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배신감은 아마도 기업 오너들이 한평생 기업을 일궈 가면서 임원, 직원들에게 느끼는 가장 핵심적인 감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창업 당시 함께 했던 동료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직원들과 임원들까지 그 상처의 크기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을 것이다.
분명히 믿었던 사람이었고, 나에게 받았던 은혜를 생각하면 도저히 나에게 이럴 수가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한두번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오너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결국 자녀를 경영 일선에 등장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크리스천 오너들은 더 힘들지도 모른다.
성경 말씀에서 워낙 용서가 강조되고 있고, 예수님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크리스천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예배를 드리며, 또는 기도를 하면서 용서의 마음이 생기고 치유가됐다 싶으면서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그때의 감정과 억울함, 배신감들이 튀어나오면서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람을 색안경 끼고 대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시도해야 된다.
말씀에 굳이 용서를 언급하시면서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는 숫자로 표현하신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 번에 해결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마음이 흔들리고 화가 올라올 때는 다시 입술로 용서의 기도를 드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했을 때 공의의 하나님께서 비로소 나의 억울함과 그들의 불의함을 갚아주시지 않겠는가.
심판은 주님께 달려 있고 종된 나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뿐이다.
하지만 용서의 문제가 여기서 끝은 아니다.
오너 본인이 경험한 배신의 사건들이 현재 구성원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으로 인해 지금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고 신뢰하지 않고,
그들 역시 예전의 그 사람들처럼 언젠가 나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전장치를 만들려고 할지도 모른다.
보통 그런 안전장치는 회사의 규정, 인사제도, 조직개편, 업무분장 등을 통해 만들어 간다.
좋은 방법이다.
제도와 규정을 통해 구성원 들의 예상치 못한 불의한 행동들에 대해 일부는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내가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회사가 시스템에 의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많은 오너들의 바람일 것이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시스템에 의해 자연히 적발, 검증되고 조치 되는 구조를 원할 것이다.
그것 역시 좋다.
오너 본인이 더 사업에 집 중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다만, 크리스천 오너라고 하면 여기가 끝은 아닐 것 같다.
바로 사람을 대하는 오너 본인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그것이 핵심이다.
내가 직원들을 어떠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대하는지가 중요 하다.
나의 사업을 위해, 나의 성공을 위해 내가 주는 월급을 받고 기꺼이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사람으로만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을 온전히 인격적으로 대하고 바라보고 있는지,
내가 사랑을 실천해야 할 이웃으로 대하고 있는지,
그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오너 본인이 보여주고 있는지,
이를 실천하는 것이 어쩌면 더 본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회사 따로 하나님 따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금 그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셨을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는가?
왜 나의 사업체에 이 사람들을 오게 해주셨을까?
회사는 일을 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지만,
그 과정에서 말씀을 실천해야 하는 것도 크리스천 오너가 지켜야 할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용서는 내가 해야 할 몫이고, 심판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꼭 명심했으면 한다.
그리고 혹여나 나에게 배신감과 상처를 줬던 그 사람들의 안 좋은 소식이 나중에 들리더라도
속으로 통쾌하게 여기지는 말았으면 한다.
나의 어려운 용서에 대한 응답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일하심에 대해 감사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자.
만일 그들이 용서를 구하고 돌아오고 싶다고 해도 반드시 받아 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받아주게 되면 지금 있는 구성원들의 조직 분위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용서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다고, 앞으로 다른 곳에서 성실하게 일하면서 잘 성장 하길 바라는 응원만 해줘도 충분할 것이다.
배신에 대해 입술로 죄를 짓지 말고, 입술로 기꺼이 용서하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란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장 21~22절)
출처 : 크리스천 경영인과 직장인(지은이 :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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