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과 : 하스몬 왕조와 중간사 - 왕 겸 제사장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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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카비 혁명을 성공시킨 하스몬가문이 세운 왕조가 '하스몬 왕조'입니다.
2. '하스몬 왕조'는 80년간 유대를 독립국가로 이끌었습니다.
통(通)으로 읽는 센스
하스몬 왕조는 유대가 시리아 헬라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다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기까지 그 사이 80여 년 동안 세워진 유대의 왕조였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왕정 500년 이후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완전히 사라졌던 왕조가 잠시나마 부활한 시기였습니다.
하스몬 왕조가 끝나고 다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유대 민족은 그들 자체적으로 지도자를 세우지 못하게 됩니다.
그 후 유대 민족은 계속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A.D.66년 로마 정권에 반대하는 유대 전쟁을 시작했고,A.D.70년 유대 전쟁의 패배로 끝이 납니다.
통(通)포인트
하스몬왕조
마카비 혁명을 이끈 하스몬 가문이 마침내 시리아헬라 제국을 유대에서 몰아내고 오랫만에 유대의 독립을 이루며 세운 왕조가 하스몬왕조입니다.
하스몬 왕조의 특징은 왕이 대제사장직을 겸했다는 것입니다.
-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 시절 : 친헬라적, 사두개파의 지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간의 불화 절정
- 살로메 알렉산드라 : 바리새파와 우호적 관계
- 힐카누스 2세(바리새파 지지) vs. 아리스토불루스 2세(사두개파지지)
- 위둘의 왕권 다툼의 중재를 위해 로마가 유대로 옴
1. 하스몬 왕조
'왕정 500년' 동안 이스라엘은 통일 왕국의 왕으로 사울, 다윗, 솔로몬이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이후 르호보암 때 한 민족 두 국가로 나뉜 후 북이 스라엘은 200여 년 동안 19명이, 남유다는 350여 년 동안 20명의 왕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왕정 500년' 동안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나라만 다스렸지 언제나 대제사장은 따로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하스몬 왕조는 왕이 대제사장직을 겸한 독특한 왕조였습니다.
그 이유는 마카비 혁명을 이끈 마타디아 가문의 후손들이 대제사장과 왕을 겸해 나라를 통치하면서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 제사장의 일을 함께 감당했던 것입니다.
2. 요한 힐카누스
마타디아, 유다 마카비, 요나단, 시몬까지는 마카비 혁명을 이끈 제사장 가문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시몬의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부터 하스몬 왕조로 분류합니다.
그들은 왕과 대제사장을 겸직한 유대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먼저 요한 힐카누스는 하스몬 왕조의 첫 왕으로 시몬의 아들이자 용감한 마타디아의 손자다운 왕이었습니다.
요한 힐카누스는 유대를 다시 다윗 시대처럼 만들려는 목표를 가지고 정복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성을 1년간 포위해서 정복했고, 옛 에돔 왕국인 이두매 지역을 정벌하고, 이두매인들을 유대교로 개종시켰습니다.
그리고 주화를 발행해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까지 했습니다.
요한 힐카누스는 스스로 사두개인이라 칭하며 31년간 유대를 통치했습니다.
3. 아리스토불루스 1세
요한 힐카누스는 죽으면서 유대의 통치를 자기 아내에게 물려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 힐카누스의 장남인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어머니와 세명의 동생을 감옥에 가두고, 막냇동생을 살해한 후 자신이 왕위에 올랐습니 다.
아리스토불루스 1세는 하스몬 왕조에서 공식적으로 왕의 칭호를 사용한 왕이었습니다.
헬라화를 너무나도 동경한 아리스토불루스 1세는 헬레니즘 애호가로 유명해 '필 헬레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을 죽인 죄책감으로 재위 1년 만에 창자가 썩어 들어가 피를 토하는 고통 가운 데 죽고 말았습니다.
4.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
아리스토불루스 1세가 왕으로 재임한지 1년 만에 죽자, 아리스토불루 스 1세의 아내였던 살로메 알렉산드라는 감옥 안에 갇혀 있던 아리스토불루스 1세의 세 명의 동생을 풀어주고 그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가 왕이 되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대제사장은 과부와 결혼할 수 없다는 율법 조항으로 인해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는 대제사장으로 취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대 백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는 왕과 대제사장직을 겸했고, 자신의 결혼식에 올리브 가지를 던지며 반대를 표한 바리새파 사람들 800여 명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 8,000여 명이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를 피해 도망했습니다.
알렉산데스 야나이우스는 다윗 시대 때만큼 영토를 확장했으며 31년간 통치하다가 자신의 아내 살로메 알렉산드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었습 니다.
2세가 6년간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내전을 벌이다가 결국 유대는 80여 년 만에 다시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는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유대가 로마의 통치로 넘어가게 된 데에는 하스몬 왕조의 2인자이자 총리였던 에돔 출신 안티파터의 역할(유대를 로마의 폼페이우스에게 바침)이 컸습니다. 덕분에 안티파터는 로마 제국에 의해 유대를 다스리게 되고, 그의 아들 헤롯이 그 뒤를 이어 유대의 분봉 왕이 됩니다.
출처 : 통성경 길라잡이 (조병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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