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3부 : 02. 진화론

w.j.lee 2024. 5. 31. 10:05

제3부 진화론과 창조신앙

 

02. 진화론

 

다윈 이전에도 생물이 대를 이어감에 따라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18세기 말, 찰스 다윈의 조부인 이래즈머스 다윈은 생물계의 발전 법칙으로 생물의 욕구가 작용을 일으켜 진화하도록 이끈다고 주장하였다.

 

유기체는 파도 밑에서 시작되어

...
원시동굴에서 따뜻한 태양광선을 받고 자랐다.
이렇듯 부모 없이 자연발생에 의해 생명의 흙덩이가 태어났다.

 

이것은 다윈의 조부 이래즈머스 다윈이 지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자연발생설과 진화론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해 줄 '자연선택'의 개념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체계적인 진화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프랑스 생물학자 장 라마르크다.

그는 동물의 지속적인 습성에 의해 획득된 형질이 유전되어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라마르크의 주장은 유전학에서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져 잘못된 가설로 판명되었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하여 진화 론을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립하였다.

그는 생명체들이 엄청나게 많은 후손을 낳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생기는 '변이'와 대다수가 환경에 의해 도태되고 그중 일부만이 살아남는 '자연선택'의 기제를 통해서 특정한 종이 고유하고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이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자연선택의 수단에 의한 종의 기원"이라는 원래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자연 선택'이라는 하나의 원리가 생명 현상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상의 수많은 다양한 생명체들이 단일한 생명으로부터 진화되었으며, 인간 역시 동물의 후손이라는 점을 가리킴으로써 다윈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종교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다윈은 스물다섯 살이던 해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에 박물학자로 승선하여 갈라파고스 제도에 분포한 진귀한 동식물들을 관찰한 결과, 같은 종류의 동식물이면서도 바다로 인해 고립된 이웃한 섬마다 생김새가 서로 조금씩 다른 동식물들이 분포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차이가 생물이 번식할 때에 아주 미세 하지만 꾸준히 발생하는 '변이'에 의해서,

그리고 각 섬마다 조금씩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보다 더 유리한 생물학적 특성을 지닌 것들이 우세한 종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적으로 생물들은 엄청난 수의 후손을 남긴다.

부모세대로부터 태어난 많은 수의 후손들이 약간씩 다른 생물학적 특성을 지니는 다양 한 변이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특성 가운데 어떤 것은 특정한 환경에 유리하기 때문에 살아남고 다른 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변이에 의해 얻은 특정한 형질을 지닌 개체나 집단이 환경에 의해 자연선택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오랫동안 되풀이되면 결국 원래의 종으로부터 새로운 생물 종이 발 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은 생명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임을 알려 주었다.

생명이 하나의 기원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주장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적 전환에 이어 기독교 신앙에 두 번째로 가장 큰 도전이 되었다.

진화론이 내포하는 신학적 함의는 일견 기독교 신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창조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모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신조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한편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의 배경에는 당시 영국의 경쟁적 산업자본주의가 영향을 끼쳤으며, 자유경쟁에 의해 기업이 도태하거나 생존하는 사회적 현상을 생물학에 도입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점도 있다.

다윈이 진화론의 발표를 서두르게 만든 월리스는 맬더스의 인구론을 읽다가 자연선택적 진화론의 개념을 떠올렸다고 고백하였다.

그는 인간의 생존에 요구되는 음식물의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비해 인구 증가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 인류는 생필품의 결핍 등의 어려움에 근본적으로 부딪힐 것이며

이에 따라 빈곤과 전쟁, 강탈 등 갖가지 문제가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상사회는 다만 신기루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보다 격렬한 경쟁과 투쟁이 생존에 필연적이라는 맬더스의 어두운 전망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다윈의 진화론은 사회사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생존경쟁설에 따라 인종차별이나 약육강식을 합리화하여 강대국의 식민정책을 합리화하는 사회다윈주의에도 이용되었다.

 

오늘날 진화론의 계보는 크게 리처드 도킨를 중심으로 유전자를 중시하는 극단적 다윈주의자들과, 단속평 형설'을 제창한 스티븐 제이 굴드를 축으로 하는 자연주의자로 나눌 수 있다.

장대익은 탁월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다윈 이후 가장 중요한 진화생물학자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해 밀턴 박사의 장례식에 모인 현대의 유력한 진화론자들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현대적 해석을 둘러싸고 벌이는 가상 토론을 전개함으로써 두 갈래로 나눠진 현대 다윈주의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 가상의 세기적 토론에서 도킨스 팀은 도킨스를 필두로 해서 에드워드 윌슨, 핑커, 코스미디스,로 구성되고, 상대편인 굴드 팀은 굴드와 르윈턴, 촘스키, 코인 으로 구성되어 서로 간에 적응, 유전자, 진화의 본질, 진화론과 종교의 문제 등에 관해서 토론을 벌인다.
도킨스와 굴드는 종교에 대한 입장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도킨스는 심지어 종교적 지식도 과학에 의해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다는 과학만능주의 내지는 과학 제국주의 입장에서 종교는 정신적 바이러스라며 철저한 무신론적 진화론을 표방한다.

 

반면 스티븐 제이 굴드는 과학론과 종교는 완전히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겹치지 않는 교도권이란 개념을 고안하였다.

다윈의 후예라 할 수 있는 현대 진화론자들은 비록 서로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이 한낱 잘못된 가설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사례에서처럼 진화론의 요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진추에서 펴낸 책에서 단속평형설을 인용하여 "생명체들이 오랜 기간 동안 종의 분화가 일어나지 않고 안정된 기간을 가졌다는 굴드의 주장"을 진화론을 부정하는 전거로 삼는 것은 심각한 오용이다.

 

굴드는 명백히 진화론자 이며, 그의 단속평형설은 보다 근래에 발견된 화석증거에 진화론을 부합시키기 위한 '진화' 진화론이라 볼 수 있다.

굴드는 진화를 진보로 보아온 그동안의 통념을 비판하면서 진화에서 점진적 진보가 아닌 우발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전통적인 다윈 주의에 대해 도전이 되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창조론 에서 인용하는 것처럼 진화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