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길/가정예배서

2019. 9. 15. 주일 : 두 날개로 날아가는 교육

w.j.lee 2019. 9. 14. 15:42
2019. 9. 15. 주일

두 날개로 날아가는 교육


찬  송: 461장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성  경: 마태복음 28:18~20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절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이웃집을 방문했습니다. 이웃집 주인은 아이에게 인사를 하며 사과 한 개를 건넵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고맙습니다 해야지."하며 인사를 시킵니다. 그런데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엄마가 대신해!"

교육은 한자로 '가르칠 교(敎)에 '기를 육(育)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가르치고 기르는 행위의 결합이라는 뜻입니다.

교(敎)가 '학습'이라면, 육(育)은 '돌봄'입니다. 학습을 통해 지적으로 충만해지고, 돌봄을 통해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은 학습에만 있고 돌봄이 없는 기형적 형태입니다.

학교 현장에서 사역하면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듣게 되는 가장 슬픈 말이 있습니다. '필요없는 공부', 혹은 '필요 없는 과목'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당장 성적을 올리는데 해당하지 않거나 내신과 상관없는 공부나 과목이라는 뜻입니다. 현실적인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 공부나 과목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하곤 합니다.

학생들 대부준은 자신의 편리나 이익과 상관없는 돌봄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예컨데 사람을 대하는 예의라든지 우리 사회의 불평등 같은 주제들은 시험에 마오는 문제로 받아들이지만, 사람으로 구현하는 데까지 간섭받기 싫어하는 식입니다.

선생님들의 가르침이나 훈계는 삶이 아닌 지식으로만 소비되고 잇습니다.

수업 중이라도 졸리면 거리낌 없이 엎드려 자거나, 불편한 교복보다는 규정에 어긋나도 자기 편한 옷을 입고 학교에 등교하며 선생님들과 갈등을 빗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듯합니다.

오늘 본문인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우리가 교육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말씀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관과하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가르침'만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지키게 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에서 삼위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참 기독교가 아닌 것처럼, 교육도 가르침과 지키게 하는것이 공존해야 참 교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귀찮다고, 번거롭다고, 당장 필요가 없다고 당연히 익혀야 할 태도나 가치관을 포기한다면 그 교육은 한쪽 날개를 잃은 것처럼 온전히 날지 못할 것입니다.




당장의 필요 때문에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가르침을 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가르칠 때 지식의 충만함과 더불어
영적 충만함도 도모할 수 있게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굳건한 두 날개로 힘껏 비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대길 목사 - 이대 병설미디어고



출처 : 2019년 가정예배서 하늘양식