:42의 확대 판이다. 

본서의 이 부분을 세분하면 이렇다. 

(1) 연로한 제사장 엘리 에셀에 대한 심문과 고문에 대한 이야기 (5:1~6:30), 

(2) 이이야기 에서 도출된 적용들 (6:31~7:23), 

(3) 일곱 청년들에 대한 고문 묘 사(8:1~12:19), 

(4) 청년들의 용감성에 대한 평가 (8:1~12:19), 

(5) 어머니가 겪는 수난과 절개에 대한 성찰(14:1~17:6), 

(6) 결론 (177-1823).

 

(3) 본서의 철학적 관점들
저자의 철학적 입장은 마카비 4서가 이성이 정욕을 지배해야 한다는 스토아 학파의 원리를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스토아적이다.

저자 는 철학의 대가로서 나타나며 (1:1), 사려깊은 독자라면 비록 저자가 종교적 교훈 제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을지라도 자신의 철학적 입장의 우수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그의 의도를 간파하게 된다.

절제, 극기, 공정, 강직의 4대 덕목에 대한 그의 교리는 스토아 철학 (Stoicism)에서 유래한 것이다.

모든 것을 통제하는 그의 이성은 하나님이 계시하던 율법, 즉 순교자들이 위하여 죽은 것과 동일한 율법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다.

1:15~18에 의하면 네 가지 주요 덕목은 단지 참 지혜의 형태들일 뿐이다.

스토아 철학과는 정반대로 정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심어주셨기 때문에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규제되어야 하는 것이다(1:16;3:5).

마카비 4서의 저자는 스토아 학파 보다는 더 온건하고 인간적이다.

 

인간은 네 가지 스토아적 덕목을 정당한 기준으로 설정함으로써

성격의 균형을 구하여야 한다는 그의 논조에 따라서 요셉과 야곱, 모세, 다윗의 생애를 예로 들고

이어서 안티오쿠스에 의한 엘리에셀과 일곱 형제, 그의 어머니의 순교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안티오쿠스와 그의 희생자들, 즉 노인과 일곱 형제와 그들의 어머니 사이에 주고받은 비극적인 대화를 재현시키는데, 

이 대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념이 참되다고 동조하게 만드는 이성의 힘을 가진 자로서 예증되고 있다.

일곱 형제는 의식적인 율법을 지켰다고 그들의 지지자들에 의하여 찬양된다.

천국에서의 영원하며 복된 생명을 확신하는 부활의 교리가 비록 중간사 시기의 규 범적인 교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여기서는 강조되고 있다.

본서에서는 의인의 순교가 그 세대의 죄를 대속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상도 발견되며 이것은 후에 탈무드에서도 채용된 사상이다.

 

(4) 본서의 저자
제롬과 다른 초대교회의 저술가들은 요세푸스가 마카비 4서의 저자 라고 한다. 

요세푸스의 작품들의 헬라어판에서 그는 마지막 장에 “플 라비우스 요세푸스의 강론, 혹은 이성의 최상권에 대하여"란 책명을 부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본서가 요세푸스의 작품과 양식과 방법에 있어서 유사하지 않다는 사실로 인하여 완전히 논박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저자가 바리새파에 속한 알렉산드리아의 한 유대인 이었으며 (4:7을 보라), 또한 헬라 철학의 영향이 분명히 예증하듯이 헬라파였다고 믿는다. 

마카비 4서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된 작품들에서 나타나며 마카비 4서의 저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록되었던 마카비 2서를 상당히 이용하고 있다.

 

(5) 본서의 언어
본서는 원래 헬라어로 기록되었으며 헬라 철학 용어들을 많이 사용 하고 있다. 

또한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사된 헬라어의 일반적인 특징들 을 보유하고 있다. 

마카비 4서는 주요한 사본들, 즉 S, A, V에서 발 견되며 암브로시우스 사본의 페쉬타 역본(수리아역)에서 발견된다.

옛 라틴 번역본들은 전혀 전해지고 있지 않다.

 

 

15. 필로크라테스에게 보내는 아리스테아스 편지

 

아리스테아스 편지(The Letter of Aristeas)는 프톨레미 필라델푸스 (Ptolemy Philadelphus, B.C.285-247)의 한 신하의 작품이라고 주장 하며, 

그의 이름은 아리스테아스로 자기 형제인 필로크라테스 (Philocrates)에게 저자의 동시대로 추정되는 사건들을 서술하고 있다. 

본 서신은 모세오경의 헬라어 번역본의 기원에 대하여 설명하려는 의도를 갖고 기술되었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서신의 진정성을 부정 하면서 본 서신은 작자미상이거나 남의 이름을 도용한 작품으로 단정 짓는다.

파이퍼는 아리스테아스 편지를 알렉산드리아인의 선전문학에 속한다고 분류한다.

즉, 그는 “이것의 이야기는 단지 유대인과 그들 의 종교를 찬미하려는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비록 모세오경이 B.C.. 250년 경에 헬라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의심할 이유는 없을지라도 여기서 이야기되는 사건들은 전설적이거나 허구적인 내용이다”라고 말한다. 

 

현대학자들은 비록 본 서신이 이방인의 작품으로 돌려지고 있을지 라도 그 목적은 유대인의 종교를 호의적인 색채로 묘사함으로써 이방인 속에 유대교의 세력을 진작시키려고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아리스테아스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집필된 현대의 소설에 비 교되어왔다.

필로크라테스에게 편지한 한 가지 이유는 정치적인 것으 로 정치범인 유대인들을 석방한 프톨레미의 관대한 처사를 찬양하는 것이다.

또 다른 목적은 종교적인 것인데 프톨레미 왕에 제시한 72개의 질문에 대한 설명과 함께 72명의 번역자들에 의하여 성취된 히브 리어 성경의 번역을 서술함으로써 이방인들의 눈에 유대교가 귀하게 비쳐 찬양케 하려는 것이었다.

 

비판학자들은 아리스테아스 편지의 저자가 유대교 역사상에서 진정 으로 놀라운 사건, 즉 히브리어 모세오경을 코이네  헬라어로 번역한 일을 이용하였다는데 동의한다. 

이방인의 유대교도의 개종의 측면에서 볼 때 70인경은 부패로 특징지워진 세계에서 개종자를 얻는 놀라운 수단이 되었다.

 

(1) 본서의 내용
아리스테아스 편지는 발신인의 형제인 필로크라테스에게 보내진 것이며 그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피와 함께 성격을 나눈 형제 이며 선을 추구함에 있어서 나와 하나인 형제.”

 

본 서신은 왕 프톨레미 필라멜푸스(B.C.285~247)가 유대인의 성경을 제외한 20만권의 장서를 그의 도서관에 비치하고 있는데 어떻게 유대인의 율법을 번역 할 것인지에 대한 도서관 담당자의 조언을 소개함으로 시작한다(1~8 절).

프톨레미는 아리스테아스를 대제사장 엘리에셀 (Eliezer)에게 파송하는 대사로 선정하여 유대인의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일단의 학자들을 보내주도록 부탁하려고 한다.

아리스테아스는 왕에게 그의 선왕이 변방의 파견대에 근무케 하기 위하여 팔레스틴에서 징병한 3천 명의 유대인을 석방하라고 제언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17~27절).

왕 은 유대인들의 석방에 찬동하여 그들을 소유한 군주들에게 일인당 20 드라크마로 계산하여 총 660달란트를 지불한다(28~40절).

 

엘리에셀은 프톨레미의 요청에 우호적으로 답변한다(41~50절). 

그 러자 왕은 성전 제사를 위하여 엘리에셀에게 100달란트의 금을 보내는데 그 내역은 거룩한 단(51~72절), 금과 은으로 된 기명들(73-78 절), 금 항아리들 (79~82절)이다.

 

이어서 성전과 성읍과 나라에 대한 매우 흥미있는 설명이 나오는데 (107~120절) 이것은 헤카테 (Hecate)의 분실된 작품에서 유래된 것으 로 믿어진다. 

대제사장이 선발한 번역자들이 애굽을 향하여 떠난다 (121~127절). 

뒤이어 음식에 대한 율법의 제정을 언급하면서 풍유적인 방법으로 정당화시킨다 (128~171절).

프톨레미는 유대의 장로들에 게 대단한 경의를 표시하며 (172~186절), 그들에게 연속 7일간의 연회를 베풀어주고, 팔레스틴에서 온 이들 지도자들이 묻는 72가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187-200절).

 

그 주간이 끝나자 장로들은 바로스(Pharos) 섬에 체류하면서 매일 작업하여 72일 만에 그들의 번역을 마친다 (201~311절). 

이 번역본이 유대인 군중들 앞에서 낭독되고 그들이 그 정확성을 인정하였다(312 ~317절). 

장차 이 번역성경에 대하여 부정된 일을 하는 자에게는 형이 부과되게 되었다.

왕은 대단히 만족하여 그 두루마리들을 받고는 예루살렘으로 번역자들을 귀국시키면서 값비싼 예물들을 하사한다. (318-322절).

 

(2) 본 서신에 대한 비평적 평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첨가된 이 이야기는 그 원래의 형태대로 요세푸스의 작품에 수록되었다. 

아리스테아스 편지에 실린 이야기가 유대인들에 의하여 수세대에 걸쳐 참된 내용으로 받아들여져 이 헬라어 역본은 70인경으로 불리워졌다. 

그 이유는 나머지 2명은 선발된 번역진의 지도자들에 지나지 않아 수에는 포함되 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테아스 편지를 비평적으로 평가한 최초의 유명한 학자는 호디(Humphrey Hody)였으며,

18세기 옥스포드의 헬라어 교수였던 레기우스(Regius)는 70인경이 아리스테아스 편지가 말하는 대로 왕의 명령에 의하여 번역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요청에 부응하여 번역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세기 말에는 학자들이 아리스테아스의 것으 로 알려진 작품을 B.C. 150~100년에 기원된 다른 저자의 작품으로 규정짓는 경향이 짙었다.

최근에 미참(H.G.Meecham)은 이 서신에 대하여 보다 호의적인 평가를 한다.

파피루스의 해독은 아리스테아스 편지의 허구성에 대한 호디의 비평을 수정케 하는데,

즉 그 안에서 저자는 알렉산드리아의 관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참은 본 서신이 프톨레미 왕조 후기에 쓰여진 유대인 변증서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하다스(Moses Hadas)는 본서의 언어용법에서 B.C. 150년 이후 의 연대를 연상케 할 것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3) 본서의 저작 연대
아리스테아스 편지의 저작 연대는 B.C. 200년에서 A.D. 33년 사이의 어느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쉬러(Schürer)는 B.C. 200년 경으로 추정하여 권위있는 학자들 가운데 가장 이른 연대를 제시하며,

반면 에 어떤 독일학자들은 A.D. 33년에 저술되었다고 믿고 있다.

아리스 테아스 편지의 표준판 중의 하나를 간행한 벤트란트(Wendland) 박사 는 이것이 B.C. 96~93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찰스는 본 서신의 대부분이 B.C.170~130년의 시기에 유래되었으며 그 보다 조금 후에 확대되어 편집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벤첸은 언어 비교학에 근거하여 본서가 B.C. 145~100년의 기간에 기록된 것 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