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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 04. 지적설계론

w.j.lee 2024. 5. 31. 10:05

제3부 진화론과 창조신앙

 

04. 지적설계론

 

19세기 초에 활동한 영국의 윌리엄 페일리는 지적설계론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자연신』 에서 자연 속에서 드러나는 목적에 대한 적합성은 그것이 지성의 산물이며 단순히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과정의 결과가 아님을 보증한다.

생명을 가진 유기체에서 발견되는 목적에 대한 놀라운 적합성은, 전체 유기체의 수준에서든 여러 기관의 수준에서든 유기체가 지성의 산물임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페일리의 논증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풀 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보자.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질문한다면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과 같은 대답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제작자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구조와 기능을 설계했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는 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자연의 작품 쪽, 즉 생명체는 시계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당시 복잡한 기계의 대표격인 시계를 가지고 생명의 복잡성과 비교하면서 생명이 설계되었음을 역설한 페일리의 논증은 대표적인 설계논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지적설계론에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이란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그것은 몇 가지 부분들이 합쳐져 기초적인 기능을 하는 시스템으로서 그중 어떤 한 부분만 없어도 그 기능 을 수행하지 못하는 특성이다.

이 개념은 마이클 비히의 저서인 『다윈의 블랙박스』에서 자세히 소개되 었다.

 

마이클 비히는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쥐덫을 예로 들었다.

쥐덫은 바닥, 스프링, 망치, 막대, 집게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하나를 없애거나 위치를 잘못 이동시키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그 정의를 통해 진화론을 반박한다.

 

진화론에 의하면 어떤 기관은 갑자기 창조된 것이 아니라 원시 기관이 꾸준히 변화된 결과로서 존재한다. 또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기관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따라서 현존하는 기관은 불완전하지만 기능을 하는 선구적 기관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진 시스템에 대해 이 논리를 적용시켜보자.

 

진화론이 맞다면 이 시스템은 과거엔 지금보다 불완전한 시스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의 정의에 불완전한 시스템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는 변화의 과정에서 기관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는 진화론의 주장에 모순이 된다.

이 모순을 피하려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선구체로부터 변화된 것이 아닌 어떤 지적인 존재에 의해 창조되어야만 한다.

 

지적설계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예는 박테리아 편모의 구조에서 발견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다.

편모는 박테리아의 운동기관으로 가는 채찍모양의 섬유질이 회전하면서 추진 운동을 도와준다.

편모를 회전시키기 위한 기관은 박테리아 세포벽 안에 묻혀 있는데 그 구성성분을 살펴볼 때 섬유질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단백질과 상이하다.

또 그 구조와 작동원리는 공학적 시스템인 모터와 상당히 유사하며, 비록 크기는 수 나노미터에 불과하지만 고정된 링인 고정자 속에서 회전자를 가진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구조의 효율인데 분당 15,000번 회전할 정도로 고에너지 효율을 가진다.

즉 이 모터와 같은 기관은 다른 부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발전 하였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20세기 이후 지적설계운동의 효시는 미국의 법학자인 필립 존이 1991년에 출판한 「심판대 위의 다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존슨은 진화론이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에 근거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명한 법학자인 존슨은 다윈 이후 150년 이상 지속되어온 '창조론 vs. 진화론'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인 증거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무신론 vs. 유신론이라는 두 개의 상충되는 세계관 사이의 대결이라고 주장하였다.

 

1996년에는 지적설계운동에서 중요한 전기가 된 큰 사건 두 가지가 일어난다.

첫 번째 사건은 순수 창조라는 학술대회다.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은 미국 리하이 대학교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비히 박사가 「다윈의 블랙박스』를 출판한 것이다.

그 후 1998년 미국의 전산학자인 윌리엄 뎀스키는 지적 원인이 경험적으로 탐지가 가능하며, 따라서 관찰한 데이터에 기반하여 지적 원인 과 방향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을 믿을 만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폈다.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들었다"라는 것인데, 지적설계론은 이 진술에서 '하나님'을 '지적 존재'로 대치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창조론도 지적설계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지적설계론은 창조론으로서는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창조론은 하나님이 창조의 주체이며 창조주의 의도와 인격이 중요한데, 엄밀한 의미에서 지적설계론은 '지적 존재'를 가정할 뿐이지 그 존재가 누구인지, 어떤 인격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페일리의 설계 논증에 대해 데이비드 흄은 만일 기계라고는 본 적이 없는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군함과 같은 거대한 배를 본다면 "도대체 이런 어마어마한 기계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고 신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군함은 최초의 인류가 타던 통나무 카누에 서부터 시작하여 뗏목, 나룻배, 범선, 기선 등으로 점차 발전된 것으로서 반드시 초월적인 설계자를 도입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다.

지구의 오랜 역사와 환경 속에서 변이와 자연선택이야말로 특정한 목적 없이 생명의 복잡성을 설계한 '눈먼시계공'이라는 것이 다윈주의가 생명의 목적성을 인정하지 않는 논거다.

 

지적설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대 생물학이 생명체의 미시적 차원에서 발견되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다윈주적 관점에서 보면 지적설계론자들이 붙잡고 있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 성은 모두 진화론에 의해 충분히 설명되고 반박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진화론자들은 지적설계론이란 단지 근대과학의 방법론에 충실 하지 못해 생겨난 불명료한 개념이라고 단정한다.

아마도 이러한 진화론의 반박에 대해 지적설계론이 앞으로 보다 의미 있는 과학적 발견이나 성과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출처 : 신학자의 과학 산책 (저자 김기석, 출판 새물결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