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1부 : 05. 빛을 둘러싼 과학과 기독교의 사색들

w.j.lee 2024. 5. 31. 10:08

제1부 신앙에 대한 과학의 도전

 

05. 빛을 둘러싼 과학과 기독교의 사색들

 

이 작은 구름 하나는 "빛이 입자인가, 아니면 파동인가?"라는 의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흑체(Black Body)라는 이상적인 물체가 에너 지를 흡수하고 방출할 때 일어나는 흑체복사 현상에 관한 의문점이 었다.

 

빛! 창조와 로고스의 발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창1:3)

 

성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생겨난 것이 빛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현대과학의 빅뱅우주론에서도 우주가 탄생 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이 빛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빛의 물리적 특성이 바로 이 우주의 근본적인 특성을 규정한다.

현대과학을 전혀 알지 못하던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성서 저자와 현대 과학자들이 규명한 우주 탄생에서의 빛에 대한 이해가 상통하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또한 요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참빛"이라고 증언한다.

기독교 신앙에서나 물리학에서나 빛은 존재 하는 것 가운데 가장 처음 나타난 존재이며, 제일 중요하고 근본적인 요소인 것이다.

 

과연 빛은 무엇일까? 우리는 빛을 만질 수도 없고 무게도 느낄 수 없지만, 우리는 빛을 볼 수 있고 그 따뜻함을 느낀다.

우리가 바라보는 햇빛, 즉 태양 에너지는 어마어마한 질량을 가진 태양 내부에서 엄청난 열과 압력중력에 의해 수소원자가 헬륨원자로 바뀌는 핵융합반응에 의해 발생되어,

태양 표면에서 출발하여 1억 5천만 킬로미터의 우주 공간을 약 8분 동안 달려와 비로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아무런 무게도 없는 햇빛은 열을 담아 가지고 와서 이 땅과 우리 머리 위에 쏟아 부어 그 열과 더위를 느끼게 한다.

 

여름이 더운 이유는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의 자전축이 살짝 기울어져 있고 여름 철에 북반구가 태양에 보다 수직이므로 태양열을 더 많이 받기 때문 이다.

지구의 공전궤도는 원이 아니라 타원형인데 북반구를 기준으 로 할 때 겨울보다 여름철에 태양과의 거리가 더 멀어진다.

이때 태양과의 거리는 더 멀지만 태양을 향한 각도가 보다 수직에 가깝기 때문에 온도가 올라가게 되는데, 여기서 거리보다는 각도가 중요함 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하나님과의 거리보다는 그분을 향한 열망이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늘상 입버릇처럼 하나님을 찾고 성령을 부르짖는 거룩한 분위기 속에 있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없다면 별로 은혜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 낮은 곳에서 비천한 사람들과 뒹굴더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은혜가 풍성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나님은 바로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을 향한 열망을 품는다는 것은 곧 생명과 사람에 대해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다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비록 겉보기에는 가난하고 헐벗은 동네에서 살더라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요한 복음 저자의 고백을 떠올린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되,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받았다

(요 1:14-16).

 

아리스토텔레스의 광학과 기독교

 

빛에 대한 최초의 의미 있는 연구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빛의 본질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색깔로부터 찾았다.

그는 빛을 어둠과 대립시키고, 빛의 가장 순수한 상태가 흰색이고 반대로 빛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검은색이며,

빛과 어둠과의 혼합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이 나타난다고 설명 했다.

 

예를 들자면 검은 숯에 불을 붙이면 빨갛게 타오르는데, 이 빨간 색은 불에서 나온 백색 빛이 숯이 지니고 있던 어둠과 적당히 섞여 빨간 빛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마치 서로 다른 색깔의 액체를 섞어 칵테일을 만들듯이 빛과 어둠이 혼합되어 색깔이 나타난다는 것 인데,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빛의 변용이라고 한다.

아침에 바다 위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해가 떠오른 다음 하늘이 환해져 모든 색 깔이 나타났다가 저녁이 되면 서산 하늘에 석양이 물들며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캄캄해지는 것도 모두 순수한 하얀 빛과 어둠의 혼합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라고 한다.

 

무지개에 포함된 일곱 가지 색깔도 모두 순수한 백색 빛과 어둠의 혼합 정도에 따라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고는 이 세계가 흙, 물, 공기, 불로 구성되어 있다는 4원소설과도 관련이 있다.

4원소설에서 불의 고유한 위치가 하늘이며 그 너머에는 제5원소로 만들어진 하늘나라가 존재한다고 믿었듯이,

아무것도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빛으로서 백색은 지상세계와 달리 제5원소로 이루어진 천상의 세계를 반영하는 고귀한 색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빛에 대한 철학은 나중에 바울이 로마제국 곳곳을 다니며 기독교를 전파할 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1에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압니다"라고 설파하였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하늘나라는 어둠과 전혀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빛의 이미지와 맞닿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과 함께 창조 이전부터 계신 로고스이며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비추는 생명의 빛" 이라고 증언한 요한복음 저자는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빛에 관한 설명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한복음 첫 장에서 웅장하게 펼쳐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주론적 설명은

아마도 그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비롯한 그리스 철학에 정통한 지식인들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의 상업도시 밀레토스에서 시작되어

로마 제국이 확장한 헬레니즘 문화권 전역으로 퍼진 그리스 철학은

결국 기독교가 널리 전파될 수 있는 토대를 미리 놓아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빛을 어둠과 대비시켜 완전성 및 불완전성으로 구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빛과 색깔에 대한 관점은 초기 기독교에 가장 큰 도전이 되었던 영지주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영지주의란 밀교적이고 비밀스러우며 시적인 '영적 지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그노시스' 에서 유래했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적 지식' 또는 '신성한 영’을 알고 접촉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들은 이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이해하여 빛과 어둠, 영과 물질이 투쟁하는 장소로 보았으며,

창조 이전에 존재한 물질에 깃든 악에 대항하여 비밀스럽고 신령한 영을 모시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영과 정신은 선하고 육과 물질은 악하다는 극단적 이원론에 근거하여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을 물질을 만든 저급한 신(데미우르고스)으로 보았으며,

유대교 전통보다는 그리스 사상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이해하려고 한 자들이었다.

지상의 4원소를 초월하여 제5원소로 이루어진 천상 세계를 나타내는 완전체로서 빛을 이해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이 이러한 영지주의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뉴턴의 광학과 다양성의 문제

 

과학자로서 뉴턴의 첫 논문은 "빛과 색채에 관한 새 이론"이었다.

그는 이 논문을 1672년 영국왕립학회가 발간하는「철학회보」에 실었다.

그는 햇빛을 삼각형의 유리 프리즘에 통과시키는 광분해 실험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빛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

햇빛을 삼각형 유리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가장 두꺼운 부분에서는 빨간빛이,

가장 얇은 부분에서는 보랏빛이, 그 중간에는 무지개에서 볼 수 있는 색깔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색이 빛과 어둠이 혼합된 정도에 따라 나타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따르면 빨간색은 유리의 가장 두꺼운 부분을 통과하면서 그 만큼 어둠이 섞인 결과이고, 

반대로 보라색은 가장 얇은 부분을 통과했기 때문에 백색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뉴턴은 프리즘을 통과한 일곱 가지 빛의 띠에서 하나의 색을 택해 다시 제2의 프리즘으로 통과시켰는데 처음의 색이 그대로 나타났다.

아리스토텔 레스의 이론대로라면 제2의 프리즘을 통과했기 때문에 더 어두운빨간 색 쪽으로 변화해야 하지만 실험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뉴턴은 프리즘을 통과한 일곱 가지 빛을, 두께를 반대로 바꾼 제2의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다시 백색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이는 색깔이 유리에 깃든 어둠과의 혼합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리하여 뉴턴은 햇빛의 무지개 색은 어둠의 혼합 때문이 아니고 굴절에 의해 생기는 현상임을 밝혀내었다.

백색광은 순수한 빛이 아니라 그 반대로 굴절률이 다른 다양한 색깔의 빛이 혼합된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로써 지난 수천 년 동안 진 리로 여겨졌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무너지게 되었다.

 

필자는 뉴턴이 자신의 새로운 광학을 신앙과 어떻게 연결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료를 찾지 못했지만 이를 오늘날의 신학적 관점에서 소수자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만일 밝은 투명한 빛이 하늘나라를 상징한다면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방식처럼 혼합물이 전혀 없는 순수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무지개에서 볼 수 있듯이 굴절률이 다른 여러 가지 단색광이 모여서 만들어진 결과다.

 

이를 사회적인 맥락으로 번역하자면 다양성의 공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늘나라의 찬란한 광채는 순수한 백색광이 아니라 무지개의 색깔이 함께 모여서 만드는 빛이다. 유럽 이나 미주의 교회 중에는 교회 입구에 무지개 깃발을 걸어놓은 교회 들이 있는데, 인종, 계급, 성적 지향성 등 여러 영역에서 소수자들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표시다.

 

최근 한국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 지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지개 배너를 걸어놓았다.

한편 한국교회의 일부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편견에 근거하여 극단적인 혐오감을 증폭시키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는데,

이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나병환자, 정신이상자, 간음한 자, 이방인 등 당시의 종교적 기준으로 죄인이라고 규정했던 여러 형태의 소수 자에 대한 편견과 증오에 동조하지 않고 그들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일깨우고 그들 편에 서셨다.

전체 인구 가운데 일정 비율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선천적으로 성적 지향이 다른 기질을 안고 태어난 성소수자들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기 전에 이미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일반인들 가운데서 성소수자에 대해 미워하다가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성소수자의 부모다.

성소수자의 부모 역시 자신의 자녀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게 되면 굉장한 충격을 받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로 인해 엄청난 실망감과 모욕감을 겪으면서 오랜 대화 끝에 비로소 자신의 자녀가 악마의 꾐에 빠진 쾌락주의자가 아니라, 인위적인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다른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녀가 받는 고통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성적 지향이 다른 이들을 마치 가장 더러운 죄인처럼 취급하고 무자비한 단죄를 서슴지 않는 것은 결코 복음적이지 않으며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반되는 행동이다.

 

빛의 본질과 우주

 

역학뿐 아니라 광학 분야에서도 근대과학의 새로운 기초를 놓은 뉴턴은

그의 논문 "광학"에서 빛이 입자의 특성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뉴턴의 권위가 너무도 대단했기 때문에 모두 그렇게 믿었지만, 19세기 들어 빛이 입자의 특성과 동시에 파동의 특성도 지닌다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입자와 파동은 서로 모순된다.

입자란 알갱이를 뜻하며 직선 운동을 하지만,

파동이란 호수 위에 물결이 치는 것처럼 어떤 물질이 메아리치는 현상이다.

 

그리고 파동은 입자와 근본 적으로 다른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간섭이나 회절 현상이다.

간섭이란 파동과 파동이 겹치는 경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이고, 회절은 장애물이 있더라도 그 뒤로 돌아가 에너지가 전달되는 현상을 말한다.

 

총격전이 벌어질 때 기둥 뒤에 숨으면 총알은 피할 수 있지만 총소리는 전달된다. 

총알은 입자처럼 직진 운동을 하는데 반해 총성은 공기를 울리는 파동이기 때문에 회절을 통해 기둥 뒤까지도 음파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일 빛이 파동이라면 아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물질이 파도치며 빛의 이동을 매개하는 현상으로 설명해야 하지만 과학자들이 그 물질을 검출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고안해서 실험을 해도 빛의 파동을 전달하는 매질의 증거를 전혀 찾을 수 가 없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가상의 물질을 '에테르' ether라고 이름 붙이고, 우주 공간에 에테르가 가득 차 있다고 상상했다. 에테르는 뉴턴이 말한 절대공간에 정지된 상태로 존재하며

지구의 공전 같은 운동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신비한 물질로 여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지적 불만족은 증폭되어만 갔다.

 

더욱이 과학자들이 옛날 갈릴레이가 실패했던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데 성공한 후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지구의 공전속도가 더해 지거나 감해져도 광속이 전혀 변화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가 달리는 열차에서 진행방향으로 공을 던지면 외부관찰자가 볼 때 공의 속도는 빨라지고, 뒤로 던지면 반대로 느려지는 것이 뉴턴 역학의 상식이다.

그런데 빛은 광원의 속도와 상관없이 약 초속 30만 킬로미터 라는 불변의 고유한 속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뉴턴 역학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19세기 과학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한 이러한 광속의 패러독스는 마침내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에 의해 해결되었지만, 그 해결의 실마리는 전자기파(電磁氣波)의 연구를 통해서 풀리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다. 전자기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변할 때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이다. 쉽게 설명하 자면 우리가 어렸을 때 자석을 가지고 놀면서 느끼는 힘이 자력이다.
종이 위에 쇳가루를 흩어 놓고 아래에서 자석을 흔들면 일정한 패턴으로 쇳가루가 배열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석이 만들어 내는 장, 즉 자기장의 형태다.

 

또한 예로부터 사람들은 송진 등이 오랜 기간 땅 속에서 굳어 생긴 광물질인 호박이란 보석을 양모로 문지르면 발생하는 정전기 현상을 통해 전기라는 현상을 오래 전부터 알았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번개가 칠때 연을 날려 연출을 통해 전류가 흐른다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전기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과학자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 와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은 자기와 전기가 궁극적으로 같은 현상임을 밝혀내고 이를 전자기력이라 불렀다.

 

그런데 뉴턴의 세계에서는 오직 만유인력, 즉 중력만이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자기력이 밝혀짐에 따라서 우주에는 중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과 무관한 전자기력이라는 힘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뉴턴의 중력 이론이 만능이론이 아님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후에 과학자들은 원자의 구조 연구하면서 중력과 전자기력 외에도 원자의 구성을 지배하는 강력(강한 핵력)과 약력이라는 다른 두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리하여 이 우주에는 중력, 전자기력 , 강력, 약력 이라는 네 가지 근본적인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빛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전자기력 연구의 기초를 놓은 과학자의 이야기를 소개해보겠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과학자로 선정되는 인물이다. 

영국인 중 가장 위대한 과학자를 한 명 꼽으라면 주저 없이 뉴턴을 꼽겠지만,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과학자는 패러데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가 아무런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애정과 불굴의 탐구정신으로 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도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에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읽기와 쓰기, 그리고 간단한 산수 밖에 배 우지 못했다.

그가 열세 살 무렵 식구의 입 하나 덜자고 취직한 곳이 제본소였다.

그는 허드렛일이나 하는 '보조'임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그곳에서 인쇄된 책을 보면서 공부한 끝에 과학자들이 제본을 맡긴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당시 유명한 과학자였던 험프리 데이비 경(Sir Humphry Davy, 1778-1829)의 강연을 듣고 그 강의를 소책자로 엮어 선물한 일이 인연이 되어 그의 조수가 되었다.

 

말이 좋아 실험실 조수이지 실제로 그가 맡은 일은 실험실을 청소하며 건강에 해로운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고,

단순한 실험을 반복하여 데이터를 정리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단한 처지에서도 자신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밀고나가, 전자기력에 관한 중요한 법칙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기와 자기의 힘을 이용해 회전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 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생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전기모터의 기원이다.

만일 그가 전기 모터의 특허권을 주장했다면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엄청난 부자가 된 노벨 이상의 재산을 모았겠지만,

그는 연구소에서 주는 봉급이 너무 많다고 되돌려 주거나 명예로운 직책을 거절하는 등 겸손 한 삶을 살았다.

 

이와 같은 그의 소박하고 겸손한 태도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기인하였고, 그는 한평생 신앙의 길을 벗어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모범적인 기독교인의 삶을 실천하였다.

그는 귀족이나 명문대 출신의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은근한 차별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진솔한 인간성과 특유의 겸손함으로 그들을 감동시켰으며,

왕립학회의 회장직을 두 번이나 추천받았으나 끝내 거절했다.

대신 그는 왕립학회가 크리스마스 때마다 어린이들을 위한 과학 강연회를 개최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강연회에 노년이 되어 무대에 선 패러데이는 어린이들에게 양초 하나를 켜서 보여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어떤 다이아몬드가 이 불꽃만큼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양초의 불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불꽃이 없으면 결코 빛날 수 없단다." 

오늘날 영국의 20파운드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와 함께 그가 왕립학회에서 양초 한 자루를 들고 크리스마스 강연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패러데이에 의해 개척된 전자기파에 관한 연구는 제임스 맥스 웰에 의해 간결한 방정식으로 완성되었고,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1894)에 의해 실험적으로 재현되고 정밀하게 측정되었다.

전자기학에 따르면 자기장(磁氣場)과 전기장(電氣場)은 서로 수직되고, 이 두 방향과 수직으로 파동이 뻗어 나가는 현상이 전자기파다.

짧은 파장은 긴 파장보다 더 빠르게 진동함으로써 결국 동일 한 속도를 갖게 되며 그리하여 전자기파는 파장의 크기와 관계없이 진공 속에서 일정한 속도, 즉 초속 약 30만 킬로미터로 진행한다.

전자기파를 연구하다 보니 결국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에테르가 검출되지 않았으며, 광속이 일정한지에 대한 의문은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特殊相對性理論)에 의해서 올바르게 해명된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은 광대한 영역의 전자기파 중에서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긴 파장의 적외선과 짧은 파장의 자외선 밖으로도 전자기파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를 보지 못한다.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우주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셈이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