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3부 : 01. 진화론을 둘러싼 교과서 논쟁

w.j.lee 2024. 5. 31. 10:05

제3부 진화론과 창조신앙

 

01. 진화론을 둘러싼 교과서 논쟁

 

1981년에 한국창조과학회가 미국창조과학회의 지부로 설립된 이래 창조론자들은 이 단체를 중심으로 반진화론 서적을 보급하고 또 창조론을 교과과정에 포함해 달라고 교육당국에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또한 이들은 진화론의 허구성과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실증자료로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2005년 경기도 시흥시 연성동에 창조사 박물관을 준공하여 교회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창조론 견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창조과학회 교과서위원회와 한국진화론실상연구회를 통합하여 교진추를 발족시키고 진화론 폐지 활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해왔다.

 

현재 진행형인 논쟁의 시작은 2011년 12월 교진추가 교육과학 기술부에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청원을 교과부에 제출하고, 

이에 대하여 당시 사용되고 있는 고등학교 융합과학 교과서 7종 중 6종의 출판사나 저자로부터 시조 새 관련 내용을 삭제하거나 수정하겠다는 답변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에 기세를 올린 교진추는 2012년 3월 "그동안 진화의 강력한 증거로 예시되어온 말발굽 형태의 차이를 통해 주장된 말의 진화는 상상의 산물”이라는 2차 청원을 제출하여 3개 출판사로부터 관련 내용의 삭제를 약속 받았다.

이러한 사태가 언론에 보도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권위 있는 해외 학술지와 잡지들이 이 사건을 다루면서 이 문제가 국제 과학계로부터 주목을 받는 사건이 되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의 과학 저널 네이처는 2012년 6월 7일자 판에서 "한국이 창조론자들에게 항복했다"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하에 이번 사건을 우려 깊은 시각으로 다루었다.

네이처 외에도 미국의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와 시사주간지 타임도 한국 교과서의 시조새 논란을 다뤘다.

체질적으로 해외 언론과 국제적 시선에 민감한 국내의 여론은 또다시 들끓게 되었다.

여러 국내 생물학자들은 외국의 저명한 과학자 동료들로부터 "한국의 과학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는 투의 조롱 섞인 전자메일을 받았노라고 푸념하였다.

 

그 후 논란은 보다 전문적인 과학자 집단으로 번졌다.

황우석 줄기세포 논란 때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워 널리 알려진 국내 생명과학자들의 인터넷 모임인 생물학연구정보센타 BRIC에서는

생물학 전공자 14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86퍼센트가 교진추의 청원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적 견해를 밝혔다.

시조새 내용을 삭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은 73퍼센트로 나타났다.

 

교진추의 청원에 대응하여 학계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2012년 6월 20일 한국고생물학회를 비롯한 6개 학회 과학자 모임인 한국진화학회추진위원회에서는 교진추의 시조새 삭제 요구에 대해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으며,

7월 6일 한국생물과학협회는 교진추의 주장대로 "만일 창조론으로 교과서를 수정한다면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교진추의 개정청원에 대한 기각청원서를 교과부에 제출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한편 그동안 국제 생물학계에서 새롭게 제기된 내용들을 교과서에 오랫동안 반영하지 않은 국내 학계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하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아무튼 오래 전 다윈의 불독이라 불리며 열렬히 진화론을 옹호했던 토마스 헉슬리와,

어떻게 원숭이에게서 사람이 나올 수 있냐면서 진화론을 비웃던 사무엘 윌버포스의 대결 이래 150여 년간 전개된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결이 새삼스럽게 오늘날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을 이안 바버의 과학과 종교 사이의 갈등, 독립, 대화, 통합이라는 네 가지 관계 모델로 살펴보면 첫 번째 모델에 해당된다.

바버는 갈등을 일으키는 입장으로 과학 진영에는 과학적 유물론을, 종교 진영에서는 성서 문자주의를 예시하였다.

이 두 입장은 과학과 종교의 극단에 서서 서로 대결 하고 있으나 자신의 고유한 방법을 통해 획득한 지식과 믿음이 근본적으로 모든 영역에 통용되는 보편적 진리로서 전혀 오류가 없다고 확신하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고 볼 수 있다. 

과학적 유물론이나 유물론적 환원론은 물질만이 유일한 존재의 근원이며 과학을 통해서만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도킨스도 이러한 과학적 우월감에 도취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모든 생명 현상의 본질을 단지 맹목적인 자기복제자의 번식 현상으로 파악하는 유전자 환원주의와 종 교의 신개념조차도 다윈주의적 분석에 입각해 그저 '하나의 망상' 으로 규정하는 인식론적 과학제국주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자기 우월적 관점은 상대 진영(종교)의 체험과 지혜의 신빙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므로 갈등을 초래한다.

 

다른 한편 성서 문자주의는 기독교 신앙에 투철한 나머지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문자적으로 받아 들여 과학적 설명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오래 전 아일랜드의 제임스 어셔 대주교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나이를 계산하여 천지창조가 기원전 4004년에 일어났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가지고 전해져 오는 이유는 지적인 설득력 때문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믿음을 가장 이상적인 신앙이라고 믿는 도그마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하고 맹목적인 창조론은 과학과도 충돌을 일으키지만,

성서 속에서 이 시대와 상황에 적합한 메시지를 읽어 낼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신학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


'쉼터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2부 : 05. 우주와 인간  (0) 2024.05.31
제3부 : 진화론과 창조신앙  (0) 2024.05.31
제3부 : 02. 진화론  (0) 2024.05.31
제3부 : 03. 창조론 운동  (0) 2024.05.31
제3부 : 04. 지적설계론  (0) 2024.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