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1부 : 03. 우주론과 기독교

w.j.lee 2024. 5. 31. 10:08

제1부 신앙에 대한 과학의 도전

 

03. 우주론과 기독교

 

우주론

 

먼 옛날 인간이 지성을 갖게 되었을 때부터 인간에게는 두 가지 궁극적인 질문이 있었다.

하나는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라는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은 자신의 존재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세계에 관한 질문이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우주론이다.

 

아주 오래전, 호기심에 가득찬 어린아이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다 설명해주시는 할아버지에게 마구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할아버지,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요?

저 바다 건너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나요?

저 하늘에 빛나는 달과 별은 언제 생겼을까요?

저 붉은 해는 저녁에 서쪽 바다 너머로 사라졌다가 어떻게 아침이면 동산 위로 떠오를 수 있죠?" 

 

이러한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이렇듯 우주론은 우주의 기원과 구조, 그리고 시작과 종말에 대한 설명을 다룬다. 

우주론이 소위 '먹고사는 데' 어떤 보탬이 되지는 않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이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해왔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에게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이 생래적으로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정신을 잃었다가 얼마 후 깨어나 보니 자신이 어딘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 뉘여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제일 먼저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가?"라고 물을 것이며,

그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설명을 듣기 전에는 결코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주론은 우리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지적 욕구다.

 

오랫동안 인류는 우주론에 대한 설명을 종교를 통해서 듣고자 했다. 

서구의 경우 근대과학의 출현 이전까지 진리의 교도권(Magisterium)은 교회 혹은 교황에게 속해 있었다.

그것은 구약성서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에 근거해 성립된 우주론으로서 소수의 성직자와 수도자, 학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근대과학의 출현 이후, 갈릴레이 재판으로 대표되듯이,

전통 종교와 과학이 충돌한 다음부터 우주론에 대한 탐구는 주로 과학자들의 영역이 되었다.

반면 종교의 교도권은 주로 인간의 영혼에 국한되었다.

이러한 종교와 과학의 독립적 관계가 양자의 충돌을 막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분리가 심화되었다.

 

근대 이전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전문분야를 막론하고 당대의 우주론에 대한 지식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상식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상당수의 인문학자들은 심지어 박사학위 과정을 마쳤다 하더라도 현대의 우주론에 관해서는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지식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한 실정이다.

 

신학자나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성서는 세계의 창조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교회에서 우주나 창조를 주제로 하는 설교는 좀처럼 듣기 어렵다.

신학자나 목회자들도 이 시대의 지식인이 분명하지만 현대과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설교에서 다루기가 곤란한 것이다.

일찍이 과정철학을 창시한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는 “종교의 원리는 영원한 것이지만, 그러한 원리를 표현 하는 방식은 지속적인 발전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과학이 새롭게 발견한 지식에 따라 종교의 표현방식을 수정해나간다면 과학은 종교에 유익하며, 종교가 설파하는 진리도 보다 더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주론의 변천과정과 신학적 의미

 

고대 근동의 우주론과 창조신앙
구약성서 창세기나 시편, 욥기에 묘사된 우주의 기원과 구조에 대한 구절들은 

바빌로니아 제국에서 유행한 고대 근동의 창조신화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리아 제국이나 바빌로니아 제국 등 고대 근동 문화권의 우주론에 따르면

땅(대륙)의 뿌리는 마치 지붕을 받치는 기둥처럼 바다 깊이 박혀 있고, 

바닷물은 신이 정한 지경까지만 머무르며, 

하늘에는 궁창이 있어 해와 달과 별 들이 운행하며 궁창 너머에는 바다와 같은 물이 가득 차있는데 그 궁창의 창문을 열면 비와 눈이 쏟아진다고 믿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고대 세계의 창조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에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서의 창세기 1장에서 2:4까지의 본문이 그 문학적 형식에 있어 바빌로니아의 마르두크 창조신화와 상당한 유사점을 갖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서의 권위를 떨어뜨리거나 모독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문학적 형식은 비슷할지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 즉 신학적 관점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흥 성했던 아시리아 제국이나 바빌로니아 제국의 창조신화는 세부사항에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여러 신들의 전쟁과 그 결과로 인해 세계가 탄생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의 구조는 주로 혼돈의 여신과 정복자 남신이 등장하고, 남신이 승리하여 혼돈의 여신의 몸을 재료 삼아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설화에 따르면 옛날에 하늘에서 신들 간에 전쟁이 벌어졌고

젊은 남성신 마르두크(Marduk)가 티아마트(Tiamat) 와 압수(Apsu) 등 다른 신들을 죽여

그 시체를 펼쳐놓음으로써 이 세계가 탄생하였다고 전한다.

그 신들의 버려진 몸 덩어리들이 산과 언덕이 되고, 핏줄을 꺼내 놓으니 강이 되었으며, 피가 흘러 고여 호수나 바다가 되었다.

 

이와 달리 구약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빛이 생겨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혼돈 또는 무로부터 이 세상이 시작되었고, 

그 뒤로 6일 동안에 걸쳐 각각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 세계에 존재하는 피조물들이 만들어졌다고 기록한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차례대로 지어내는 모습을 상당히 조직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특히 매번 창조행위를 마칠 때마다 "보기에 참 좋았다"고 감탄하신다.

이는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이 세계가 죽은 신의 몸으로서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과 반대로

창세기에서는 이 세계가 하나님의 선한 창조의 결과이고 축복을 받은 장소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인간에 대한 관점의 혁명적 전환이다.

고대 근동지방의 창조신화에서 인간은 신들의 몸속에서 생겨난 벌레들과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적나라하게 말 하자면 마치 시체 속에서 구더기가 기어 나오듯이 인간은 신의 몸속에서 생겨난 벌레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이 지배담론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이란 그저 노예처럼 평생 신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되어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고대제국에서 황제나 왕은 신의 대리자였고,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이나 권리는 전혀 말할 수 없었으며,

단지 신의 지상세계의 대리자인 황제와 왕을 위해 평생을 노예로 살아야 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런 신화의 사회적·정치적 함의를 성찰해보면 창세기 1장의 말씀은 그야말로 놀라운 인권선언이며,

그 핵심은 인간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을 두렵게 하는 자연물은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의 불과하며,

인간이야말로 그 어떤 피조물의 형상으로 만든 우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언이 나오게 된 맥락은 바로 바빌로니아 포로기다.

이러한 인권선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북으로 갈라져 반목하면서 부자들의 번제와 돈 냄새로 구역질나는 예배를 드리는 대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예언자들의 말씀을 무시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강대국의 포로로 끌려와 바빌로니아 강가에서 고된 노역에 지친 몸으로 눈물 젖은 빵을 베어 물면서 깊고 깊은 한탄 가운데 깨달은 내용이다.

 

그리고 이러한 창세기의 인권선언은 출애굽기의 십계명,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의해 또다시 명쾌하게 드러난다.

십계명의 첫 구절들은 종교 다원주의를 반대하는 구절이라기보다는 우상을 내걸고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어 노동력을 착취하는 이집트왕과 지배 권력에 대한 반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적절할 것이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이야기들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아마도 파라오와 그 사제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러 광야로 나가겠다"는 모세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신(우상)들은 다 제국의 신전에 모셔져 있고, 만일 히브리인들이 그 외에 다른 신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신상을 만들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가 타협할 수 없었던 이유는 파라오와 모세의 대결이 단순히 어떤 신을 섬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신학적 세계관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충돌하는 두 신학적 세계관의 차이는 인간에 대한 가치, 신과 인간의 관계, 신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며,

이러한 성서의 이야기는 우주론이 결국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창세기의 구절들이 성서 본문으로 편집되던 상황인 바빌로니아 포로기로부터 자그마치 두 밀레니엄하고도 또 5백여 년이 더 지났지만 이러한 신학적 세계관의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점 에서 성서는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외면하면서 단순히 창세기 구절이 고대 제국의 창조신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종교다원주의라면서 불쾌하게 여기는 낮은 수준의 신앙을 이제는 극복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오늘날,

특히 그 어느 사회보다도 자본의 논리에 맨몸으로 노출된 한국 사회는 모든 영역에서 돈과 인간중 무엇을 우선시할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인간보다 돈을 우선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살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바로 이러한 우리의 선택에 의해 빚어진 사건이다.

 

그런 데 문제는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에 대다수의 교회들이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편승해 맘몬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쓰라린 역사를 경험해야 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앞날에 어떤 시련이 다가올지 두렵기만 하다.

 

창세기와 구약성서 여기저기에 묘사된 고대 근동 시대의 우주론이 그리는 세계의 모습은 오늘날의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의 스케일에 있어 상당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마치 동심을 간직한 어떤 설치예술가가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짜내 만든 아기자기한 신화적 세계상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신 화적 우주론의 한계는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이 획득한 세계에 대한 지식과 상상력의 한계이지, 신학적 한계는 결코 아니다.

성서가 그리는 세계에 대한 모습은 현대과학의 우주론에 의해 수정되어야 하지만,

그 구절에 담긴 신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미심장한 통찰은

오늘날에도 계속 되새기면서 이 시대 속에 구현해야 할 영원한 진리다.

 

이것을 반대로 하고 있는 접근, 즉 세계의 모습에 대한 기록은 문자적으로 고집하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는 눈감아 버리는 성서 문자주의(Biblical Literalism)에 기반한 창조과학적 접근은

현대의 기독교인이 경계해야 할 믿음의 방식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과 기독교 신앙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변방에 불과한 팔레스타인 지방에 뿌리를 둔 유대교의 한 분파를 넘어서

로마 제국의 공인을 받아 국교가 되고 유럽 대부분 지역이 기독교 왕국이 되는

중세 시대를 지배한 것은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이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 CE 83-168?)는

헬레니즘 문명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고대 점성술과 천문학을 집대성하여 『알마게스트』Almagest라는 책을 펴냈다.

그의 천문학은 당시로서는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우주론으로 인정받았으며,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자그마치 1,400여 년 동안 서구를 지배한 우주론이 되었다.

 

아프리카 북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설한 도시로서,

기원전 300년부터 약 600년 동안 당시 인류가 알고 있던 지식과 기술이 모두 집결된 위대한 지성의 도시였다.

고대 문명을 모두 접촉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 장점과 아울러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지녔던 왕성한 호기심과 개방성,

그리고 그가 보장한 학문에 대한 최대한의 자유로 인해, 이 도시는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및 근동 아시아의 모든 지적 유산과 문화적 다양성을 품을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는 고대 수메르 문명이 남긴 토판에서부터 이집트의 파피루스 책까지,

그리고 탈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책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 이르기까지,

보유 장서만도 무려 50만 권(어떤 자료들은 백만, 혹은 2백만 권이라고 소개한다)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자료 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이미 기원 전 340년에 월식과 일식 현상,

그리고 위도에 따라 북극성의 각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증거로 제시하여

지구가 편평한 판이 아니라 둥근 구체라는 것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천구에 관하여』 IIepi ouparyou. De Caelo et Mundo 를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수학에서 유용한 유클리드의 기하학,

언어의 품사를 정의하여 수사학과 논리학의 기초를 확립한 디오니시우스Dionysios Thrax, Atoviolos Ops의 언어학,

부력의 원리를 깨 닫고 '유레카'를 외친 것으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of Syracuse, Apxurions의 물리학이 모두 이곳에 집결되어 있었다.

 

이 도서관에는 세계 전역에서 모여든 학자들이 철학, 종교, 문학, 논리학, 수사학 등 오늘날 인문학의 주제에 대해, 

그리고 물리학, 생물학, 약학, 공학, 지리학, 천문학 등 자연과학의 질문을 놓고 토론하며 탐구하였다.

프톨레 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는 바로 이러한 지적 분위기의 산물이다.

 

고대에는 점성술과 천문학이 구분되지 않았는데,

동서를 막론하고 천체의 운행이 땅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믿었던 것이다.

점성술의 동기에서 비롯된 오랜 관측 자료가 천문학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는 스스로 천체를 관측하면서 고대의 점성술 과 천문학을 집대성하였다.

그는 별들에게 이름을 부여했고, 밝기를 기록하고 목록을 만들었으며,

지구가 왜 구형인지 설명하고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공식을 확립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우주론의 체계를 세운 것인데,

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해, 달,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 한 지구 중심의 우주론(천동설)은 인류가 지닌 가장 자연스럽고 오래된 생각이다.

지구는 엄청 크고 단단하고 고정된 것처럼 느껴지는 데 반해 하늘의 천체들은 하루에 한 바퀴씩 회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 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1514년 가톨릭교회의 신부였던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제시하기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다.

아무튼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체의 운행을 하늘에 있는 수정처럼 투명한 천구(Heavenly Sphere)들의 회전으로 설명하였고, 천체는 그 천구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고 생각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에서 천구의 순서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곧 지구를 중심으로 달의 천구, 수성의 천구, 금성의 천구, 태양의 천구, 화성의 천구, 목성의 천구, 토성의 천구, 항성들의 천구, 원동천의 천구, 하나님이 머무르는 열 번째 천구로 이루어져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은 오늘날의 과학적 견지에서 볼 때 몇 가지 중요한 결함이 있는데,

하나는 인간중심적 사고에 기반하여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위치시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원운동의 완전성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천체는 반드시 완전한 원운동을 한다는 가정을 세운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이 우주론은 이론과 실제 관측 결과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수정이 필요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체가 크게 원운동을 하면서 보조적인 작은 원운동을 한다는 '주전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했지만

이러한 문제는 훗날 태양중심설(지동설)과 타원운동이라는 생각이 도입될 때까지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아홉 번째와 열 번째 천구를 도입한 것이다. 

원래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은 여덟 번째 천구까지다. 

아홉 번째 천구인 원동천(原動天, primum mobile)과 열 번째 천구인 하늘나라는 그리스 철학 및 기독교 사상과의 결합이 낳은 관념의 산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 지상세계는 변화하는 4원소, 즉 물, 불, 공기, 흙으로 만들어졌고,

이데아의 세계는 불변의 원소인 제5원소로 만들어졌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세계관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을 확장하여,

천사들이 머무르는 아홉 번째 천구인 원동천과,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불변의 제5원소로 만들어진 영원한 나라인 열 번째 천구를 추가하도록 만들었다.

 

이 우주론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신인동형의 하나님으로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에 묘사된 것처럼 수염을 날리는 근 엄한 할아버지를 상상하게 한다.

그분은 하늘나라에 거주하시며 세계의 만사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한 분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은 저멀리 아홉 번째 하늘 위에 머물러 계시면서 천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다른 모든 천구의 운행이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시고,

선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믿어진다.

 

이 우주론에서는 세계가 지옥계와 지상계와 천상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성서에 나오는 하늘나라와 지옥은 그냥 지어낸 이야기나 은유의 장소가 아니라, 실제로 이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실재로 믿어졌다.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은 처음 등장한지 거의 2천 년이나 지난 오래된 우주론이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갈릴레이의 천체관측, 그리고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이 등장하기까지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은 오랜 기간 동안 서구인들의 생각을 지배해온 아주 강력한 우주론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우주론의 과학적 효력 및 종교적 권위가 상실된지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톨레마 이오스 우주론에 매료되는 대중들이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개봉된 <사랑과 영혼>Ghost. 1990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는

"악인의 영혼은 죽어서 지하세계로 끌려가고 선인의 영혼은 천사의 호위를 받아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는 권선징악의 오래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사악한 인물이 죽자 검은 옷을 입은 지옥의 사자가 나타나 공포에 질린 비명 소리와 함께 악한 그 영혼을 끌고 땅 아래 지하세계로 사라진다.

반면 착한 주인공의 영혼은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중세 시대의 우주론을 반영한 이 장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한다 는 점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은 과학의 시대로서, 프톨레마이오스 이래로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빅뱅우주론까지 등장하여 우주에 대한 관념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래된 우주론이 아직도 '먹히는' 것을 보면서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의 매력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근대과학 이전 시대의 우주론을 반영한 이 장면이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이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가장 부합되는

친근하고 설득력 있는 우주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론과 기독교
폴란드의 고위성직자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을 검토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기존의 지구중심의 천구이론이 지닌 문제, 즉 이론과 관측 결과가 맞지 않아 주전원이란 보조 원운동을 통해 계속 수정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것은 곧 지구 대신 태양을 천체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새로운 사상을 걸핏하면 이단으로 규정했고, 그 대가로 참혹한 형벌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태양중심설(지동설, heliocentrism)을 담은 책 『천구의 회전에 관 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의 초판을 비밀리에 인쇄해서 임종을 앞둔 병상에서 비로소 받아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 Eppur si muove 라는 말로 유명한 갈릴레이의 재판을 잘 알고 있으며,

지동설을 탄압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종교재판의 부당성에 대해서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이 문제를 살펴보면 그리 간단하게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기했지만

아직까지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이 타원 운동을 한다는 사실과 

그 궤도를 몰랐고 자신의 이론을 입증할 자료가 형편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의 새로운 천문학 가설이 프톨레마이오스 이론보다 명백하게 옳다는 것을 입증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이 아주 명백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과학이 다루는 현상과 이론은 직접 눈으로 관찰할 수 없는 영역도 많고 종종 모델을 통해 이론을 설명하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판단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도 하나의 모델이다.

그가 이 가설을 제시할 때 기존의 이론을 근본적으로 뒤집을 만한 결정적인 관측 자료나 증거를 가진 것은 아니었고,

다만 하나의 이론으로서의 정합성이 우수했다고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천년 이상 지속된 기존의 패러다임을 전복할 수는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은 다만 사고의 전환이며, 진정한 태양중심설로의 우주론의 전환은 케플러의 타원이론과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이용하여 목성을 도는 네 개의 위성을 발견한 일, 

그리고 뉴턴의 중력이론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갈릴레이가 목성의 위성들을 관측한 것이 중요한 이유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을 지탱하는 관념을 무너뜨렸기 때문인데,

그 관념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이 있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관념이다.

목성의 위성은 지구 아닌 다른 천체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는 천체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하였다.

 

한편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연구한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통해 자연과학의 역사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사회적 요소들을 검토하고,

일반적으로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우월한 이론이 과거의 낙후된 이론을 점진적으로 대체하며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과학 이론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으며

새로운 하나의 과학이론이 등장할 때 이 패러다임과 갈등관계에 놓이게 되고,

마침내 새로운 과학의 발견과 성과들이 모여

기존의 과학적 패러다임을 전복시키면서 혁명적으로 진 행된다고 주장하였다.

어찌 보면 과학의 발전과정도 신학이나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토마스 쿤의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다.
한편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은 1687년에 출판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라는 그의 탁월한 저서를 통해 

우주의 모든 운동 현상은 중력이라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우주는 절대시간 축을 따라 무한한 공 간을 가지며 모든 항성들의 운동은 중력이라는 하나의 효과만 고려 하면 계산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우주론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중력은 오직 인력, 즉 잡아 당기는 힘으로만 작용하기 때문에 우주 공간의 별들은 서로 가까워지 다가 결국 하나의 질량중심점으로 붕괴해야 함에도 현실에서 관찰 되는 우주는 그렇지 않다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뉴턴 자신도 이 난제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만일 무한한 공간에 무한한 별들이 분포해 있다면, 무한한 공간이 무한한 별들의 질량을 상쇄할 것"이라는 설명으로 이 문제를 넘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전형적인 논리의 오류라는 것을 뉴턴과 다른 과학자들은 알고 있었다.

 

만일 무한한 수의 별들이 무한한 공간에 펼쳐져 있다면 모든 별이 그 자신을 기준으로 주변에 무한한 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임의의 어느 별도 우주의 중심점이 될 수 있고,

하늘의 천체들은 중력에 의해 서로 가까워져 마침내 한 점으로 붕괴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물리학 분야에서 뉴턴의 권위는 너무 위대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러한 문제제기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무한한 3차원 공간에 무한한 별들이 펼쳐져 있고

중력이라는 단일한 원인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해진 궤도를 따라 천체들이 운행하고 있다는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론이 정립되어 20세기까지 3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론에서 하나님은 시계를 만든 '장인'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기계론적 우주론에서 세계는 정교한 톱니바퀴로 만들어진 시계와 같다.

나폴레옹의 수학교사이기도 했던 라플라스(Pierre-Simon, marquis de Laplace)는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에 물레방아를 동력으로 삼아 움직이는

복잡한 기계장치를 만들어 나폴레옹에게 구경시켜 주었다.

 

마치 거대한 뻐꾸기시계와 같이 물레방아에서 비롯 되고 톱니바퀴에 의해 연쇄적으로 작동하는 이 장치를 보면서 나폴 레옹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라고 질문하였다.

이에 라플라스 는 "시계와 같이 모든 일이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이 세계에서 신이란 가설은 필요하지 않다"는 대답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대화는 기계론적 우주론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당시의 신학자들과 신을 믿고자 하는 과학자들은 기계와 같은 우주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최초의 우주에 운동의 법칙을 부여한 존재로 상정하였다.

이를 이신론(理神論, Deism) 이라고 하는데, 이 우주론의 모델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과 달리 하나님께서 거주할 장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의 역할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 혹은 이성으로서 한정된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이 기계장치와 같은 세계에서 모든 사건들은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정해진 대로 발생하며, 우 리는 이를 결정론(決定論, Determinism) 이라고 한다.

즉 우주 안의 사건들은 처음에 주어진 변수에 의해 차례대로 일어날 뿐, 그 어떤 불확실성도 허락하지 않으며, 뿐만 아니라 이신론에서 하나님은 단지 수학 법칙과 같은 원리로 존재할 뿐, 인격적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할 수 없는 무감한 하나님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 체험하고 고백하는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계시되고 인간의 삶 가운데 체험된 인격적 존재이다.

곧 그분은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 불의와 정의, 전쟁과 평화, 죽음과 생명이 교차하고 혼재된 우리들의 삶 속에 나타나시어,

목마르고 상처받은 영혼의 귓가에 속삭여주시며 정의와 평화와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는 이신론의 틀에 갇혀 원리와 법칙과 이성으로서 계측되는 하나님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근대의 기계론적 우주론과 짝을 이루는 이신론은 기독교의 신앙에 만족을 줄 수 없었다.

그리고 기독교는 결코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이 시기 동안 기독교 신앙은 이전 시대와는 달리 당대의 우주론과 더 이상 동행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신론은 과학을 진리의 중심에 두고 이와 병행하여 어떤 식으로든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려 했던 일부 과학자들과

기계론적 우주론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대신 전통적인 기독교의 계시신앙을 포기한 소수의 계몽주의 신학자들에게 국한되었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