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신학자의 과학 산책

제3부 : 03. 창조론 운동

w.j.lee 2024. 5. 31. 10:05

제3부 진화론과 창조신앙

 

03. 창조론 운동

 

역사적으로 과학적 창조론은 19세기 후반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를 배경으로 시작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가져다 준 충격에 대한 기독교 진영의 대응 방식에 있어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 간에 온도 차이가 상당히 달랐다.

유럽에서는 대체로 지성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논쟁을 통해 진화론 논쟁이 전개된 것에 비해, 미국에서는 보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창조과학회는 바로 이러한 미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결성되었다. 최초의 반진화론 운동을 이끈 사람은 윌리엄 브라이언이었다.

미국의 국무장관을 역임하고 세 번이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명예와 특권을 누렸던 그는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을 거느린 반진화론의 대변자였다.

 

1920년대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을 이끌던 침례교도들과 장로교도들은 반진화론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진화론은 기독교의 적"이라고 간주하였다.

1926년에 열린 남침례교 총회는 "본 총회는 인간이 하나님의 특수한 피조물이라고 가르치는 창세기를 받아들이며, 진화론이건 혹은 다른 이론이 건 간에 인간이 열등한 동물들을 기원으로 혹은 그 단계를 거쳐 유래 되었다고 하는 모든 이론들을 거부한다"는 선언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한편 1929년 미국에서 700명의 개신교 목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당신은 이 세상의 창조가 창세기에 기록된 바로 그 방식과 시간에 따라 발생했다고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긍적적으로 답변한 비율은 교파에 따라 서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의 비율은 루터교 89퍼센트, 침례교 63퍼센트, 복음교회 62퍼센트, 장로교 35퍼센트, 감리교 24퍼 센트, 회중교회 12퍼센트, 성공회 11퍼센트로 상당한 편차가 있었다

이는 비록 기독교라는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창조교리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의 창조론 운동의 역사에서 진화교육법을 위반한 교사 존 토머스 스콥스 재판은 당시 미국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25년 봄 미국의 테네시주 데이턴 이라는 마을의 고등학교 교사였던 스콥스는 당시 통과된 공립학교 에서의 진화 교육 금지법을 위반했노라고 자인했다.

이 유명한 재판에서 앞서 언급한 반진화론 운동을 이끌었던 브라이언은 검찰측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했으며, 반진화론 운동을 종교가 과학을 억압하는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은 피고인을 변호하는 입장에 섰다.

법정은 스콥스를 기소한 검찰을 따라 유죄라면서 벌금으로 100달러를 내도록 판결했다.

형식적으로는 창조론자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내용적으로는 진화론의 승리였다.

언론은 창조론자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브라이언은 과도한 시련을 겪은 탓인지 재판이 끝난지 며칠 후 사망하였다.

 

이 재판을 통해 창조론자들 가운데 전문적인 증언이 가능한 최고 수준의 과학적 자질을 지닌 사람이 없다 는 것과 반진화론자들이 창조론에 관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진화론 운동을 계속했고 1926년 미시시피에서, 1928년 아칸소에서 부분적인 승리를 쟁취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교과서의 진화론 교육의 무력화, 도서관 정화운동, 진화론 교사를 강단에서 쫓아내기에 집중했다.

지역에 따라 지방 교육위원회와 출판업자들, 그리고 상당수의 교사들이 그들의 압력에 굴복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불경스러운 진화론은 퇴출되었고, 교사들은 진화론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했다.

 

20세기 후반 들어서 창조론이 부흥하게 된 것은 탁월한 논쟁가이자 투철한 신앙인이었던 헨리 모리스에 의해서 였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모리스는 어느 날 자신의 서재에서 창문 틈으로 날아 들어온 말벌을 관찰하다가 공학적으로 이렇게 정교한 피조물이 진화를 통해 우연히 발전되어 생겼을리는 만무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남침례교도로 성장한 그는 창조가 문자 그대로 6일 간에 걸쳐 일어난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그 이유는 성서가 명백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쓴 「당신이 믿을지도 모르는 것」은 스콥스 재판 이후 일반 대학에 속한 과학자가 특수 창조와 대홍수를 옹호한 최초의 출판물이었다.

1953년 모리스가 미국과학 연맹에 제출한 대홍수에 대한 견해를 본 젊은 신학자 존 휘트콤 2세가 이에 경의를 보냈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홍수를 옹호하는 합동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1961년 「창세기의 홍수」라는 책에서 성서 구절의 무오류성에 대해 주장했으며,

열역학 제2법칙의 발단이 된 인류의 타락, 노아의 홍수를 통해 일 년 안에 대부분의 지질학적 지층들이 형성되었다는 논증을 펴고 있는데,

이는 창조연구회의 설립을 야기함으로써 프라이스의 『신지질학』 이래 엄격한 창조론에 가장 인상적인 공헌을 한 책이 되었다.

 

이 책에 감명을 받은 열 명의 엄격한 창조론자들이 '십인조'라는 별명이 주어진 서신 교환 망을 구축하며 창조과학회가 구성되었다.

이 단체는 회원들에게 성서의 무오성과 모든 생명체의 개별적 창조, 세계적인 대홍수를 인정 한다는 진술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했다.

한편 이들은 과학적 단체라는 주장에 걸맞게 학술지를 발간했고 정회원은 과학분야의 학사학위 이상 받은 사람으로 제한했다.

 

이렇게 설립된 미국창조과학회의 한국지부로 설립된 것이 바로 '한국창조과학회'다. 

1981년에 시작된 이 단체는 복음주의적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창조 신앙을 내세우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소개 하고 있듯이 한국창조과학회는 선교를 위하여 복음 전파의 커다란 장애물인 진화론의 과학적 허구성을 밝히고 창조의 과학적 증거들을 드러내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이들은 현재 진화론만 가르치고 있는 공교육기관에서도 과학적 증거를 통해 창조론을 가르치 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며, 창조과학 전시관, 창조과학 연구소, 창조 과학 교육원으로 구성된 창조과학관의 건립에도 목적을 두고 있다.

한편 교진추는 교과서에 창조론을 도입하기 위해 설립했던 창조과학회 산하단체와 통합하여 새로 결성한 단체다. 

교진추는 진화론의 오류와 과학 발전에 따른 최신 이론 등을 학계와 교육계에 알림으로써 건전한 과학 발전 및 학술 진흥에 이바지한다'고 설립 취지를 정 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폐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다.

그들은 진화론이 철폐될 때까지 앞으로 더 많은 교과서 개정 청원을 낼 것으로 보인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