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2부 : 04.빅뱅 우주론과 하나님의 창조

w.j.lee 2024. 5. 31. 10:06

제2부 현대과학과  기독교

 

04. 빅뱅우주론과 하나님의 창조

 

빅뱅우주론(Big Bang cosmology)은 대폭발 이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 하나의 점(singular Point, 특이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생겨났다는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다.

여기서 우주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안에 존재하는 물질과 에너지를 뜻한다.

하나의 작은 겨자씨에서 큰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가 자라나듯이,

하나의 점에서 우주의 삼라만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대폭발이론은 20세기 초반에 벨기에의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이자 천문학자인 조르주 르메트르(Gcorges Henri Joseph Édouard Lemaître, 1894-1966)에 의해 하나의 가설로 제안되었는데, 그는 우주 전체가 '원시적 원자'의 폭발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그 후 이 가설은 이론적으로는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 근거한 매우 정교한 비판과 검토 과정을 거치고, 실증적으로는 우주의 팽창을 지지하는 천문학적 증거들에 의해 보다 신빙성을 얻게 되었다. 

특히 1965년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은 빅뱅우주론이 정설로 인정받게 되는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되었다.

그동안 최종적이고 가장 확실한 우주론이라 여겨졌던 뉴턴-데카르트 우주론이 3백년 만에 붕괴되고 빅뱅우주론이 새로이 제시된 것이다.

 

정적 우주 모델

빅뱅우주론이 탄생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정적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관념이다. 

맨 처음에 신이 창조했건, 아니면 저절로 존재했건 간에, 어쨌든 우주는 과거부터 존재해왔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정적 우주'에 관한 관념이다.

이 광대한 우주가 마치 생명체처럼 과거 어느 순간에 태어났다가 미래에 사라진다거나, 또는 크기가 아주 작았다가 점점 커졌다는 식의 생각은 일반적인 우리의 과학적 직관과 심각하게 어긋난다.

우주가 영구불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폐기하는 것은 지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믿음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조차도 정적인 우주상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일반상대성 방정식에 '우주상수라는 임의의 수치를 도입하였다.

후일 아인슈타인은 이를 자신의 일생 최대의 실수였다고 고백하였는데, 이 상수의 역할은 우주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중력에 의해 우주가 붕괴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이다.

중력이란 힘은 신기하게도 그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제나 잡아당기는 힘(인력)으로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만 고려하면 우주 공간 안에 별이나 은하 같은 물질들은 모두 질량을 갖고 있고,

질량을 가진 물체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서로 가까워지므로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질량 중심점으로 붕괴될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반하여 서로 밀어내는 힘(척력)이 있을 것이라는 임의의 가정 하에 중력의 인력을 상쇄하도록 우주상수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천체물리학에서는 이 우주상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왜냐하면 별이나 은하같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물질 가운데서 우리에게 알려진 물질은 4퍼센트 정도 밖에 되지 않고,

그 밖에 정체가 잘 알려지지 않은 암흑 물질이 22퍼센트 정도이고,

암흑 에너지가 약 74퍼센트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암흑 에너지가 바로 아인슈타인이 임의로 도입했던 우주상수와 같이 척력으로 작용하여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흑 에너지의 밀어내는 힘이 정말로 우주상수와 같다면 또 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아 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어쩌면 멀지않은 미래에 과학자들은 우주의 모습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제시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빅뱅우주론의 일부내용은 수정될 것이다.

어쨌든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는 오늘날 우주론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빅뱅우주론의 전개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자체로 우주, 즉 시공간이 절대적 이거나 독립적이지 않으며, 중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빛 조차도 중력에 의해 휘어지듯이, 시간과 공간도 중력에 의해서 곡률을 갖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발상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힘든 혁명적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이 생각을 더 극단적으로 밀고나가면 마침내 우리는 정적 우주라는 강력한 관념을 폐기할 수 있다.

우주, 즉 시공간은 물리적 조건에 따라서 한 점으로 사라질 수도 있 고, 반대로 무한을 향해 끝없이 팽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 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자체로 이러한 역동적인 우주상을 함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의 창시자인 아인슈타인조차도 정적 우주상에만 매달려 있었다.

 

아인슈타인과 전 세계의 뛰어난 모든 과학자들이 일반상대성이론이 함축하는 역동적인 우주상을 거부 하고 일반상대성이론과 정적 우주 모델을 조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던 차에,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일반상대성이론이 지시하는 내용을 정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러시아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알렉산더 프리드만(Alexander Alexandrovich Friedmann, 1888-1925)이었다.

1922년 프리드만은 일반상대성이론 자체로부터 팽창에 대하여 닫힌 우주, 열린 우주, 그리고 임계 팽창률을 유지하는 우주 등 세 가지 모델을 도출해내었다.

 

첫째, 

닫힌 우주 모델은 팽창을 시작했던 시공간이 중력에 의해일정한 크기에 도달했다가 팽창을 멈추고서 재수축하는 우주다. 

둘째,

열린 우주 모델은 팽창률이 중력의 잡아당기는 힘을 초과하기 때문에 영원히 팽창해 나가는 우주다.

셋째,

임계팽창 우주 모델은 중력과 팽창률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아슬아슬한 비율, 즉 임계팽창률을 유지하는 우주이다.

 

우리가 속한 우주는 어느 모델일까? 

세 번째 모델이다. 

만일 첫 번째나 두 번째라면 우리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 

아무튼 세 가지 우주 모델의 방정식들은 모두 약 100억~200억년전 과거 어느 순간에 이웃한 은하들 간의 거리가 영이었음을 나타낸다. 

은하들 간의 거리가 영이라는 것은 곧 우주가 한 점에 모여 있었다는 말이다.

 

천문학자 허블과 멀어지는 은하

 

한편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Powell Hubble, 1889-1953)은 1929년에 미국 록키산맥의 윌슨산 천문대에서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는 현상"을 발견함으로써 빅뱅우주론의 수립 과정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는 현상은 20세기 천문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꼽힌다.

허블은 은하에 속한 어떤 별들은 절대 광도가 일정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 초'로 삼았다.

이로써 멀리 떨어진 은하들의 거리 측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허블의 관측에 따르면 모든 은하들로부터 오는 광원이 붉은색 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이 발견되었고, 그 정도는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심하였다.

이를 '적색 이동'Red shift 이라고 부르는데, 도플러 효과에 따르면 광원(여기서는 은하)이 관측자로부터 멀어질 때 생기는 현상이 다.

이는 모든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만일 우리가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면 은하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 워지다가, 마침내 과거의 어느 순간에는 한 점에 모여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당연히 이 발견은 빅뱅우주론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거자료로 간주되었다.

 

허블은 본래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 했으나, 명문가 출신으로서 법률가가 되어 장차 크게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마지못해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허블은 하늘의 별과 천체들의 신비한 모습을 탐구하고 싶은 내면의 강렬한 소망을 이길 수 없어 결국 천문대로 돌아온 특별한 경력의 소유자다.

사실 천체를 관측하려면 도시의 불빛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하므로, 천문학자가 지내야 하는 곳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고립된 산위 정 상이다.

또한 밤에만 관측이 가능하므로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해야 한다.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는 이야기에도 나오지만 이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은 도시에 있다.

그러므로 천문학자의 삶이란 부와 권력과 일상적인 안락함과는 거리가 있는 길이며,

손에 잡히지 않는 대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수도자적 삶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허블의 부친이 아들이 천문학자 대신에 법률가가 되기를 바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허블의 이 역사적인 발견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윌슨산에 위치한 천문대에는 20세기 초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었다.

천문대가 건설될 당시 대부분의 장비와 부품들은 노새 등에 실어 정상으로 날랐다.

많은 노새몰이꾼들이 때 아닌 호황을 만나 돈벌이에 나섰는데, 이중 밀턴 휴메이슨(Milton Lasell Humason, 1891-1972)이라는 특출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노름과 당구의 귀재로서 항상 시거를 입에 물고 질겅거려서 건달처럼 보이는 젊은이였는데, 때마침 천문대를 구경하러 온 연구원의 딸과 눈이 맞아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정규교육은 별로 받지 못했지만 만사에 호기심이 많아서 연구원들에게 자신이 나르는 천문 장비에 대해 자세히 묻기도 하며 그 작동원리를 이해하려 애쓰기도 했다.

천문대가 완성된 후에도 잡역부로 고용 되어 청소와 건물관리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 일하던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왔다.

망원경 관측 보조원이 독감으로 드러눕자 관측 팀이 휴메이슨에게 보조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던 것이다.

 

그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맡겨진 관측 보조원의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사람의 손에 따라 관측 효율이 민감하게 달라지는 천문장비와 기계들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이에 감탄한 사람들은 그를 정식 관측보조원으로 채용하게 된다.

미국의 명문가 태생이며 영국 옥스 퍼드 대학교 법학도 출신으로서 당대의 최고 엘리트였던 허블이 윌슨산에 왔을 때 그는 천문장비를 다루는 휴메이슨의 손기술이 전 세계의 어떤 천문학자보다도 유능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후 두 사람은 단짝이 되어 20세기 초반 천문학계에 많은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만일 휴메이슨이 없었다면 허블의 발견은 훨씬 늦춰졌거나 아예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원래 노새몰이꾼이었다가 뜻하지 않게 천문학계에 스카웃되어 자신만이 할 수 있었던 과학적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 휴메이슨 역시 동료 과학자들로부터 그에 합당한 존경을 받았다.

 

정상상태 이론과 빅뱅우주론

 

허블이 발견한 은하들의 적색편이가 곧바로 빅뱅우주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과거의 한 순간에 대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이 자신들의 과학적 직관에 너무도 위배되기 때문에 빅뱅 이론을 피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고안했다.

'정상상태 우주론'Steady state theory과 '진동 우주론'Oscillating universe theory 이 그것이다.

 

진동 우주론은 바이올린 현이 진동하는 것처럼 우주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는 가설인데, 근거가 취약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Sir Fred Hoyle, 1915-2001)에 의해 맹렬히 지지되었던 정상상태 이론은 1960년대까지 빅뱅우주론과 팽팽히 경쟁하였다.

이에 따르면 우주는 부분적으로는 밀도의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균질하고 등방하며 시간과 공간이 영속적으로 존재하면서, 공간이 팽창하면 그 안에서 새로운 물질을 꾸준히 만들어내어 밀도를 유지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은 은하가 멀어 지면서 우주가 팽창하더라도 팽창하는 공간 속에서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함으로써, 과학적 직관에 비추어 자연스럽지 않은 빅뱅의 순간, 즉 특이점을 배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빅뱅우주론이 빅뱅의 순간에 물질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정상상태 이론은 우주 공간의 팽창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물질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물질의 생성만 가지고 설명하자면 빅뱅의 순간에 일어난 일을 우주의 전 역사로 연장하여 평균화시키는 것과 비슷하 다.

 

재미있는 사실은 빅뱅우주론이라는 명칭을 바로 그것에 대한 가장 맹렬한 반대자인 프레드 호일이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호일은 라디오 교양 프로그램에 나와서 "그래, 우주가 과거 어느 순간에 크게 '뻥'Big Bang!하고 터져서 생기기라도 했단 말이오"라고 논쟁했는데, 이 말이 대폭발 이론을 너무도 잘 설명하고 있어서 나중에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아마도 빅뱅 이론은 반대자에 의해 명명된 최초의 과학이론일 것이다.

 

호일의 정상상태 이론은 1965년에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의 발견으로 폐기되었다. 

미국의 전신회사가 설립한 벨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아르노 펜지아스(Arno Allan Penzias, 1933)와 로버트 윌슨 (Robert Woodrow Wilson, 1936)은 새로운 안테나의 성능을 시험하던 중에 우연히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게 된다. 두 과학자는 새로 개발한 안테나에 수신되는 잡음의 출처를 알 수 없어서 괴로워했다.

그들은 안테나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모든 기계장치를 꼼꼼히 재조정 하고, 심지어는 비둘기 똥을 닦는 등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도 잡음을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중에, 이 전파의 실체가 바로 빅뱅 이론이 예측하고 있는 우주배경복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두 과학자는 이 우연한 발견으로 인해 노벨상을 받게 되었는 데, 이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우주배경복사를 찾기 위해 분투하던 다른 과학자들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펜지아스와 윌슨이 측정한 잡음이 우주배경복사임을 확인해주는 역할뿐이었다.

과학의 역사를 보면 때로 과학적 업적에 대한 명예나 금전 같은 보상이, 과학적 발견을 위해 일생을 바친 과학자를 외면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한 발견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우주배경복사는 빅뱅 당시에 우주의 전 방향으로 흩어진 에너지-물질의 잔해로서, 지금은 절대영도에 가까운 복사선으로 식어져 전 우주공간에 떠돌아다니는 전파다.

이것은 빅뱅 이론에서 이론적으로 예측되었고 발견되기만을 기다려왔던 것인데 마침내 발견됨으로써 빅뱅 이론이 옳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1970년에 루게릭 병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던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은 그의 스승 펜로즈(Sir Roger Penrose, 1931)와 함께 우주가 빅뱅의 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훌륭하게 입증 하였다.

오늘날 빅뱅우주론에 여전히 몇 가지 의문점은 남아 있지만 그럼에도 거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빅뱅 이론을 표준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아가 1992년 나사NASA의 코비 Cobe 탐사위성은 우주의 전 방향으로부터 수신되는 우주배경복사의 온도 편차를 정밀하게 관측하였다.

그 결과, 이론적 예측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극도로 미세한 정도의 편차가 우주배경복사의 밀도에 대해 우주의 모든 방향에 걸쳐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편차는 빅뱅 이후 초기 우주가 양자 요동에 의해 인플레이션 팽창을 하였으며, 에너지- 물질의 분포가 전체적으로는 균일하지만, 국부적으로는 미세한 차이가 생겨 있음을 나타낸다.

이 편차는 에너지물질의 분포가 상대 적으로 높은 영역에서는 은하, 성단, 별들이 형성되었고,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된 이유를 보여준다.

오늘날 천체물리학자들은 코비 위성의 관측을 통해 얻어진 우주배경복사의 분포도를 빅뱅우주론의 강력한 증거로 인정한다.

 

우주가 약138억 년 전에 일어난 대폭발에서 시작되어 지속적인 팽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는 빅뱅우주론은 20세기 과학계에서 이루어진 가장 위대하고 혁명적인 발견 중 하나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양자역학과 소립자 물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우주가 출발하던 경이로운 순간의 모습을 어느 정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한 처음에 우주의 크기는 영이었습니다. 

온도는 무한대로 뜨거운 상태 였고, 모든 것이 융합되어 끓고 있는 한 점이 폭발하면서 모든 에너지, 물질이 생겨났습니다.

빅뱅으로부터 약 (10-43승) 초 후에 온도는 (10+32승)도에 달하였습니다.

이때 우주의 크기는 원자 하나 정도에 불과했고, 밀도는 물의 밀도의 (10+96승)배에 달하였습니다.

중력이 분리되어 우주의 하나의 근원적인 힘을 이루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순간이었습니다.

약 (10-35승)초 후에는 온도는 (10+28승)도로 내려갔고, 강한 핵력이 중력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10-10승)초 후 온도는 (10+15승)도가 되었고, 그것은 약한 핵력과 전자기력이 다른 힘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온도였습니다.

 

그때 물질의 기초 모양을 이루는 쿼크가 형성되었습니다. 약 (10-4승)초 후에는 온도는 (10+12승)도로 식고 쿼크 들이 모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우주는 팽창 에 따라 차차 식어 갔고, 수소와 헬륨 원자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몸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물H20 에 들어있는 수소도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 몸도 바로 빅뱅의 산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수소와 헬륨 원자들은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등 우주의 네가지 기본적인 힘들의 법칙에 따라 별과 은하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10억 년 쯤 지난 후 은하의 가스 구름 속에서 별들이 태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소 가스들이 중력으로 뭉쳐진 별들은 불타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핵융합반응을 통해 수소 원자들이 헬륨으로 바뀌었고, 그중 일부는 다시 생명체의 구성에 필수적 원소인 탄소나 산소와 같은 무거운 원소들로 전환되었습니다.

수축하고 폭발하는 데 약 50억 년이 걸리는 별들의 일생을 통해 탄소와 산소들이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고, 다시 별 들이 만들어지는 두 차례의 과정을 거친 뒤에 우리 은하 속에서 제3세대 별인 태양과 행성들이 태어났습니다.

앞선 별의 폭발로 흩뿌려진 먼지 들, 즉 탄소와 산소 등 생명체를 구성하는 무거운 입자들이 모여 지구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먼지들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36억 년 전, 그러니까 빅뱅 이후 약 100억 년이 지난 후에 마침내 지구에서 생명을 탄생시켰습니다.

자기복제 능력이 있는 생명은 처음에는 아주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출발했지만, 몇 차례의 대멸종을 거친 후에도 살아남고 진화의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구 생태계를 이루고, 마침내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는 지성을 지닌 인간을 낳은 것입니다.

이것이 138억 년의 우주의 역사를 단 몇 줄로 숨가쁘게 요약한 내용입니다.

 

신학적 함축성

 

빅뱅우주론은 뉴턴-데카르트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 개념을 폐기했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 맨 처음이 있다는 주장 때문에 20세기 과학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우주론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의 패러다임 전환에 이어 3세기 만에 근본 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빅뱅 우주론은 기독교 신학의 창조신앙과 관련하여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그 이유는 빅뱅우주론이 우주가 약 138억 년 전 과거 어느 한 순간에 한 점에서의 거대한 폭발로 시작되었다고 설명함으로써 기독교의 교리인 '무로부터의 창조'를 지지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는 과학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가톨릭교회는 빅뱅우주론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빅뱅우주론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 신앙을 지지하는 과학적 이론이 되리라고 바티칸은 판단했던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81년 스티븐 호킹을 접견한 자리에서 "빅뱅은 창조의 순간이고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반응은 과학이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오랜 시간 무신론을 방황한 끝에 다시 하나님의 존재를 지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라는 창세기의 말씀과, 어마어마한 물질-에너지가 한 점에서 쏟아져 나와 우주를 만들었다는 빅뱅의 설명 간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어 보인다.

이러한 정황과 관련하여 나사 소장이었던 로버트 재스트로우(Robert Jastrow, 1925-2008)는 "오늘날의 천문학적 증거는 세계의 기원에 관한 성서의 관점이 맞음을 드러낸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우주의 기원과 관련하여 과학자들은 먼 길을 돌아 우주가 시작의 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나, 신학자들은 이미 옛날부터 우주가 저절로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세계를 '완전한 무'에서 창조했다고 가르쳐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가 성서적 가르침은 아니다.

구약성서의 첫 구절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전한 무로부터의 창조'인지 아니면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부여를 통한 창조'인지 명백히 진술하지 않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후자 쪽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창조가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부여를 통한 창조'라 한다면, 혼돈의 상태는 완전한 무는 아니므로 '선재하는 물질'Preexisting 물질 Preexisting matter 의 존재를 인정하는 셈이 되고,

이 '선재하는 물질' 의 존재는 하나님의 창조의 절대성을 제한하며, 하나님에 대한 이 세계의 절대적 의존성을 감소시킨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주장했던 것이다.

 

한편 아우구스티누스 는 하나님의 창조와 시간에 대하여 중요한 성찰을 남겼다.

그는 “하 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이전에는 무엇을 하시고 계셨느냐?"를 묻는 사람들에게 다른 성직자들처럼 "당신들처럼 불필요한 질문으로 성직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고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신 "시간과 영원이 그 속성상 본질적으로 다르며 영원은 하나님께 속한 속성인 반면 시간은 창조의 부속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시간이 창조의 '부속물'이라는 말은 시간이 창조의 결과물이며, 스스로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보통의 경우 우리는 직관적으로 시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 한다. 

당연히 창조도 과거의 한 순간에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 이전의 과거는 없다고 지적함으로써, 특이점으로부터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다는 빅뱅우주론의 요점과 상통하는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시간이 절대적인 값을 갖지 않으며 속도에 따라 변화하는 물리랑을 갖는다는 사고는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통해서 입증된 것이며, 이는 아무도 도전하지 못했던 뉴턴 물리학의 근저를 뒤흔든 혁명적 아이디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시대보다 거의 이천 년을 앞서 상대적 시간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절대성이란 오직 하나님에게 속한 본질이며, 그 외의 모든 존재나 상태는 모두 상대적 · 의존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라고 파악함으로써 '시간' 역시 상대적 · 의존적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곧 세계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창조의 결과물로서 그 존재성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적이라는 창조신앙의 요점과 부응되는 신학적 성찰이다. 

결론적으로 20세기 과학의 두 기둥인 상대성원리와 양자역학에 이론적으로 기초하고, 거기에 더해 정밀한 우주 관측기술에 힘입어 표준이론으로 정립된 빅뱅 우주론은 이 우주에 기원이 있다는 사실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무로 부터의 창조' 교리와 깊은 상관성을 지닌다.

또한 우주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 한 점에서 시작되어 계속 팽창하고 있는 시공간이기 때문에 우주 내의 모든 지점은 중심이자 동시에 가장자리라는 놀라운 의미를 알려준다.

이런 점에서 빅뱅우주론은 우리가 광대한 우주의 한 모퉁이에 자리한 티끌만 한 행성에 거주하는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동시에 그럼에도 이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 우주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