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1부 : 01. 과학, 신앙의 적인가, 동지인가

w.j.lee 2024. 5. 31. 10:10

제1부 신앙에 대한 과학의 도전

 

01. 과학, 신앙의 적인가, 동지인가

 

과학과 종교의 본질

 

과학과 종교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두 가지 가장 뚜렷 한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도 생물학적으로는 동물의 일종이며, 사회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기원을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족인 영장류에게서 상당수 찾아내었다.

그러나 어떤 동물도 종교를 가지지 않으며, 과학을 발달시키지도 않았다.

즉 과학과 종교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곧 과학과 종교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과 종교의 담론에서 과학은 자연과학의 모든 분야를 포함 한다. 

본격적인 과학은 근대 유럽에서 출현하였지만, 그 기원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기원전 5세기 경의 탈레스(Thales, BCE 624-BCE 546?)를 필두로 한 일군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에게 공을 돌린다. 

그 이유는 이들이 눈에 드러나는 사물의 복잡한 현상 너머에 그것을 지배하는 어떤 원리가 존재하리라 가정하고, 그것을 찾으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과 시도는 곧 가설과 실험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본질과 일맥상통한다.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제시한 세계의 근원은 각각 달랐고,

그 방법들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정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지만,

이들이 진리를 추구한 방식은 오늘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이론으로 정립해가는 현대과학의 방법론과 본질적으로 일치한다.

그래서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을 과학 정신 의 선구자들로 인정하기도 한다.

 

과학은 자연의 질서와 신비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과학은 우주의 기원과 구조에 대해서,

생명의 탄생과 진화의 역사에 대해서,

의식의 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많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렇듯 과학은 우주와 자연과 생명 및 정신 현상 속에서 근본적인 원리를 찾는 인간의 독특한 행위이다.

 

과학의 영역을 가장 기초적인 분야부터 위계적으로 살펴보면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신경과학(인지과학, 뇌과학) 등이 있다.

이러한 과학의 진보로 인하여 우리는 우주와 생명 그리고 정신현상에 대한 심오한 이해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적 설명은 필연적으로 종교와의 대화를 불러오게 되었다.

왜냐하면 종교는 오래 전부터 인간이 우주와 생명 그리고 마음에 관해 나름대로 설명해온 체계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 세상의 기원이 무엇인지,

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이 왜 움직이는지,

저 바다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는지,

이토록 수많은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왔으며

이러한 이야기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졌고, 마침내 종교의 경전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과학이 이룩한 새로운 발견으로 인하여 이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이에 비추어 오래된 이야기들 속에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성찰해야만 한다.

 

이렇듯 과학의 맞은편에는 종교가 있다. 종교의 영역에는 기독교(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성공회, 다양한 개신교 교단),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도교 등 각 문화권마다 나름의 종교가 있다.

종교는 신, 절대자, 혹은 궁극적 존재를 추구한다.

비록 어떤 종교는 인격적인 창조주(Personal God)에 대한 개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존재나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신이나 궁극적 존재는 사랑과 자비, 생명과 평화, 정의와 평등, 헌신과 봉사, 선함과 아름다움 등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진리를 따르도록 가르친다.

따라서 종교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진리로 이끌어간다.

결국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둘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 적인가, 동지인가

 

흔히 종교와 과학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대중적인 믿음에는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큰 몫을 하였는데, 

이와 관련한 두 가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갈릴레이 재판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론 논쟁이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갈릴레이의 지동설(태양중심설)을 탄압한 것은 유명한 이 야기인데,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번복하라는 판결을 받고 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전설은 사실 여부 와 관계없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갈릴레이의 재판을 둘러싼 갈등에는 단순히 진리와 독선의 대결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요소가 개입 되어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

 

또 하나 유명한 진화론 논쟁은 다윈의 진화론이 출간된지 1년 뒤인 1860년 옥스퍼드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에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그의 열성적 지지자인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ely, 1825-1895)의 진화론에 관한 발표가 끝나자,

당시 옥스퍼드 교구의 주교이자 명망 있는 과학자로서 권위 있는 이 과학자모임을 이끌던 사무엘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1805-1873)가 헉슬리에게 조롱하는 말투로

"당신 말대로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면, 당신의 원숭이 조상이 부계인가, 모계인가?" 라고 질문했다.

좌중의 웃음과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헉슬리는 득의만면한 태도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고귀한 선물인 지성을 이런 식으로 잘못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라면, 

자신은 기꺼이 원숭이 조상을 택하겠노라고 응수했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과학과 종교 간의 불화가 표출된 수많은 이야기가 떠 돌고 있다. 

저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1935년에 출판한 「종교와 과학」 이란 책 제목 아래에 '독단과 이성의 투쟁사'란 부제를 달았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여기서 독단은 종교를, 이성은 과학을 가리킨다.

나아가 두 영역의 만남을 "종교와 과학의 갈등의 역사" 또는 "기독교 왕국에서의 과학과 신학의 전쟁의 역사"로 표현한 책들이 서구 지식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책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과학과 종교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경청해야 할 다른 목소리도 있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는

"종교의 원리는 영원하지만, 그 표현방식은 과학의 발전에 따라 수정되어가야 하며, 그렇게 될 때 과학은 종교에 유익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표현 역시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학에 맞춰 조화롭게 개정해나가야 할 필요성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2015년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80-1952)이 일반상대성이론(Allgemcine Relativitätstheorie, Theory of General Relativity)을 발견한지 100주년이 되던 해인데,

일반상대성이론의 발견을 통해 우주의 기원과 구조, 진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아인슈타인은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Blind) 이며,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Lame)다"라고 말했다. 

이는 종교와 과학이 상호보완적 관계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초기 교회(Early Christianity)가 그리스 철학과의 대화를 통해 발전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언제나 신학은 당대의 지배적인 사상으로부터의 도전과 이에 대한 웅전을 통해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오늘날 기독교 신학에서 과학과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난 1세기 동안 신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최근의 대표적인 신학들이 과학과의 교섭 및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20세기의 주도적인 서구 신학 사조들이라 할 수 있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신정통주의 신학이나,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의 실존주의 신학 모두 각각 '계시' 또는 '실존'이라는 개념에 집착함으로써 신학을 과학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고립시켜 왔었다.

 

또한 서구 신학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제3세계 신학도 자연과학에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미의 해방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 그리고 아시아 신학이나 종교 간 대화 신학을 비롯한 기타 상황신학도

민중이 겪는 억압과 고통스런 상황의 절박성 내지는 종교문화 현상에만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현대 과학이 이룩한 새로운 발견과 영감에 관한 적극적인 성찰을 담아낼 수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0세기 후반부터 과학과 신학, 또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학제적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에 몰두한 몇몇 학자들이 있는데 그 맨 앞에 섰던 이가 이안 바버(Lan Barbour, 1923-2013)다.

그는 이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학자로 평가된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